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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화산' 무상급식, '세금의 저주'는 반복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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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화산' 무상급식, '세금의 저주'는 반복될 것인가?

'식판 전쟁' 결과 따라 정치 지형 요동칠 수도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청와대에서 만난 2005년 9월7일. 당시 온나라를 들쑤신 노 대통령의 대연정 논란에 밀려 관심을 얻지 못했으나,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나눈 얘기 중 하나가 세금 문제였다.

박 대표가 말했다. "세금을 올리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노 대통령은 피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와의 회담인데 논쟁적인 것은 다른 기회를 만들어서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노 대통령은 박 대표의 감세 요구가 마뜩치는 않았으나 언쟁에 의욕을 보이지는 않았다. 당시 청와대 주변에선 세금 논쟁을 본격화하기엔 시기상조라는 판단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감세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노무현 정부에서 '세금 폭탄'을 맞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태도가 어정쩡했던 노무현 정부는 '세금 폭탄' 프레임에 초토화됐다. 불과 2%가 종부세 대상이었음에도 강남 집부자들의 엄살 아우성에 면세점 이하의 서민들까지 덩달아 분개했다.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해봐야 백약이 무효. 노무현 정부와 여당은 선거에서 연전연패, 감세가 구국의 길이라고 믿는 세력에 권력을 넘겨주기에 이르렀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의 정치적 기획이 합작한 최대 걸작이었다.

정권에 대한 '세금의 저주'는 되풀이될까? 6.2 지방선거 이슈 사이사이로 세금이 흐른다. 4대강 사업에는 5년간 총 22조원이 투자된다. 국민 한 사람당 46만 원의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꼴이다. 올해 국민 1인당 납부하는 세금이 453만 원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혈세가 들어가는 셈이다.

또한 정부는 국민 세금을 들여 조성한 세종시 토지를 기업에게 헐값에 넘기겠다고 한다. 민주당 양승조 의원에 따르면 "세종시 땅을 재벌에게 헐값으로 매각할 경우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할 돈이 자그마치 7~8조 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국민 세금으로 재벌에 특혜를 준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국가 재정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도 짙다. 한국조세연구원(KIPF)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 채무가 이명박 정부 5년을 거치면 500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소득세, 법인세, 종부세 등 감세정책으로 세입이 줄어드는 반면, 4대강 사업 등 세출이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에는 이미 '부자 감세'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저류에 흐르는 '부자 감세'를 타고 지방선거 최대 이슈로 떠오른 '무상급식'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낸 세금의 쓰임새와 국가의 기능을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쟁점이기에 폭발력이 배가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취약계층에 대해서만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방안에 "서민 무상급식"이라는 옷을 입혔으나 고육지책이다. '좌파 용어'로 통용되던 '무상'이란 단어를 한나라당조차 피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무상급식 이슈의 파괴력을 짐작할만하다.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색깔론'이 먹히지 않자 한나라당은 '돈' 문제로 방향을 틀었다. 정몽준 대표는 12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까지 급식비를 대줄 만큼 정부가 한가하거나 여유가 있지 않다"고 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서민에게 돌아갈 교육예산을 부자 때문에 깎아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공짜 점심 먹일 돈이 어딨냐'는 것이다.

당장 "그러면 그동안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여유 있는 계층의 세금은 왜 깎아준 것이냐"(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는 힐난이 날아왔다. '부자 감세'는 버젓이 하면서 학생들 밥 먹이는 문제에 인색한 모습이 "앞에서는 서민들 뒤통수를 내리치고, 뒤에서는 반창고 붙여주는 척"이라는 것이다.

▲ 무상급식 논쟁은 정치와 선거의 수준을 한단계 발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프레시안

무상급식에 필요한 '돈' 문제도 한나라당이 수세적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재원 문제는 4대강 공사와 호화청사를 짓지 않고 전시성 홍보사업을 하지 않으면 문제없다"고 받아쳤다. 4대강 예산을 무상급식 예산으로 옮기자는 건 실현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레토릭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먹혀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의 추산에 따르면 오세훈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울'과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에 연간 2조 원이 들어간다. 경기도 성남, 용인, 안양의 신청사 등 호화청사 건설비용은 3조7000억 원 가량이다.

반면 20조 원이 넘는 서울시의 예산 가운데 무상급식 예산은 0원이다. 이명박 정부는 감세 정책으로 5년간 교육예산을 14조원이나 깎았다. 초·중등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필요한 2조원 안팎의 추가 재원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예산의 우선순위만 조정해도 가능하다"(한나라당 원희룡 의원)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반갑다 '식판 전쟁'

무상급식 논쟁의 승패는 그래서 주목된다. '바람'과 '세몰이', 뉴타운으로 대표되는 '욕망의 정치'가 좌우해 온 정치와 선거 수준을 세금과 복지, 교육 등 민생 영역으로 상승시킬 고속도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선거를 위한 야권의 '선거연합' 논의에서 정치협상 전망은 대단히 불투명한 반면, 진보와 개혁 세력은 무상급식을 고리로 '복지 동맹'을 발전시킬 태세다. 오는 15일 시민단체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열기로 한 '복지국가 제안 대회'에는 한명숙 전 총리, 정동영, 천정배, 이정희 의원, 진보신당 노회찬, 심상정 전 의원 등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지도급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이처럼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와 '시혜적 복지'는 '식판 전쟁'의 귀결점이 될 6.2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 결과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표도 지난해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30주기 추모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고 했다. '복지국가'가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박 전 대표의 핵심 키워드가 될 것임을 예고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녹다운시킨 '감세' 지론과 '복지'를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세금 깎는 복지'라는 묘수풀이가 나올지, 아니면 그 역시 '세금의 저주'에 희생양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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