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리산의 케이블카 설치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리산권시민사회단체협의회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산상 반대 시위도 120일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환경부는 케이블카 규제 완화를, 지방자치단체는 관광객 유치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오히려 환경을 보호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케이블카 논란은 지리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주도의 한라산에도 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었지만 최근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역 개발을 우선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끊임없이 개발논리 속에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이로 인한 환경 파괴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오는 논리 가운데 하나가 장애인 및 노인과 같은 교통약자와 이동약자의 이동편의를 증진하고 이를 통해 이동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결국 케이블카의 문제는 환경보호의 문제에서 인권의 문제로 초점이 흐려지게 된다. 물론 케이블카가 장애인과 노인 같은 산을 올라가기 힘든 계층의 이동편의를 증진시켜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목적의 전부는 아니다. 따라서 장애인 등의 이동편의증진이 단순히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내세우는 생색내기로 보이는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가치의 충돌, 환경이냐 인권이냐?
인권의 문제는 종종 다른 가치와의 충돌을 가져온다. 가장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문화재의 문제이다. 경복궁과 같은 문화재에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구조 변경을 하는 것이 적절한가? 장애인의 접근권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장애인도 동등하게 문화재를 관람하고 문화재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를 보존하고 보호하려는 입장에서 본다면, 문화재의 구조를 변경하거나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것 등은 문화재의 훼손으로서 문화재의 보존에 위배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베르사유궁 안에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독일의 경우 하이델베르크 성 안에 장애인용 화장실을 설치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 정확한 기준이나 원칙이 없다. 경복궁의 경우에도 출입구 턱이나 문지방에 경사로만 나무로 설치했을 뿐이다.
지리산의 케이블카 설치 역시 가치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보호라는 가치와 장애인의 접근권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것이다. 생태운동의 입장에서 본다면 케이블카의 설치는 환경을 파괴하고 생태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더구나 마구잡이 개발로 인해 수많은 환경과 자연이 파괴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지리산을 비롯한 최근의 케이블카 설치 열풍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들 케이블카 설치가 환경보호와 생태환경 등 모든 면을 고려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개발논리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러운 일이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케이블카의 설치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보행이 어려운 휠체어 사용자들에게 케이블카는 높은 산에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호주의 시드니의 타롱가 동물원(Taronga Zoological Park)을 방문할 때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편하게 입장할 수 있었다. 타롱가 동물원의 경우 입장을 산 윗부분에서 하도록 되어 있으며 비장애인들은 버스를 타고 산 위의 매표소까지 이동을 한다. 하지만 원한다면 유료 케이블카를 타고 매표소까지 바로 올라갈 수도 있으며 장애인 등의 경우에는 무료로 케이블카를 이용해 산 위의 매표소까지 올라갈 수 있다. 두 번째 경험은 캐나다 벤쿠버의 그라우스 산(Grouse Mountain)의 케이블카였다. 그라우스 산은 스키를 탈 수 있는 산으로 유명하며 사시사철 눈에 덮여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그라우스 산의 정상에는 카페테리아와 정상 휴게소가 설치되어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절경이다. 휠체어를 사용하기에 등산을 할 수 없었던 필자는 그라우스 산의 케이블카(Sky Ride)를 타고 올라가면서 눈 아래 펼쳐지는 웅장한 산과 숲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라우스 산의 케이블카는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약 1.6km의 거리를 올라간다. 눈 아래에는 산 아래의 푸른 숲에서부터 올라갈수록 조금씩 눈에 덮여서 마침내는 새하얀 눈밖에 안 보이는 산 정상의 절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올라갈수록 나무의 종류도 달라져서 활엽수에서부터 침엽수로 변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필자가 이러한 광경을 눈앞에 볼 수 있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라우스 산의 케이블카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세계의 모든 산이나 관광지에 케이블카가 설치된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한 곳에, 그리고 환경 등 다른 모든 부분을 고려하고 신중하게 논의된 끝에 최소한으로 설치한 것이 바로 케이블카이다.
문화재의 문제도, 생태환경의 문제도 모두 다른 가치와 충돌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접근권과 같은 인권과 충돌할 때이다. 그러나 두 개의 가치 가운데 우열을 두고 무조건적인 선택을 할 수는 없다. 두 개의 가치 모두 소중하기 때문이다.
