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전 4년간 계속 연세대에 졌던 고려대는 2대1로 승리했고 김 전 감독은 얼마 후 두 심판에게 각각 1000만 원과 500만 원을 건넸다고 한다. 특히 그는 2008~2009년 각종 대회를 치르며 심판 10명과 경기위원에게 17차례에 걸쳐 20만~1000만 원씩 모두 2300만 원의 돈을 줬다고 한다. 심판을 매수한 9경기에서 모두 이겼을 뿐 아니라 무려 3개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감독, 심판, 협회가 함께 만든 '승부 조작'
'무적 고대'의 신화는 이렇게 심판 매수, 현금 뇌물, 승부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명문 대학 축구팀 감독뿐만 아니라 심판은 물론 협회 임원까지 개입해 한국 대학 축구를 한마디로 '개판'으로 만들어 버린 사건이다. 그리고 감독은 학부모들로부터 금품을 강요하고 횡령하기까지 했다. 지난 2년여 동안 선수 학부모 45명에게서 5억8000여만 원을 받아 이 가운데 1억700여만 원을 유흥비 등 개인적인 용도에 사용한 혐의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와중에 학부모 대표를 맡은 학부모는 자식이 볼모로 잡혀 감독이 달라는 대로 뜯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두 명이나 배임증재죄(부정한 청탁을 하면서 재물을 준 죄)로 입건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감독은 횡령은 돈 관리하는 학부모가 했을 것이라며 뻔뻔스럽게 발뺌을 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어쩌다 벌어진 돌연변이 같은 사건일까. 그렇지 않다. 심판 매수, 승부 조작은 스포츠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물론 외국에서도 승부 조작, 담합, 심판 매수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감독, 심판, 협회, 학부모까지 얽혀 있는 나라, 또 프로 뿐 아니라 초·중·고교, 학원 스포츠까지 전방위로 퍼져 있는 나라는 없다.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이 1998년 프랑스월드컵 직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K리그에서 승부 조작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08년엔 K3리그 소속 10여 명의 선수들이 도박 관련 브로커의 돈을 받고 승부를 조작해 제명 또는 1~5년간 출전 정지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당연히 축구만이 아니다. 2008~9년엔 김재박 감독과 마해영 해설위원이 제기했던 프로야구 상대팀 선수 간 '사인 거래'도 사실상의 승부 조작이다.
▲ 한국 스포츠는 축구, 야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아마, 프로에 걸쳐서 승부 조작, 심판 매수 등 온갖 비리로 점철돼 있다. 이것이야말로 스포츠 강국의 '썩은 속살'이다. ⓒ연합뉴스(자료) |
'스포츠 코리아'의 썩은 속살
프로만이 아니다. 2007년에는 소년체전에서 발생한 심판의 금품 수수가 드러나 대한농구협회 집행부 7명이 결국 승부 조작으로 사퇴했다. 농구계에선 소년체전, 전국체전이 '황금어장'이란다. 2005년 고교야구에서는 협회장의 지시에 의해 심판장이 주심에게 승부 조작을 지시하고 그 대가로 감독, 심판, 학부모 간 금품과 향응이 오간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99퍼센트가 그렇다'고 하고 '사전 작업 안 들어가면 무조건 진다'는 증언, 그리고 어른들의 거래를 알고 있다는 학생의 자조적인 고백과 승부 조작에 참여한 날 저녁 '아이들의 눈망울이 어른거린다'는 한 심판의 증언은 우리를 한 없이 부끄럽고 슬프게 만든다.
