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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코끼리를 왜 보호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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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코끼리를 왜 보호해야 할까?

[철학자의 서재] 로베르 바르보의 <격리된 낙원>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원을 좋아했다. 단순히 동물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화면이나 그림으로만 보던 코끼리, 기린, 얼룩말, 코뿔소 등 다양한 모습의 동물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들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저절로 생겨났다. 동물원은 이들이 본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글에서 동물원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류가 왜 이들을 보존하고 지켜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어떤 방식으로든 설명하고 싶었다. 단순히 "인류는 지구를 지배하고 있으니까 소수의 약한 동물들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식의 설명은 어딘지 모르게 오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로베르 바르보의 <격리된 낙원>(강주현 옮김, 글로세움 펴냄)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생태학적인 대답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단지 자연 생태계에 대한 보존 논리와 개발 옹호 논리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둘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생태계 흐름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고, 인류가 그 안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으며 앞으로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 짚어주고 있다.

생태계의 본질 : 자연선택과 다양성

▲ <격리된 낙원>(로베르 바르보 지음, 강주현 옮김, 글로세움 펴냄). ⓒ프레시안
자연 생태계의 흐름을 가장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이론은 다윈의 진화론이다. 다윈은 어떻게 지구상에 이토록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들이 출현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해냈다. '자연선택'은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토대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하나의 생명체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간다고 할 때, 세대가 거듭될수록 주변 환경에 적절한 형태로 적응해 나가는 방식이다. 현재 인류를 포함한 수많은 동·식물들은 모두 이러한 진화의 결과물이며, 진화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자연 생태계의 두 번째 중요한 토대는 다양성이다. 저자는 동물들에게 유성생식이 발견되는 이유는 생물들이 되도록 다양한 유전자를 대상으로 자연선택을 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무성생식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해 나가는 생물은 주변 환경이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에서는 유리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바라보면, 유성생식이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전자의 다양성에 기반을 둔 유성생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경쟁 vs 협동

우리는 자연선택과 다양성에 근본을 두고 작동하는 생태계 안에서 수많은 경쟁을 관찰할 수 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보던 <동물의 왕국>에서 먹잇감을 차지한 사자와 피를 흘리며 그에게 잡아먹히는 사슴의 잔상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이 모습은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약육강식의 현실을 보여주는 자연 생태계의 전형적인 예로 설명되어 왔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에서 경쟁만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에 못지않게 협동의 측면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여러 종의 동물들이 협동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협동의 모습은 단순하게 사냥을 함께 하거나, 음식을 나누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책에서는 이것을 '상리공생'이라고 한다.

자신보다 큰 물고기의 이빨 사이의 찌꺼기를 청소하며 생존하는 양놀래기과 물고기의 모습은 어느 정도 친숙하지만, 흡혈박쥐의 예는 매우 놀랍다. 흡혈박쥐는 흡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면 자연히 생존 확률도 줄어든다. 이들이 선택한 협동의 방법은 바로 헌혈이다. 곧 흡혈한 박쥐가 굶주린 박쥐에게 피를 나누어 주고 생명을 연장한다.

헌혈이 이루어졌을 경우와 아닌 경우의 연간 사망률은 각각 24퍼센트와 82퍼센트로 큰 폭의 차이를 나타냈다. 헌혈이라는 상리공생은 이후에 수혜자가 또 다른 협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새들의 경우에도, 개체 수가 많고 무리가 클수록 생존 확률도 함께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생태계에서 협동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생태계에서는 이렇게 자연선택과 다양성을 토대로 한 경쟁과 협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균형을 유지한다. 이 균형은 수치로도 잘 나타난다. 지구상 공기의 화학적 구성 요소를 살펴보면, 78퍼센트의 질소와 21퍼센트의 산소, 약간의 다른 기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일정한 균형은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가져다준다. 우리가 몸소 느낄 수 있는 사계절의 변화(최근에는 이마저도 흔들리고 있지만) 역시 이러한 균형의 좋은 예이다. 생태계는 이렇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정함을 지니고 있다. 생물체 사이의 경쟁과 협동 역시 이러한 균형 유지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생태계에서 경쟁만을 주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경쟁과 동시에 오히려 협동의 측면을 더 강조해서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약육강식의 냉혹한 현실'이란 말은 자연 생태계의 중요한 요소, 협동의 측면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 생태계의 모습은 우리의 삶에서도 경쟁이 아닌 협동의 측면에 더 가치를 둘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인류의 출현과 오만

그런데 이러한 균형을 위협하는 불청객들이 나타났다. 바로 우리들, 인류다. 저자는 인류의 초라했던 등장과 갈수록 오만해지는 광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자연의 규모나 광대함에 비하면 무시해도 좋을 만큼 미미하게 생명 무대에 등장했던 인류는 오늘날 지구 생태계의 역사에 중요한 등장인물이 되었다. 지속적이고 심오한 변화의 직간접적인 원인인 인류는 지구 생태계 전체, 즉 토양, 물, 기후, 그리고 지구에서 살고 있는 동식물상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런 불안감 없이 파괴하고 있는 것들이 우리의 미래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의 아이들이나 손자들의 미래일 수 있다." (154쪽)

인류의 첫 등장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하지만, 식량 확보를 위해 점차 넓은 지역으로 이주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저자는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생태계에 대한 인류의 영향력이 얼마나 증가해왔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제는 진화의 생태계를 떠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류의 활동은 생물지구화학주기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고, 생태계의 구조를 망가뜨리고 수많은 종들을 멸종시켰다.

