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2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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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곳곳 조용한 시한폭탄, 지금도 재깍재깍
[구보타 쇼크 10년, 한일 석면 문제 대해부 ⑧]
일제의 한국 침탈로 시작된 한국의 석면 문제 한국의 석면 문제는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과 궤를 같이 한다. 1910년 일찌감치 한반도를 집어삼킨 일본 제국주의는 1930년대 후반 중일 전쟁에 이어 제2차 세계 대전에 뛰어들면서 한반도 곳곳에서 전쟁, 전략 물자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석면 광물을 캐내기 위한 치밀한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석면 광산에서 일
안종주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자문위원
침묵의 살인자, 남편을 빼앗다
[구보타 쇼크 10년, 한일 석면 문제 대해부 ⑤]
일본 밀항선을 함께 탄 두 남자, 석면 희생자가 되다 1956년 어느 날 부산항. 당시 15살의 소년 김정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안내원이 이끄는 배에 올랐다. 일본으로 밀항하려는 사람을 태우는 밀항선이었다. 배에 타니 어두운 선실 안에 이미 몇 명의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대부분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다. 일행 중에는 진주에서 온 열아홉 살의 노중규도 있
한국과 다른 日 대법원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은…"
[구보타 쇼크 10년, 한일 석면 문제 대해부 ③]
"정말 죄송합니다. 정부를 대표해 사죄드립니다." 2014년 10월 27일 일본 후생노동성 장관은 후생노동성 고위 간부들과 함께 90도로 머리를 숙였다. 장관 등한테서 사죄의 인사를 받는 쪽은 일본 국가를 상대로 피해 배상 소송을 낸 오사카, 센난(泉南) 시 석면 방직 노동자와 그 유족들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재일동포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정상 호흡을 할
열도 뒤흔든 '구보타 쇼크'는 끝나지 않았다
[구보타 쇼크 10년, 한일 석면 문제 대해부 ①]
광복 70년이 되는 올해는 일본에서 석면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구보타 쇼크'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구보타 쇼크는 일본의 문제로 국한하기보다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영향을 끼쳤으며 이를 계기로 석면 추방 국제 연대가 더욱 굳건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국제적 사건으로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 이 사건 이후 일본 석면 방직 공장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