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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영진위가 "영화제 국고지원" 논의에 올린 까닭은?

[뉴스메이커] 3월 17일 열린 '국제영화제 발전방안' 토론회 스케치

문화체육관광부(문광부)가 주최하고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주관하는 '국제영화제 발전방안 토론회'가 3월 17일 오후 2시 광화문 씨네큐브 극장에서 열렸다. '국제영화제 발전방안'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2009년 국고지원을 받은 6개 국제영화제에 대해 2009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내린 평가 결과를 공유하는 한편, 중앙정부가 국제영화제를 지원하는 문제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자리를 통해 '국제영화제'를 향한 인식과 가치관의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난 데다, 국고지원에 대해 회의나 재고를 표명한 세 명의 토론자 중 현 영진위 부위원장과 비상임 위원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이번 토론회를 둘러싼 맥락에 대해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토론회는 김창유 용인대학교 교수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정헌일 책임연구원이 2009년 평가 결과를 발제하고, 뒤이어 6명의 토론자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순으로 이어졌다. 토론자로는 강성률 광운대학교 교수와 전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이기도 했던 김영덕 프로듀서, 김종현 국제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전 충무로영화제 프로그래머였던 송낙원 건국대학교 교수, 이대현 한국일보 논설위원, 그리고 정초신 감독 및 영진위 부위원장이 참석했다.

정헌일 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9년 정부로부터 국고 지원을 받은 6개 국제영화제는 부산영화제, 전주영화제, 부천영화제, 제천음악영화제, 청소년영화제, 그리고 여성영화제이다. 문화관광연구원이 내린 6개 국제영화제에 대한 2009년 평가는 "경쟁력이 약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네 가지 공통된 특징으로는 ▲영화산업에 대한 기여도가 미비 ▲예산운영이 비효율적 ▲프로그램 수급비용 과다 ▲관객충성도 감소 등이 꼽혔다. 특히 국고 및 지자체 보조금에 의존하며 재정자립도가 떨어진다는 점은 6개 국제영화제의 공통된 개선 방향으로 제시됐다.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한편 산업에의 기여도를 높이는 것을 6개 영화제가 해결해야 할 공통된 과제로 내놓으면서, 앞으로 영화제를 평가하는 기준 역시 산업에의 기여도에 높은 점수를 배정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후 벌어진 토론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지역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대한 국고 지원 타당성'과 함께 '산업에의 기여도'였다고 할 수 있다. 강성률 교수와 김영덕 프로듀서, 김종현 집행위원장이 '지원은 타당하다'는 입장을 드러낸 반면, 이대현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송낙원 교수, 정초신 감독은 지원이 불필요하거나 적어도 지금의 국제영화제들에 큰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토론의 근간이 된 문화관광연구원의 평가기준이 "영화제마다 고유의 성격과 개성이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헌일 연구원도 각 영화제에 대한 평가를 발표하기 전 전제하고 인정한 내용이기도 하다. 평가 보고서에 "당초 설정된 평가기준이 국제영화제의 경쟁력과 차별성을 평가하는데 부족하여 평가 결과를 통해 각 영화제가 갖는 경쟁력의 약점을 명확히 드러내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덕 프로그래머는 현 평가기준이 "영화제는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이벤트라는 점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영화제마다 목표와 지향점이 다르고 고유한 역할과 기능이 다르며, 그에 따라 창출되는 효과도 차별적이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김종현 집행위원장 역시 "영화제마다 규모의 차이도 크고, 성격도 지향하는 바도 차이가 있는데 일률적인 상대평가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중앙정부의 영화제 재정지원에 회의적인 입장인 송낙원 교수 역시 "영화산업에 영향력이 있는 영화제와 특정 장르 및 특정 집단의 무화표현을 위한 영화제, 지자체 축제로서의 영화제에 대한 평가 방식은 다 달라야 한다"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문화관광연구원이 평가의 총평에서 "문화예술정책의 차원에서 국제영화제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산업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국제영화제를 지원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관광연구원이 영화제들에 대한 평가에 '산업적인 기여나 잠재력의 정도'와 '자생력 확보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전제에 근거해 있다. 영화제 평가나 국고 지원의 문제에 있어 영화의 공공적 가치, 나아가 영화의 '보이지 않으나 중요한 가치'에 대한 공공적 지원의 필요성을 애초에 배제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고 지원의 타당성에 대해 토론자들의 입장이 명확히 갈린 것도, 이후 의견이 평행선을 달린 것도 이 때문이다.