오염물질의 축적, 생태계 파괴, 토양 침식, 수로 변경을 통해 자연환경에 가한 압력은 생태계의 재앙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댐이나 수로의 건설은 생태계의 붕괴나 조절 능력의 상실을 가져온다. 표면 전체의 4분의 3이 없어진 러시아 남부 아랄해의 모습은 끔찍하다. 그 원인은 사막 지역에서 면 생산을 위해 아무다라야 강과 시르다라야 강에 무분별하게 건설된 운하였다.

운하의 건설은 아랄해를 건조하게 만들었고,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어업에 직접적인 재앙을 초래했다. 그 결과 아랄해에 서식하던 24종의 물고기 중 20종이 사라졌고, 주민의 생계 수단인 어업은 완전히 사라졌다. 결국 아랄해의 물은 독성이 증가하여 마실 수 없게 되었고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 되었으며, 이 지역 거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게 되었다.

우리가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코끼리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거대한 생태계에서 코끼리의 역할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들의 멸종은 곧 생태계 다양성의 파괴를 뜻한다. 동물원에 갇혀 있는 코끼리는 더 이상 생태계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할 때 생태계의 균형과 다양성은 유지될 수 있다. 생태계 균형의 파괴는 또 다른 파괴를 낳을 것이고, 파괴라는 칼날의 끝은 결국 인류를 겨냥하게 될 것이다.

격리된 낙원

저자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전 세계의 국립공원과 지역 생태 구역 보존만으로는 인류의 생태계 파괴를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갈라파고스 공원과 같은 실제 예를 통해서 지적한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의 설립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더 잘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여행단체와 이주민의 증가와 같은 인류의 개입 때문에 오히려 실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곧 생태계는 거대한 하나의 틀과 같은데, 이것을 격리해서 보존한다고 해서 그 안에 있는 생태계가 온전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보통 국립공원의 경우는 생태계 보존의 대명사로 인식되어 왔지만, 이 격리된 생태계 역시 온전한 생태계가 아니며, 인류가 그 안에서 개입되어있는 이상 생태계의 다양성 파괴는 멈출 수 없다. 저자는 결국 생태계라는 '낙원'은 격리시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근본적으로 인류가 다시 이 '낙원'의 구성원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실천은 한정된 국립공원이나 생태 구역 지정에 그치지 않고, 국제기구를 통한 정치적 노력으로 전 지구적인 협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다양성은 생명의 본질이며, 파괴된 후에 되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는 이미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저자는 엘리제 르클뤼의 "인간은 의식의 차원에서 도달한 자연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의식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인류는 의식의 전환 통해 실천을 할 수 있는 생태계 진화의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는 자각과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현실에서 다양성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가?

생명의 다양성 보존에 대한 저자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다양성 파괴의 현장을 찾아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이름과는 달리 역설적으로 생태계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30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작한 이 국책 사업의 핵심은 '살리기'에 있지 않다. 앞서 살핀 생태계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길 수밖에 없는 '죽이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태계를 제대로 격리도 못하면서 오히려 대놓고 훼손하는 상황이다. 앞서 살핀 아랄해의 비극이 재현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이 사업에서 파헤쳐질 강과 토양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박테리아와 생물들이 살고 있는 다양성의 보고이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한 생명의 영향력은 쉽게 측정될 수도 없고, 한번 사라지면 다시 복구하기도 어려운 것이 바로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파괴는 자연 생태계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기업 슈퍼마켓(이하 SSM)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거대 자본을 매개로 한 SSM의 등장은 이미 각지의 수많은 중소 영세 상인들의 생업을 위협하고 있다. SSM의 등장은 중소 상인들을 무너뜨리고 생업을 빼앗았으며, 소비자들은 접근성과 가격을 고려한 다양한 선택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동안 자연스럽게 형성된 판매와 소비 패턴의 다양성 파괴와 왜곡은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의 불이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생태계의 다양성 보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양성 인정, 곧 화해와 협력이다. 나는 어떤 점에 있어서는 이 부분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다고 본다. 우리 주변에서 다양성의 가치는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가? 또한 우리가 이주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얼마나 무심하고 오만한가?

생태계에서의 협력과 다양성 보존이 생존의 중요한 원동력이라면, 우리 주변의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와 협력 역시 또 다른 다양성의 소중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태계 진화의 위대한 걸작이 만들어진 토대는 새로운 재료가 아니라, 다양성의 보존에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철학자의 서재'는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평 연재입니다. 매주 주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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