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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반자본·도덕적 엄격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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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반자본·도덕적 엄격주의인가"

[삼성을 생각한다] "하승우와 구르는 돌에 답한다"

필자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두 편의 글 ("삼성 해체가 답인가?", "삼성 임직원 전체를 적으로 돌리지 말라")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댓글을 봐도 필자에게 우호적인 사람은 찾기 어렵다. 특히 하승우 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는 "왜 지금 당장 삼성 불매 운동인가"라는 글을 통해, 구르는 돌이라는 필명의 독자는 "삼성 임직원의 침묵은 범죄다"라는 글을 통해 필자의 주장을 공박했다. 필자는 삼성 문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하 활동가와 구르는 돌의 견해를 존중하지만 필자의 주장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바로잡고, 이들의 생각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고자 이 글을 쓴다.

먼저 하 활동가는 자신의 글 가운데 "이런 점이 뒤섞이니 토지정의시민연대 이태경 사무처장처럼 불매 운동을 '구좌파적 상상력'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생긴다"라고 쓰고 있는데 필자의 글 어디에도 소비자운동(불매운동)을 구좌파적 상상력이라고 묘사하거나 표현한 사실이 없다. 단지 필자는 김상봉 교수의 글("지금 당장 '삼성 불매 운동'을 제안합니다")안에 있는 오류 (예컨대 '삼성해체'라는 잘못된 목표의 설정, 삼성그룹과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을 동일시하는 것 등)의 배면에 기업의 이윤 추구행위에 대한 강한 반감,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혐오와 같은 구좌파적 상상력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 것 뿐이다.

구르는 돌도 필자의 글을 오독하고 있다. 구르는 돌은 "나아가 이태경은 삼성 문제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황당한 인식을 갖고 있다. 그는 "국가가 '이건희 일가 및 가신 그룹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제 역할을 조금도 하고 있지 못한 현 시점에서 시민들이 '이건희 일가 및 가신 그룹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는 소비자 운동(삼성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뿐"이라고 말한다.

왜 삼성의 문제가 이건희 일가와 가신 그룹의 문제이며, 또 불매 운동이 왜 그 문제만을 위한 해결책이 되어버렸는가? 김상봉도 첫 제안글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부각되는 삼성의 문제는 이건희와 그 가신 그룹의 비자금과 사법 권력과의 유착, 부당한 지배구조의 문제로 드러나겠지만, 실질적인 문제는 오히려 이런 문제를 낳을 수 밖에 없었던 '삼성식 글로벌 스탠다드'에 있다. 이건희 회장의 황제식 경영이 'CEO 리더십'으로 칭송받고,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은 온 나라에 '노조포비아(노동조합 공포증)'를 유포시켰다"라고 쓰고 있다.

구르는 돌은 삼성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도치시키고 있다. 이건희 일가가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지분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삼성을 통째로 사유화해 무한대의 권한을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황제경영과 이를 뒷받침하는 가신 그룹의 발호가 삼성문제의 실체이고 본질인데 구르는 돌은 엉뚱하게 삼성식 글로벌 스탠다드가 실질적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 도대체 무노조 경영 및 이건희의 황제식 경영을 가능케 한 삼성식 글로벌 스탠다드는 누가 만든 것인가? 삼성 임직원들이 만든 것인가? 구르는 돌이 그토록 적대하는 '삼성식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든 것 역시 이건희 일가 및 가신 그룹이다.

한편 하 활동가와 구르는 돌이 필자를 공격하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필자가 '삼성 해체'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과 삼성 임직원들을 구분해야 한다고 한 필자의 주장이다.

구르는 돌은 "우리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위법, 무법, 탈법, 초법적 행태들을 선보인 삼성, 어디로 보나 국내에서 가장 나쁜 기업인 삼성은 해체되는 것이 맞다. 이것은 웬만한 기업들에게도 적용되어왔던 '관행'이고, 요새 유행하는대로 말하자면 '법치주의'에도 부합한다. 삼성이 아니라 다른 소규모 기업들이 이 정도였다면 이미 예전에 임직원들 줄줄이 소환되어 콩밥먹고, 기업은 다른 사람에게 조각조각 팔려져 나갔을 것이다"라면서 김상봉 교수의 삼성 해체 주장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하 활동가도 삼성 해체에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하 활동가가 그 정도에서 만족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 활동가는 소비자운동을 자본주의 속의 운동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삼성을 해체하고 경제에 대한 새로운 철학과 윤리를 마련하는 일은 자본주의 너머를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하 활동가는 "자본주의 속에서 '공정하고 건강한 시장경제를 운용할 수 있는 강하고 유능하고 정의로운 국가의 구성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 역시 '낡고 순진한 상상력'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경제를 운용하는 강하고 정의로운 국가를 찾는 건 논리적인 모순이고 자본주의가 발전해온 역사적인 과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국가의 도움 없이 지금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단 말인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 이건희 삼성 회장. ⓒ뉴시스
필자는 '삼성 해체'를 옹호하는 구르는 돌과 하 활동가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건희 일가 및 가신 그룹이 위법, 초법, 무법, 불법 행위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해서 그것이 삼성 해체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이 저지른 행위들은 국가의 근간을 흔든 중대한 범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이 자행한 범죄행위들은 얼마 되지 않는 지분을 가지고 순환출자 등을 통해 매출액 200조 원짜리 기업집단을 사유물로 만들어 무한권력을 행사하면서 아무런 법적 책임도지지 않는 황제식 경영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이른바 삼성 문제(정확히 말하면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건희 일가가 가지고 있는 지분만큼 권한을 행사하고 의무를 부담하도록 법과 제도를 통해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실정법 하에서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이 저지른 위법행위를 금감원·공정위·국세청 등의 시장감시기구와 검찰 및 법원 같은 사법기관들이 추상같이 단죄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의 잘못을 삼성그룹의 잘못과 등치시켜 "나쁜 기업은 해체되는 게 맞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삼성 문제의 원인을 오인한 나머지 엉뚱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삼성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현 시점에서 유효한 까닭은 국가가 위와 같은 역할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아서이다.