몇 년 전 한국이 세계 최강이라는 쇼트트랙에서는 정말 희한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제대회에서 한 코치가 "중국 선수에게는 져도 된다. 뒤에서 치고 나오면 처박고 넘어져도 좋다"고 했다는데 바로 그 '처박고 넘어져도 좋'은 상대 선수는 미국도, 일본도 아닌, 바로 동료 한국 선수들이었다. 이런 해외 토픽감 뉴스가 알려져도 그냥 넘어가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지난 밴쿠버올림픽에서 성시백이 이호석 때문에 넘어져 메달을 놓쳤는데 그때 시끄러웠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승부 조작이 바로 한국 스포츠고 한국 스포츠가 바로 승부 조작이다. 우리나라의 그 수많은 스포츠 지도자 중 져주기를 포함한 승부 조작에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지도자가 과연 있을까. 단 한명이라도 있을까. 난 없는 쪽에 걸겠다. '단 한 명'이지만 나는 자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스포츠계에서 이렇게 비리와 범죄가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도 변화가 없는 것은 웬 까닭일까. 그것은 첫째, 스포츠계에선 비리와 탈법이 기본적인 '삶의 방식'이 되었을 뿐 아니라 둘째, 비리에 조직 내 구성원들이 다 개입되어 얽혀 있고 셋째, 문제가 불거지면 비리 인사를 솜방망이 처벌 후 다시 받아들이는 일이 반복되어 왔기 때문에 넷째, 비리를 저지르는 게 전혀 무섭지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비리에 대한 '조직'의 묵인과 지원이 있기 때문에 변화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돈은 감독이 줬지만 조작은 심판이 했다
스포츠가 체계화 되고 프로 리그가 있는 정도의 국가라면 이러한 심판 매수, 승부 조작은 당연히 사법 처리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는 준 사람과 받은 사람에게 모두 해당되어야 한다. 사실 교원, 공무원 등의 세계에서는 받은 쪽이 더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왜 체육계는 준 사람(김 전 감독)은 구속하고 받은 사람(심판)은 입건에 그치나.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왜 뇌물을 받고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승부 조작을 현실화 시킨 사람을 더 가벼이 다루는가.
작년 중국 공안은 프로축구 리그에서 승부 조작과 축구 도박에 연루된 산시와 광저우 팀 관계자 등 16명을 구속했다. 지난 1월에는 중국 축구협회 난융 부주석과 축구협회 여자부 양이민 주임 등 축구협회 수뇌부를 비리 혐의로 구속했다. 1997년 대만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돈을 받고 져주기를 하자 선수 5명을 구속시켰다. 1999년 남아공 크리켓 대표팀 선수가 돈을 받고 져주기를 하다가 감방에서 썩어야 했다.
경기장 안팎에서의 폭력도 구속 또는 기소 대상이고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 복용 역시 감방행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100미터, 200미터, 1600미터 계주에서 금메달 세 개를 딴 미국의 매리언 존스는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이 밝혀져 구속 수감되어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메이저리그의 홈런왕 배리 본즈와 최고의 투수 로저 클레멘스도 기소되어 유죄 판결이 나면 감옥에 가야하는 처지가 됐다.
물론 사법부의 개입이나 구속 수사가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첫째, 월드컵이든 올림픽이든 WBC야구든 스포츠를 그렇게도 즐기고 열광하다가도 막상 스포츠에서 무슨 사건이 터지면 "쟤네들이 그렇지~" 하는 식으로 '광대 취급'으로 흘러버리는 국민 정서나 둘째, 교육계 비리나 토착 비리, 폭력배 소탕에는 그렇게 열심이면서도 뇌물, 매수, 조작, 폭력, 성폭행, 횡령 등 거의 비리와 탈법의 백화점인 체육계는 "체육계가 원래 그렇지~" 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정부와 사법부의 태도는 한국 스포츠가 속으로 썩어가게 만든 1등 공신이다.
그러니 셋째, 체육단체들은 일이 터져도 만날 '땜빵용' '면피용' '솜방망이' 처벌만 하고 게다가 그 비리자를 다시 불러들이는 일을 반복하기 때문에 지금 한국 스포츠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이다. 어떨 때는 처벌이 '휴가'로 보이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체육계는 자정 능력이 없다. 우리나라 체육계는 외국처럼 국회 청문회라도 해야 한다.
엄벌? 그걸 또 믿으라고?
이번 사건에 놀란 대한축구협회는 관련자들을 엄벌에 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다. 축구인들 사이에서 심판 열심히 만나고 다니는 감독은 '열심히 하는 감독'으로 통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 사건이 터진 마당에도 대학축구협회 관계자들이 그러지 않는가. 승부 조작은 없애기 힘들 것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축구협회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왜냐. 나는 이제까지 대한축구협회가 '엄벌'을 주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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