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언론에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그 주요 원인을 바로 군이 제공하는 셈이다. 군이 정보 통제력을 지렛대 삼아 이번 사태의 진실을 심해에 침몰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드는 대목이다.
▲서해는 이제 인양작업이 한창이다. 천안함이 인양되더라도 그 동안 제기된 모든 의문이 완벽히 해소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공동취재단 |
'군 관계자' 입 열면 브리핑서 '나 몰라라'
6일 김학송 국회 국방위원장은 한나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전날 기자간담회를 두고 "소형 잠수함의 (어뢰 공격)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정확히 하기 위해 열었다"고 말했다. 누가 들어도 천안함 피폭은 북한에 의한 것이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김 위원장은 5일 '군 관계자'와 면담한 후 "북측의 비파곶 기지에서 상어급(300t) 잠수함 2척이 23일 6회, 24일 3회, 26일 1회 기지를 드나든 것은 파악됐으나 잠수함이 어디까지 움직였는지는 완벽하게 알 수 없었다"며 "특히 사고 당일(26일) 잠수함 1대는 비파곶 인근에서 북측 기지와 교신을 한 것으로 확인됐으나, 다른 1대의 행방은 알 수 없다"며 군 당국의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정작 국방부는 5일 브리핑에서 다른 뉘앙스로 얘기하고 있었다. 이날 국방부는 보도자료에서 "군은 반잠수정이 출항하고 귀항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다"며 "대잠 초계함이 사고 당일 백령도 해양환경에서 소나(음탐기)를 가동할 경우 반잠수정, 어뢰를 탐지할 확률은 70% 이상"이라고 했다.
이를 볼 때 김학송 위원장의 말은 군이 반잠수정 침투 가능성이 낮다고 한 것을 받아서 반잠수정 대신 소형 잠수함의 공격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 역시도 군 관계자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천안함 절단면 공개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5일 일부 언론들은 "군이 천안함을 인양하더라도 절단면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의 주요 소스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군 관계자'였다.
그러나 정작 국방부는 6일 오전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일축했다. 이 역시도 군 관계자가 슬그머니 공식적이지 않은 통로로 정보를 흘린 뒤 공식적으로는 부인하는 행태의 반복이다.
교란작전
이처럼 군이 이중적인 행보를 하면서 북한에 의한 피폭 가능성은 날이 갈수록 '정설'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군의 공식적인 입장과 180도 다른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 27일 이기식 처장은 국방위에서 "북한 함정은 포착되지 않았다. 사고 해역에 접근했을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틀 후인 29일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정부와 국방부가 북한의 개입 가능성이 없다고 한 적은 없다"고 했다. 나아가 그는 "북한 반잠수정은 (세간의 평가와 달리) 어뢰 2발을 장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연루설을 강화하는 해석이 뒤따른 건 당연한 수순.
그러나 이후 군은 또 다시 입장을 바꿨다. 지난 1일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반잠수정 공격설에 대해 "이번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할 활동이 없었다"고 확인했다.
이후 김태영 장관은 2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북한 잠수함·잠수정이 침투했을 가능성은 낮다며 원 대변인과 같은 맥락의 말을 하는 동시에 "어뢰에 의한 공격이 더 실질적"이란 말을 내놓음으로써 북한 연루설의 불씨를 살렸다. 그리고 5일 군은 김학송 위원장의 입을 빌려 상어급 잠수함 공격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와중에 보수언론들은 '군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 공격설의 심증을 높이는 단독 보도를 연달아 쏟아냈다. 5일 <중앙일보>의 '캡슐형 기뢰 피폭설', 2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최 함장 '피격 당했다' 첫 보고" 등은 모두 익명의 '군 관계자'로부터 나왔다.
이들 언론이 '소설'을 쓰지 않은 이상, 이 정보의 출처는 군이다. 군은 그러나 이들 보도 내용을 전부 부인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북한의 공격 가능성이 없다'는 증언은 뒤로 밀려나고, '반잠수정의 공격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다른 무기에 의한 공격 가능성은 있다)'는 주장만 남게 됐다.
▲군 수뇌부가 무언가 정보를 흘리면, 군은 브리핑에서 이를 해명한다. 며칠 째 이어지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
군 책임회피? 당-군-청 갈등? 초대형 기획?
이처럼 군의 입장이 일원화되지 않는 이유를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추정은 가능하다.
우선 군 수뇌부가 특정한 목적을 갖고 혼란을 부추길 공산이 있다. 군이 취합된 정보 중 일부만을 언론에 발표하고, 정작 중요한 정보는 숨기거나 익명을 전제로 특정 언론에 흘려 사태의 핵심을 자꾸 엇나가게 한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 수일 간 군의 이중적 행보로 인해 북한 공격설이 천안함 이슈의 중심에 서고, 폭발 이유와 군의 사고 대응 문제 등은 다소 뒤로 밀리고 있다. 일각에서 '군이 관계자 문책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같은 대응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의 공격이 사실이라면 안보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불가피하지만 "감시망이 북한 잠수함의 활동을 100% 완벽하게 파악해내지는 못한다"고 하면 문책의 강도도 떨어질 수 있다. 이처럼 정보의 혼선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다가 사실상 영구 미제로 마무리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군의 기강이 흐트러져 정보가 마구잡이로 흘러나올 가능성도 있다.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6일 "최근 일부 매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잠수함 등 대북 첩보수집 방법과 군함 내부 배치도, 해군의 무기체계 등 중요 군사기밀을 무분별하게 노출한다"며 "우리 군은 이런 부분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이는 군 내부의 인사들이 언론이나 국회의원 등과 멋대로 접촉해 중요 정보를 노출할 정도로 군 내 기강이 흐트러졌음을 스스로 자인하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실제로 북한의 공격이 있었고 이에 따라 천안함이 침몰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경우 군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청와대의 압력으로 진실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고,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긴 군 수뇌부 일부가 언론을 통해 사실을 흘린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청와대는 이명박 정부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홍보 중인 G20 정상회의 개최를 7개월여 앞두고 있다. 북한의 공격이 사실로 드러나면 회의 개최에 차질이 빚어짐은 물론,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도가 크게 높아져 경제회복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청와대로서는 북한의 공격이 실체화되는 게 최악의 시나리오다. 또한 이 대통령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이를 달리 보면 군이 청와대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실제 과거 청와대 안보라인에서 근무했던 몇몇 당직자들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군, 언론이 이들 가능성 모두를 포함하는 '대형 기획'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북한의 연루 가능성을 적극 부인하고, 반대로 군은 가능성을 흘리는 식으로 교란작전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이 작전의 유용한 수단으로 동원된다. 일부 언론은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 '깃발'을 꽂고 작전을 선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을 뿌려 놓은 여권은 각각의 가능성에 대한 여론 추이를 지켜보다가 정치적 이득이 가장 높은 카드를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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