케이블카는 생태환경의 적인가?
그럼 호주의 타롱가 동물원이나 캐나다의 그라우스 산의 경우 케이블카를 설치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타롱가 동물원에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장애인과 노인의 이용을 돕기 위한 것도 있었다. 그라우스 산의 스키장을 활성화하려면 스키어들이 보다 쉽게 산에 오를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이유 가운데 중요한 이유가 바로 생태보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그만큼 환경이 파괴된다. 그러나 반대로 케이블카가 생태환경을 보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케이블카를 설치함으로써 사람들이 산을 직접 오르는 것이 줄어들게 되고, 사람들의 발걸음의 횟수가 주는 만큼 생태환경이 보호된다는 것이다. 케이블카의 설치로 인한 생태환경 파괴와 사람들의 출입을 통한 생태환경의 파괴 사이에서 보다 낫다고 판단된 경우에 케이블카를 설치한 사례도 있다. 물론 이러한 사례가 이번 지리산의 케이블카 설치에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케이블카가 설치되더라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지리산에 오를 것이고, 케이블카의 설치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부터 산을 보호해주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대신 사람들의 등반을 제한할 경우 오히려 생태환경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케이블카를 설치한 외국의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케이블카의 설치와 같은 문제는 생태환경의 측면에서, 또 장애인 등의 접근권의 측면에서, 관광활성화의 측면에서 다양하게 검토되어야 하고, 이에 대해 냉정하고 객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장애인 인권운동에서 케이블카는 무엇인가?
장애인 등의 접근성 확보 운동에서 본다면 지리산 등반이 어려운 장애인 등이 손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지리산을 느낄 수 있는 케이블카의 설치는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물론 지리산은 노고단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지만, 자동차로 올라가는 등반은 진정한 등반이라고 할 수 없고, 정상이 아닌 노고단까지만 올라갈 수 있다는 것도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케이블카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인 위에서 산을 내려다보며 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즐거움은 자동차 등반이 결코 줄 수 없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 접근성 운동이 생태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해야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 문화재를 심각하게 훼손하며 문화재의 본질을 파괴하면서까지 접근성을 확보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접근성 운동이 될 수 없다. 진정한 접근성 운동은 다른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존중하면서 함께 해나가는 운동이어야 한다. 따라서 케이블카의 설치가 가장 편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생태를 파괴하고 환경을 저해한다면 다른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것은 환경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생태보전 외의 다른 요소들도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산은 비장애인만의 것도 아니며 젊은 사람들의 것만도 아니다. 다함께 산을 오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가 고민되어야 한다. 케이블카에 대한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 등이 함께 산에 오를 다른 대안에 대한 고민이 같이 되어야 한다.
케이블카, 대안은 없나?
앞으로도 케이블카 문제는 계속 대두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태환경과 개발논리는 충돌할 것이고, 그 사이에서 장애인의 이동권과 접근권 문제는 마치 초대받지 않은 불편한 손님처럼 등장할 것이다. 개발논리를 앞세우는 지방자치단체 등은 장애인의 접근권을 앞세워서 생색을 낼 것이고, 환경운동에서는 케이블카를 반대하면서도 장애인의 접근성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울 것이다.
하지만 케이블카 문제는 정해진 해법이 없다. 그때그때 상황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케이블카를 무조건 반대한다거나 무조건 찬성하기보다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세계의 다른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개발과 발전만을 앞세우기에 앞서 지방자치단체는 생태환경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환경운동에서도 케이블카 설치로 인한 실제적인 생태환경의 파괴와 지역의 발전과 관광활성화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바란다면, 그 과정에서 장애인 등의 접근권도 진지하게 함께 고려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개발의 논리를 합리화해주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환경운동의 걸림돌이 되는 불편한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정당하고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함께 고려되길 바란다.
장애인의 접근성은 개발에 이용되어서도 안 되며, 환경운동에서 무시되어서도 안 되는 장애인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권리이다. 따라서 이러한 케이블카의 논쟁에 장애인의 접근성과 관련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케이블카의 설치와 관련된 논의가 보다 신중하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논의 과정에 장애인 등이 함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 인권운동은 장애인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함께 참여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격월간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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