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26일 밤에 구속됐습니다. 주요 혐의는 뇌물 수수입니다. 검찰은 그가 장학관 등한테서 5900만 원의 뇌물을 상납 받았다고 봅니다. 인사 때 교장 등의 부정 승진에 개입한 혐의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공 전 교육감은 이를 모두 부인하고 있습니다. 실체는 법원의 정식 재판에서 좀 더 명징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공 전 교육감은 이미 지난해 10월말 교육감 직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교육감 선거과정에서 부인의 차명계좌에 관리하던 4억여 원을 재산 신고 때 누락한 혐의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는데, 대법원이 이를 최종 확정했기 때문입니다. 교육감 직 상실에 이은 이번 구속 수감으로 공 전 교육감의 명예는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그의 당선을 후원하고, 정책을 지지했던 정부·여당도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 전 교육감은 '교육계의 리틀 MB'로 불린 분입니다. 2008년 7월 첫 주민 직선으로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그는 경쟁과 수월성을 강조해온 이명박(MB) 정부의 교육 정책을 누구보다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일제고사를 부활시켰고, 우열반 편성을 장려하는 등 학교와 학생들 사이에 경쟁을 부추겼습니다. 국제중과 자율형 사립고 설립을 강행해 입시 사교육 열풍을 더욱 더 극심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정책은 가뜩이나 황폐한 교육 현실을 더욱 더 벼랑으로 내몰았으며, 학부모와 아이들의 고통을 더욱 더 가중시켰을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
공 전 교육감의 몰락을 단순히 한 개인의 명예 문제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의 구속 수감은 그의 교육 정책, 나아가 현 정부의 교육 정책까지 근본적으로 돌이켜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입니다. 경쟁지상주의에 뿌리를 둔 교육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우리 사회의 교육 격차, 나아가 계층 간의 격차를 더 크게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살피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는 방치할 수 없는 학교 붕괴 현장, 하지만…
기실 우리의 많은 학교는 학교로서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학생들이 책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해서 다 학교가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기능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돼야 학교인 것이죠. 그렇지만 오늘날 많은 학교는 이미 더 좋은 상위 학교에 아이들을 진학시키기 위한 성적 기계를 양성하는 곳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런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는 굳이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자녀를 둔 이라면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지식과 인성을 나누고 키워야할 공적 공간은 개성과 잠재 능력을 사장시키고 오직 소수의 우등생과 다수의 열등생으로 극단적으로 분열되길 강요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덧붙이자면, 고등학교 1년생인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에 흥미를 잃더니 종내 학교를 거부했습니다. 수시로 등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구슬려보기도 하고 으르기도 했지만 아이는 학교가 싫다고만 했습니다. 대신 피시방으로 가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또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제 방에서 자기도,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은 데는, 컴퓨터 게임에 빠졌기 때문이라고만은 볼 수도 없었습니다. 이른바 왕따로 집단 괴롭힘을 받아서도 아닙니다.
오후엔 숱한 아이들이 그를 찾아 집으로 와 놉니다. 저녁에는 학교와 학원을 파한 아이들과 학교에 가 농구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왜 학교를 가지 않나"라는 물음에, 학교를 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아들 일로 학교를 여러 차례 들렀습니다. 그동안 주로 신문 지상이나 말로만 듣던 학교 현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자리 몇 명만 교사를 쳐다보고, 적잖은 아이들은 아예 대놓고 퍼질러 자는 교실, 아이가 학교를 안간 지 꽤 됐지만 왜 그런지 상담조차 제대로 안 해본 생활지도 교사, 아이 일로 직접 체험한 오늘의 공교육 현장은 가히 '학교 붕괴'란 말이 과언만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제 아이의 문제가 오로지 학교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학교는 아이에 대해 아무런 통제력도,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눈여겨 볼 대목은 학교를 거부하던 아이는 수학 학원만은 나름대로 꾸준하고도 재밌게 다녔다는 사실입니다. 제 아이의 경우만 보면 학교보다 학원이 더 생활 지도와 통제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경기도 평택 갈곶초등학교를 찾은 김상곤 경기교육감과 민주당 국회 교과위원장 이종걸 의원, 김진표 의원, 안민석 의원, 민노당 권영길 의원 등이 3학년 학생들에게 무상 급식 배식을 한 다음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이달부터 농어촌 초등생 15만 명에게 무상 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
6·2 교육감 선거, 교육 개혁의 전기로
요즘 아들은 어느 때보다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아이와 저의 관계도 한결 좋아졌습니다. 아이가 한 '기숙형 대안 학교'에 다닌 뒤의 일입니다. 이 학교는 도심의 일반 학교와 많이 달랐습니다. 교장과 교사 등 선생님들의 눈빛과 생각이 달랐고, 무엇보다 학교의 방향이 크게 달랐습니다. 구체적으로 학생 선발 과정에서부터 오리엔테이션, 입학식 그리고 수업 및 학교 행사 등 모든 게 달랐습니다.