강성률 교수의 경우 헌법에서도 만인의 평등한 문화향유권을 보장하고 있는 만큼 국가는 이에 대한 토대를 지원할 의무고 있고, 이러한 이유에 따라 당연히 영화제를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김영덕 프로듀서의 경우 당장 눈에 보이는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파급력을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청소년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김종현 집행위원장의 경우 더욱 절실한 입장 표명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청소년영화제의 경우 보다 넓고 긴 장기적인 안목으로 평가하며 '미래적인 가치'에 더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토론회 말미에 객석에서 이혜경 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영화제의 다양한 가치'에 대해 역설한 것 역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산업적인 성격이 특히 강조되는 부산영화제와 달리, 여성영화제나 청소년영화제는 보다 문화 공공적인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영화제이고, 국고나 지자체의 지원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당연시 돼왔기 때문이다.

반면 송낙원 교수의 경우 "좀 더 한국 영화산업에 기여하는 영화제를 중심으로 한국 영화산업이 글로벌화하는 데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면서, "등급심의나 프린트 통관절차 간소화 등 제도적인 지원은 하되 직접적인 재정 및 예산 지원은 줄여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민, 관객 축제 형식'의 국제영화제에는 광고나 협찬 등으로 재정 자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중앙정부가 예산 지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런가 하면 이대현 한국일보 논설위원의 입장은 지원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송낙원 교수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는 "국제영화제가 있는 나라들은 대체로 자국의 영화산업이 있는 나라들"인만큼, "산업적인 기여가 없는 영화제에 대한 지원은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산업적 기여가 높은 영화제들에 대해 보다 높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 이대현 논설위원은 객석에서 이혜경 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지원 자체가 필요없다는 입장이 절대 아니며, 만약 그런 입장이라면 이 자리에 서지도 않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의 영화제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부문 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영화제 형식을 띄고 있는 데에 동의할 수 없으며, 특정영화제의 경우 칸영화제처럼 권위있는 '경쟁'영화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정초신 감독은 "언제까지 지원을 한다는 '끝점'의 논의가 이때까지 없었다. 이 자리가 그런 끝점의 논의에 대한 시작이 됐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앙정부의 영화제 지원은 '한시적'인 것임을 전제한 발언인 셈이다. 또한 그는 "영화제는 사실 소모적인 행사에 가깝다. 거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행사면서도 입장료 등으로 인한 수익은 미미한 형편이다"는 입장을 밝혀, 영화제의 가치나 목적 등에 대해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가장 강한 반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김영덕 프로듀서의 입장일 듯하다. 김 프로듀서는 "영화제가 갖는 국가브랜드 효과 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고 지원은 말하자면 이런 점들에 대한 인정"이라는 입장이다. "연 300억 원 예산 규모로 열리는 칸영화제 등에 정부가 지원을 하는 것은 칸영화제의 자립성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칸영화제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것.

더욱이 지원 방침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요점으로 강조되고 있는 '산업에의 기여도'의 경우, 과연 마켓과 배급 등 직접적인 시장 견인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남는다. 김영덕 프로듀서는 "'산업적인 효과 및 기여도'라는 것은 평가를 받는 당사자에게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이라고 지적하면서, "제 시간에 영화를 상영하는 것 자체로 산업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과거 부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들이 정식으로 개봉할 때 흥행에서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곤 했던 예 역시 영화제가 산업에 기여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부산영화제의 PPP(부산 프로모션 플랜) 행사는 물론, 재작년 부천영화제에서 론칭한 NAFF(아시아 판타스틱영화 제작네트워크)를 언급하면서, "작년에는 전주영화제에서도 JPP(전주영화제 프로듀서/다큐멘터리 피칭)를 시작하더니 올해에는 여성영화제에마저 피치 앤 캐치 프로그램을 신설하면서 (국고지원을 받는) 6개 국제영화제 중 무려 4개의 영화제가 프로젝트 마켓을 운영하게 됐다"며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영화제마다 비슷비슷한 피칭 행사를 론칭하는 것을 꼬집기 보다는, 영화제에 산업에의 기여도를 강조하고 유인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날 토론회는 별다른 맥락없이 갑자기 공지가 된 데다 최근 영진위를 둘러싼 의혹과 잡음이 분분한 만큼, 각 영화제 관계자들은 물론 영화계 전반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면서 무성한 뒷말과 추측을 낳았다. 작년 각 영화제들에 대한 감사가 진행되고 부천영화제와 부산영화제조차 '불법 과격촛불 단체'라는 딱지가 붙으면서 "영화제 흔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작년부터 파다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토론자는 토론회 전 주에야 급하게 섭외되는 등 토론회가 급작스럽게 열리고, '국제영화제 발전방안'이라는 제목을 달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고지원'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산업에의 기여도'가 유난히 강조되는가 하면, 현 영진위의 부위원장과 비상임 위원이 나란히 '지원 재고' 혹은 '영화제 비판'의 입장의 토론자로 직접 나선 것도 이러한 추측과 의심을 더욱 부추킨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조희문 영진위원장은 다른 매체와의 전화통화에서 "정치적인 배경은 없다. 다 잘해보자고 개최한 것"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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