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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0일…투기꾼이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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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0일…투기꾼이 고맙고 또 고맙다"

[여기가 용산이다] 100일을 넘긴 두리반 철거 농성

홍익대학교 앞 두리반이 강제 철거에 맞서 농성을 시작한 지 4월 3일로 100일째다. 재건축 시행사인 한국토지신탁이 있는 동남쪽에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고 있다. 버젓이 세입자가 영업 중인 건물 벽에다 '철거' '위험'이라는 글자를 써갈겨대고 유리창마다 박살내어, 스스로 영업을 포기하도록 참으로 야비한 폭력을 자행하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12월 24일, 용역들을 동원해 집기를 들어내고 두리반 현관 앞에다 철판까지 둘러쳐대며, 그러게 이사 비용 300만 원이라도 줄 때 나가지, 하고 킬킬거리면서 가슴을 짓뭉개던 좀스런 허세도 볼 수 없다. 한국토지신탁이 뒤늦은 반성을 했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마포경찰서가 두리반을 애지중지하느냐, 만만의 말씀이다. 이제는 한마디로 부도덕한 투기꾼 자본에 맞서 두리반이 얼마나 견뎌내는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만 같다.

다행히 견딜 만하다. 연대해주는 다양한 세력들의 도움으로 심지어 무척 흥미롭기까지 하다. 이를 테면 매주 월요일 공연하는 '엄보컬 김선수'가 그렇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1년 동안 공연했던 그들은 두리반 농성 초기부터 함께하며, 한국토지신탁의 용역들이 흘리고 간 음습한 기운을 걷어내 주었다.

화요일마다 찾아오는 독립 영화 '푸른영상' 식구들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상영을 위해 광목천을 끊어오는 수고를 했다고 생색내기에는 상영되는 다큐마다 정말 근사하기 짝이 없다. 목요일에는 용산 참사 현장을 지키던 '촛불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이 달려와 두리반을 밝힌 채 예배를 드린다. 신은 언제나 이웃의 얼굴로 다가와 나를 이끌어준다던 "솔렌티나메 농어민들과의 복음 대화"의 명구를 떠올리면서 나는 종종 눈시울을 적시고는 한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두리반이 홍대 앞에 위치해 있음을 실감케 한다. 승자독식 세계의 그물에 갇히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아가는 인디밴드를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장의 욕구에 맞추는 음악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장이 따라오라고 말한다. '지구를 부탁한다'는 노래가 시장을 달구어댈 때, 그들은 '아들아, 너는 지구를 지키지 말거라'로 맞선다.

소녀시대의 '초콜릿 사랑'이 시장 밑바닥부터 기어오를 때, 그들은 '고구마 그만 먹어'로 맞선다. 삐딱하다. 내가 보기엔 아주 삐딱하다. 삐딱한 그들과 두리반은 배짱이 맞는 걸까? 감히 음반 시장을 휘저어대는 시장 자본에 맞서려들고, 감히 투기꾼 자본에 맞서서 농성을 하는 모양새가 다르지 않아 보이기는 하다.

아마 두리반을 들어내고 분양 사업을 할 계획인 한국토지신탁과 시공사 GS건설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않겠는가. 여하튼 부끄럽게도 인디밴드들이 공연하는 '샘' '바다비' '빵' '사운드 홀릭' 같은 클럽에 발길한 적 없던 나로서는 이 농성을 통해 전혀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있다.

▲ 홍익대학교 앞 두리반이 철거에 맞서기 시작한 지 4월 3일로 100일이 지났다. ⓒ프레시안(최형락)

생각하면 그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가. 처음 30여 명의 용역들에게 들려나갈 때의 참담한 심정을 떠올리노라면 물경 그렇다. 4년여 영업해온 두리반에서 최종적으로 패대기쳐질 때 아내는 뼈가 으스러지는 심정이었을까. 단짝 들어내는 용역들을 향해 그녀는 '이 나쁜 놈들'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차라리 똥물을 끼얹었으면 도망할 놈들에게 아마도 '나쁜 놈들'이라고 인간 대접을 해준 탓이었겠지.

용역들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퍼부어대며 비아냥거렸다. 용산 참사로 이승을 등진 이상림 열사(당시 72세)에게 달려들어 따귀를 치고도 오히려 폭행당했다고 진단서를 끊었던 놈들이 아니었던가. 일산 덕이 지구에선 어머니 앞에서 딸애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돌리던 놈들이 아니었던가.

그런 용역들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환멸로 치를 떨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100일이 넘는 철거 농성을 통해 아내와 나는 인간에 대한 고마움으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고맙다. 심지어 수많은 이웃을 만나게 해준 한국토지신탁조차 고마워해야 할지, 목하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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