이 학교가 마련한 오리엔테이션 행사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2박3일 숙식하도록 꾸며졌습니다. 특히 오리엔테이션 행사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경치 좋은 해안 도로를 몇 시간가량 둘러보는 프로그램도 짜져 있었는데, 제겐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됐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그렇게 긴 시간을 걸은 건 이때가 생애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아들은 더는 제 손을 뿌리치지 않고, 제 포옹을 더는 거부하지 않습니다. 두고 볼 일입니다만, 2주에 한 차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은 이제 공부도 제대로 해 보겠다고 합니다. 아들과 제게 일어난 이런 일은 궁극에는 결국 올바른 교육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겁니다.
광역·기초 단체장을 뽑는 6·2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전국 시·도 교육감 선거가 6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16개 시·도 교육감 모두를 주민들의 직선으로 뽑는 초유의 선거입니다. 긴 말할 것 없이 비리 혐의로 구속된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과 무상급식의 아이콘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경우만을 살펴보시면 됩니다.
어떤 교육감을 뽑느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습니다. '내 고장 교육감이 성적에 매달리면 초등학교에서 7교시와 사설 모의고사가 생겨날 것이고, 교육 평등에 집중하면 아이들이 일제고사와 우수-열등반 분리 수업 등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이 무상으로 급식을 받도록 하려면 이를 공약한 후보를 찍으면 되고, 아이를 특목고에 보내고 싶다면 이를 약속한 후보를 지지하면 된다 '(<한겨레> 3월 4일자 1면)고 합니다. 이번 선거는 또한 효율과 경쟁, 수월성을 중시해온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중간 평가의 뜻도 띠고 있습니다.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관심 드높아야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대목은 단체장 선거와 함께 치러지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누가 나오는지 최소한의 정보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부산일보>가 벌인 여론조사에서 10명 가운데 9명이 제 지역의 교육감 후보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직 선거가 본격화하지 않았다고 해도 언론의 관심도 너무나 모자랍니다. 이런 무관심은 기존의 알려진 후보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형이 됩니다. 실제 <한겨레>의 여론조사를 보면, 재선 또는 3선에 도전하는 현 교육감 10명이 모두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대목도 있습니다. 진보 진영 시민후보들의 약진입니다. 광주시 교육감 시민후보로 나서는 장휘국 전 전교조 광주지부장은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비록 3위로 나왔으나, 1위, 2위와의 표 차이가 크지 않으며, 전남도 교육감 도민후보로 나온 장만채 전 순천대 총장도 1위와 불과 3.7퍼센트 포인트 뒤져 있을 뿐입니다. 몇몇 지역도 이런 면모가 나타날 조짐입니다. 제2, 제3의 김상곤이 나올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감을 두고 흔히 '교육 소통령'이라고 합니다. 예산 집행권, 초·중등 교장 및 교사 인사권, 교육 과정 운영, 조례안 작성,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인가권 등 가히 영향력과 권한이 막강합니다. 서울시만 두고 보면 5만 교직원의 인사와 6조3000억 원의 예산을 주무릅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또 이들 교육감을 감시할 교육위원들도 뽑습니다.
이쯤 되면,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6·2 교육감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유권자의 드높은 관심과 뚜렷한 판단만이 내 고장, 나아가 이 나라의 기존 교육 현실에 균열을 낼 수 있으며, 내 아이와 우리 학부모들의 고통과 고뇌를 조금이나마 덜게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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