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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은 거기에 없다"

[김작가의 음담악담] 신화가 되길 거부한 대중음악 전설

그가 온다. 밥 딜런. 끝.

이렇게 쓰고 싶은 심정이다.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다. 밥 딜런이란 이름이 모든 걸 설명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밥 딜런이란 이름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 이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명을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서술하는 거라 부연할 수 있다면, 밥 딜런의 기의는 어떠한 규정에서도 벗어난다.

하나의 틀로 묶이고 싶어하는 아티스트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궤적에는 대부분 일관성이 있다. 그 하나의 틀로 묶을 수 있는 일관성이. 그러나 밥 딜런에게는 그런 일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정의하지 않는다. 미가 무엇이고 애국심이 무엇인지도. 나는 그것이 무엇이야한다는 고정 관념 없이, 있는 그대로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밥 딜런은 자기 자신조차 규정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래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밥 딜런 전기 영화의 제목이 <아임 낫 데어>인 것은. 밥 딜런은 '거기' 즉, 자신의 이름으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로부터 늘 탈출하며 살아왔다. 역시 그래서다. <아임 낫 데어>에서 밥 딜런을 연기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그는 저항 가수이자 기독교 전도사였으며 개인주의자이자 몽상가였다. 시인이자 웅변가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아니었다.

밥 딜런의 첫번째 도피는 1965년이었다. 그 해 5월 포크 무브먼트를 대표했던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참가한 그는 어쿠스틱 기타 대신 일렉트릭 기타를 들었다. 그리고 'Like A Rolling Stone'을 연주했다. 포크 순수주의자들에게 일렉트릭 기타는 곧 세속적 상업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청중은 야유했다. 동료들은 당혹했다. 프로테스턴트 포크의 아버지였던 피트 시거는 그 모습을 보고 "전기 톱이 있었다면 당장 기타를 잘라버리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규정된 포크가 아닌, 자신의 음악을 선택한 것이다. 포크 록이 창시되는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버린 것은 저항 가수의 이미지였다. 아무 것도 지칭하지 않음으로서 모든 것을 말하던, 그의 사회적이고 시적인 가사는 1960년대 말을 끝으로 오랜 종결을 고했다. 그 이전에도 스스로 저항가수가 아님을 수차례 밝힌 밥 딜런이었다. 동료였던 존 바에즈와는 달리 집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좇아 집으로 몰려 드는 히피와 사회운동가들을 피해, 수 차례 이사를 다녔다. 심지어는 그들에게 총을 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이미지를 180도 뒤집어 컨트리 앨범을 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가더니 기독교 전도사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당혹스러운 음악들이 이어졌다. 더 이상 그를 '현재의' 저항가수나 포크가수로 인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목받는다는 건 굴레다. 예수는 주목받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혔다"라는 말을 실현이라도 하듯, 주목으로부터 도피한 것이다. 70년대부터, 밥 딜런은 그렇게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밥 딜런이 마지막으로 버린 건 은둔이었다. 1997년 발표한 <Time Out of Mind>부터 지난 해의 <Together Through Life>에 이르는 넉 장의 앨범을 통해서,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거장의 음악을 들려줬다. 청년 시절과 조금도 다름없는 시적이고 성찰적인 가사가 있었다. 비음을 간직한 채 늙은, 관조의 목소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음악적 뿌리가 되었으며 순차적으로 추구했던 컨트리와 블루스, 그리고 포크가 한데 어우러진 밥 딜런의 음악적 궤적이 한 데 어울려 있었다. 세상이 그를 잊은 게 아니라 그가 세상을 잊었던 거라는 듯, 밥 딜런은 이제 단순한 텍스트를 넘어 일관성이 없으되 그렇기 때문에 일관적인 인생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벽화를 그리다가 사라진 사람이 나타나 다시 그리기 시작했는데, 사실 사라진 게 아니라 벽의 뒤편에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듯이.

은둔을 털어낸 그는 2006년 생애 첫 자서전을 썼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란 제목으로 국내 출간된 이 자서전은 그 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올랐다. 원제가 '연대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밥 딜런은 편년체 서술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현실과 생각을 뒤섞는다. 평생 가사와 인터뷰 등을 통해 빛났던 그의 시적 언어들이 서사로 이어진 것이다.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그를 향해 이런 말을 했다. "엘비스가 록에 육체를 선사했고 밥이 정신을 선사했다. 오늘날, 위대한 록 음악이 있는 어디에나 밥 딜런의 그림자가 있다." 음악을 언어와 만나게 했고, 언어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밥 딜런에게 마땅한 헌사였다.

3월 31일. 그런 그가 온다. 밥 딜런. 진짜 끝.

▲밥 딜런. ⓒ액세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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