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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삼성 편이라고?"

[삼성을 생각한다] "사회운동의 한계, '민주주의 실질화'로 넘자"

한국사회에서 삼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 문제가 보다 확실하게 해결되지 않고 지연될수록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시간은 삼성의 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삼성 문제에 대한 기억은 망각의 늪에 빠지고 삼성에 대한 저항은 푸념으로 전락한다.

저항 주체들조차 삼성 문제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삼성에 대한 저항은 가늘고 긴 투쟁에서 굵고 단단한 투쟁으로 집중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단호한 저항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삼성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삼성 문제에 대한 저항의 기운을 되살릴 수 있다는 점에 있어 우선 긍정적이다.

하지만 불매운동의 정치적 사회문화적 강제력 효과에 대해서는 엄밀하게 검토되어져야 한다. 삼성 제품에 대한 네거티브적 운동은 소비자들로부터 곧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을 받게 된다. 여기에 우리는 "LG가 있지 않느냐"고 답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소비자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답은 "한국 기업은 다 마찬가지"라는 푸념뿐이다.

삼성 제품 불매 운동과 같은 유형의 네거티브 운동은 본질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낙천낙선운동의 예를 들어 보면, 당시 유권자들에게 "그러면 누구를 선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부지리로 당선된 의원들이 정당 민주주의에 보다 확실한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삼성이 아닌 다른 재벌의 제품을 사용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달라질 것은 거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성 제품 불매 운동으로 인해 삼성 제품의 매출액 하락이 이건희의 경영 퇴진을 강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오히려 매출액 하락을 근거로 최근에 이건희가 경영에 복귀한 것처럼 이건희 체제는 더욱 확고해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오히려 삼성 제품에 대한 반대로 구축되는 전선이 아닌 삼성과는 다른 사회적 기업을 삼성과 대비시켜 부각시키는 것이 더 장기적으로 삼성에 대한 압박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전략 역시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개의 기업들과 여러 종류의 제품들을 나열하고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즉 객관식 문항을 제공하는 방식은 오히려 우리의 저항 전략을 빈약하게 만든다. 우리는 확실하고 분명한 주관식 답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자본주의와 대비되는 민주주의 전략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삼성 문제의 본질은 민주주의의 형식화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삼성이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전략적으로 접속해 왔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 지점을 주목해야 한다. 삼성은 선거 정치에 접속해서 금권 선거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정당 정치에 접속해서 '민주 대 반민주'의 정당 구도를 희석시켰다. 삼성은 사법부에 접속해서 민주적 법치를 형식적 자본의 정치 수준으로 형식화시켰다. 삼성은 각종 다양한 개혁 위원회에 참석하여 개혁을 형식화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형식적인 '테이블 민주주의'로 전락시켰다.

민주주의가 인민주권, 평등가치 실현에 기초해 있음을 감안하다면 인민민주주의 혹은 민중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민주주의를 실질화 시키려는 정교한 전략이 도출되어야 한다.

물론 그동안 반(反)삼성의 진영에서 민주주의 체제에 전략적으로 접속하는 저항 전략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 테면 참여연대의 경우 삼성 문제에 대해 여러 사회적 정치적 세력들이 침묵할 때, 홀로 삼성을 고발하여 법정에 세우는 지속적인 저항을 하였다.

하지만 진보적 사법적극주의는 소수 엘리트 중심의 전략으로서 삼성의 보수적 사법적극주의와 대면하면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민주주의의 실질화 전략에는 크게 미흡했던 것이다.

만일 삼성 제품 불매 운동이 하나의 반(反)삼성 전략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중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지향점이 민주주의의 실질화에 있다는 목표의식이 뚜렷해야 한다.

그러나 이 운동은 소비자들의 '변덕'에 좌초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소비자들이 일관되게 민주주의를 실질화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섣불리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 어렵다. 한국의 소비자 운동이 일천한 상황에서 특정 제품 불매 운동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것의 최대치는 삼성의 '겸손한' 성명서를 이끌어 내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노동자 역시 삼성일반노조와 같은 지속적인 저항 운동 세력을 제외하고는 조직적으로 삼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오지 못한 상황 속에서 단일한 반(反)삼성 구심체로 삼기에 역부족이다. '삼성 대 소비자' 혹은 '삼성 대 노동자'라는 대립구도로는 빈약한 것이다.

우리는 저항 주체들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필요하다. 삼성중공업에 의한 태안 기름 유출 사고의 후유증이 이제 나타나고 있다. 삼성 공장들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노동자들도 보고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반(反)삼성의 저항 주체들이 될 수 있다. 저항 주체들의 집단화는 나아가 민주주의 체제를 실질화시키는 방향을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사회 운동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는 그리 높지 않다.

▲ 2007년 12월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 현장에서 한 어민이 죽은 어패류를 손에 올렸다. ⓒ뉴시스

필자는 반(反)삼성 운동을 민주적 제도에 접합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당 체제의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운동이 반(反)삼성, 반(反)자본의 구도를 유지하며 형성됨으로써 반(反)삼성운동이 안정적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물론 이는 민주주의 체제를 형식화시키려는 삼성의 지배 전략에 공모 혹은 동조하였던 지난 민주정부의 정치적 분파들에 대한 냉혹한 평가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삼성의 국가 지배 전략이 정치적 전략의 본질을 갖고 있었듯, 문제는 다시 정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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