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천안함…모두 예고된 사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천안함…모두 예고된 사고?

[홍성태의 '세상 읽기'] 천안함을 기억하라

거대한 군함이 어두운 밤에 갑자기 침몰했다. 4월 5일 현재까지, 1명 사망, 실종 45명, 구조 58명의 상태이다. 가족들의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 채 실종자 수색도 중단되었다. 뜻하지 않은 희생이 추가로 이어지면서 가족들은 결국 기적에 대한 기대마저 접어야 했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46명 전원에게 무사귀환을 명령하는 글이 인터넷에 발표돼 많은 사람이 안타까운 눈물을 흘렸다. 자기 아들을 절대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는 가족의 절규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의 공감을 보냈다. 생각만 해도 무섭고 괴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사건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이 사건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해야 이 사건을 올바로 기억할 수 있을까? 천안함이 침몰해서 많은 군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내용의 핵심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참사를 올바로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훨씬 많은 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참사가 일어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또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차근차근 정리하고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참사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 경과도 결코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항목들을 예시할 수 있을 것이다. 천안함에 관한 것(제원, 운행 상태, 수리 상태 등), 승무원에 관한 것(승무원의 수, 연령, 가족, 학력, 재산, 건강 등), 사고 원인에 관한 것(명확히 밝혀진 것과 논란이 있는 것 등), 자연 조건에 관한 것(기상, 파도, 암초, 음파, 지진파 등), 생존자의 증언, 구조자의 증언, 가족의 증언, 전문가의 분석과 증언, 언론의 보도에서 드러난 특징과 문제, 정부의 대응에서 드러난 특징과 문제, 정치인의 행태에서 드러난 특징과 문제, 군의 예산과 훈련의 문제, 군의 업무와 일상의 문제, 미군의 설명과 대응 등. 많은 항목들을 제시하고 정리해서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기록하고 평가하자.

'위키피디아'에 그 내용을 계속 쌓아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능하면 영어로도 자료를 정리해서 위키피디아에 천안함 침몰 사건의 모든 내용을 기록하면 좋겠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도 이 방법이 대단히 유용할 것 같다. 잘 알다시피 위키피디아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서 만드는 지구적 차원의 열린 백과사전이다. 신뢰의 문제가 일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이른바 '리눅스의 법칙'이 작용해서 문제는 곧 발견되고 시정된다. 오히려 위키피디아에서는 어떤 독단적 권위도 통용되지 않으며, 그것을 내세운 거짓도 통용되지 않는다. 위키피디아는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지식을 쌓는 만인의 보물 단지이다.

리눅스의 법칙이란 '지켜보는 눈이 많을수록 문제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리눅스는 리처드 스톨만과 리누스 토발즈의 노력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대안의 컴퓨터 운영 체계이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퓨터 운영 체계를 거의 완전히 독점해서 경제와 안전 등의 여러 면에서 큰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맞서서 개발된 리눅스는 단지 새로운 운영 체계일 뿐만 아니라 그 개발과 이용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추구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비밀과 독점을 추구하는 것에 반해서 리눅스는 개방과 공유를 추구한다. 여기에 실로 큰 의미가 있다.

리눅스의 법칙을 떠올리게 된 것은 정부의 혼란 때문이다. 끊이지 않는 정부의 설왕설래를 보고 있자니 도대체 정부를 믿고 있다가는 보고 있는 사람들의 수명도 단축될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든다.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잇따르는 '망언'과 '추태'는 또 어떤가? 국민들을 그야말로 열 받게 하기로 작정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는 오늘날 '대중-지식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리눅스의 법칙'에 따라 문제를 찾는다면 훨씬 빠르게 원인을 밝히고 대책을 시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정부의 변화이다. 정부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 천안함 참사를 올바로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훨씬 많은 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참사가 일어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또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차근차근 정리하고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백령도공동취재단

정부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정보의 통제가 아니라 공개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처럼 사건의 주요 내용이 공개되어 있고 관련 기술도 얼마든지 공개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혼란과 의혹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참담한 사건에서 사람들이 필요한 어떤 정보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그것을 즉각 공개하는 것이 혼란과 의혹을 줄일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혼란과 의혹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정부가 계속 무시한다면, 이제 사람들은 정부가 뭔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일차원적 차원을 넘어서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일부러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차원적 차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또 다시 큰 논란을 빚을 방침을 정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천안함을 인양하더라도 잘라진 부분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한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커다란 군함이 갑자기 동강난 원인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그 과정 자체가 투명하지 않으면 혼란과 의혹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왜 혼란과 의혹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는 길을 구태여 가려고 하는가? '보수' 언론의 집요한 주장에 따르면, 천안함 침몰은 참혹한 '전쟁'의 예고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토록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건인데, 정부는 왜 혼란과 의혹을 키우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는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천안함 침몰과 같은 커다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아주 많다. 가장 시급한 일은 물론 생존자를 구조하고 실종자를 수색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피해에 대해 보상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등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 여기서 나아가 정부는 혼란과 의혹을 가라앉힐 책임도 지고 있다. 커다란 사고는 또 다른 사고를 낳기 쉽고, 때로는 사회적으로 불신을 만연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혼란과 의혹을 가라앉히는 책임은 사고의 원인을 규명할 책임만큼이나 중요하며, 실제로 두 책임은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이 붙어 있다.

정부가 이런 여러 활동들을 수행하는 방식은 크게 자유주의적 방식과 통제주의적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증거와 증언을 숨김없이 공개해서 투명하게 문제를 해명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증거와 증언을 철저히 통제해서 불투명하게 문제를 처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후자는 흔히 혼란과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통제주의와 그에 따른 비밀주의야말로 혼란과 의혹의 심대한 원천이다. 이런 점에서 천안함 침몰 사고를 올바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방식에 따라 필요한 모든 증거를 공개하고, 생존자가 실종자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언론과도 자유롭게 만나서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위험 사회'의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의 위험에 관해 연구해 왔다. 찰스 페로우와 울리히 벡 등의 사회학자들이 한결 같이 지적하는 핵심은 현대 사회가 고도로 복잡한 체계 속에서 큰 위험을 안고 있는 과학기술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큰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르면 큰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300개 정도의 작은 사고들이 일어나고 30개 정도의 조금 큰 사고들이 일어난다. 사소해 보인다고 해서 사실은 중요한 수칙들을 지키지 않고 사실은 중요한 징후들을 무시하는 것은 큰 사고의 출발점이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도 그래서 일어났다. 천안함 침몰도 이미 여기에 해당되는 사실들이 여럿 밝혀졌다.

지금이라도 자유주의적 방식으로 혼란과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조사의 실효성이라는 면에서도, 혼란과 의혹의 해소라는 면에서도, 가족들에 대한 예의의 차원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관한 태도와 아주 유사하다.

정부는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독단적인 비밀주의와 무조건 정부를 믿으라는 아집적인 국가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문제를 대단히 일관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와 같은 불필요한 파괴 사업에 퍼붓는 막대한 혈세를 교육과 복지, 그리고 군비의 유지와 보수에 쓰는 개혁이 절실하다. 그것이 '진정한 선진화'의 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