물론 하 활동가는 필자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강하고 유능하고 정의로운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하 활동가의 확고한 견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국가의 도움 없이 지금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단 말인가?"라는 하 활동가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폴라니(Polanyi)와 에반스(Evans)가 지적했듯이 시장은 늘 국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심지어 린드블롬(Charles E. Lindblom)은 "시장체제를 춤이라고 하면 국가는 춤판과 음악을 제공"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근대 이후 경제체제들을 다소 도식적으로 분류하자면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방식과 정도에 따라 중상주의국가, 자유방임주의국가, 복지국가, 신자유주의국가 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 활동가의 지적처럼 현재 존재하는 신자유주의 역시 국가의 경제운용 철학과 정책에 크게 힘입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강하고 선하고 유능한 정부의 구성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서유럽이나 북유럽에 존재하는 많은 국가들 역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취하고 있지만 이 국가들을 약하고 악하고 무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비록 이 나라들이 처한 환경이나 역사적인 발전경로가 대한민국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도 강하고 선하고 유능한 국가가 각성한 국민들의 집합적인 의지에 의해 조직될 수 있음을 이 나라들은 보여주었다. 이러한 보편성에 기반하고 대한민국만의 특수성을 주목한다면 얼마든지 한국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도 강하고 선하고 유능한 국가를 조직할 수 있다. 혹시 하 활동가가 자본주의 체제 하의 국가를 마르크스가 말한 "부르주아지들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자본주의 너머를 꿈꾸자는 하 활동가의 주장도 정치적 기획으로는 그리 탐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사익추구집단으로부터 권력을 탈환해 대한민국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 의무가 있는 진보·개혁 진영이 반(反)자본주의 혹은 포스트 자본주의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집권은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한국사회에 착근된 자본주의를 보다 공정하고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만들 연구와 기획에 몰두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자본주의를 '만악의 근원' 혹은 '악마의 맷돌'로 생각하지 않는 한 말이다.

하 활동가와 구르는 돌은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과 삼성 임직원을 분리해서 사고하자는 필자의 견해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의 범죄행위에 침묵하는 그리고 이건희 일가를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식 지배를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수납하는 삼성 임직원들을 사정없이 질타하고 있다.

필자 역시 이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특히 구르는 돌의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삼성의 임직원이 삼성의 부정한 행위에 대해 인식하고 이에 대해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일의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인간으로서의 '의무'라는 사실이다. 나치 전범 재판에 회부된 아이히만을 관찰하면서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에게 사유는 '능력'이 아니라 '의무'이다. '직장'에선 유태인 학살을 자행했던 아이히만도 집에 돌아가면 자상한 아버지요, 성실한 남편이었다. 처음부터 나쁜놈은 없다. 다만 그가 사유하고 실천하지 않는 순간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될 뿐이다"라는 지적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하 활동가와 구르는 돌이 지향하는 인간이 되기란 지나치게 어렵다는 사실을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연약한 존재인 인간에게 사유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윽박지르는 것, 구체적으로 말해 삼성 임직원들에게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의 범죄 행위에 해고를 각오하고 저항하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주문인지는 길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잘못된 구조 아래 있는 인간도 당연히 옳음을 추구해야 할 것이나 그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거나 도덕적 엄격주의를 강요하는 것은 전술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잘못이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삼성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함에 있어 하승우 활동가와 구르는 돌이 근거하고 있는 사상의 거처는 반자본주의와 도덕적 엄격주의인 것으로 보인다. 삼성문제해결에, 아니 한국사회 발전에 이러한 인식과 태도가 도움이 될지 정녕 의문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역할, 한국사회의 특수성, 삼성문제의 본질, 실존적인 인간 등에 대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이해가 진보·개혁진영에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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