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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타락한 권력에 폭풍처럼 '봉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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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타락한 권력에 폭풍처럼 '봉기'하라"

[화제의 책] 돌아온 혁명가들…<토머스 제퍼슨>·<카스트로>

토머스 제퍼슨과 피델 카스트로. 미국 독립선언문과 헌법 기초자 중 한 명과 그 미국에 맞서는 데 반세기 이상을 보낸 한 작은 섬나라의 혁명 지도자. 이보다 더 기묘한 조합이 또 있을까?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글을 각각 모은 책 두 권이 한 출판사에서 동시에 나왔다. 둘 다 'Revolutions'라는 시리즈의 일부다. 이 시리즈는 본래 영국의 유수한 좌파 출판사 버소(Verso)의 기획물이다. 이것을 한국에서는 프레시안북이 번역·소개하고 있다. 재치 있고 색감 넘치는 표지도 원서와 동일하다. 이제까지 예수, 로베스피에르, 트로츠키, 마오쩌둥, 호치민 등 5권이 나왔고, 카스트로와 제퍼슨이 이번에 그 뒤를 잇게 된 것이다.

'18세기의 카스트로' 제퍼슨과 '20세기의 제퍼슨' 카스트로?

▲ <카스트로 : 아바나 선언>(피델 카스트로 지음, 타리크 알리 서문, 강문구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 ⓒ프레시안
제퍼슨과 카스트로라는 조합이 상식을 깨는 듯 보이지만, 조금만 더 곱씹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제퍼슨은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영국 정부의 폭정에 맞서 들고 일어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대서양 건너의 권력자들이 아메리카 민중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가령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이제 아메리카의 산과 들에서, 산등성이와 평원과 정글에서, 황야와 도시의 번화가에서 이 세계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폭발하고 있다. (…) 이제 그들은 야만적인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중이다. 왜냐하면 이 위대한 민중이 '그만하면 됐다'고 말하고 행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행진은 진정한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결코 굴복하지 않는 진정한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조국 아니면 죽음을! 앞으로 전진!"

이것은 1962년 2월 4일 쿠바 민중들이 채택한 '제2차 아바나 선언'의 마지막 문구이다(<카스트로 : 아바나 선언>, 142~143쪽). 이 글 곳곳에 나오는 '쿠바'라는 단어의 자리에 '식민지 연맹'을 넣고 '미 제국주의'의 자리에 '영국의 폭군'을 넣어보면, 그대로 말이 된다. 제퍼슨이 썼다고 하면서 낭독해도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거릴 만하다.

반대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다들 카스트로 하면 좌익 독재자들 중 하나 정도로 여기곤 하는데, 그의 출발점은 사실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그는 미국 마피아들과 손잡은 바티스타 군부 정권에 맞서 혁명적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며 정치 역정을 시작했다. '아바나 선언'의 전반부를 꽉 채우고 있는 '역사가 나에게 무죄를 선고하리라'라는 유명한 법정 변론에도, 예상 외로 '좌파'라는 꼬투리를 달 만한 내용은 별로 없다. '아바나 선언'의 서문을 쓴 파키스탄 출신의 신좌파 저술가 타리크 알리에 따르면, 1958년 혁명 당시에도 카스트로는 아직 신념 있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고 한다.

법정 변론에서 카스트로가 주로 인용한 저자들은 마르크스나 레닌이 아니라 장 자크 루소, 토머스 페인이었다. 즉,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레닌의 '4월 테제'가 아니라 1776년의 '필라델피아 의회 독립 선언문'과 프랑스 '인권 선언'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자명한 진리를 믿는다.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에게서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 같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 받는다. (…) 어떤 정부라도 이러한 목적을 파괴하려 하면 언제든 그 정부를 변경하거나 제거하고, 새 정부를 설립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 이 새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잘 실현할 원칙을 토대로 삼으며, 그러한 형태로 권력을 조직한다." ('필라델피아 의회 독립 선언문', <카스트로 : 아바나 선언>, 96쪽에서 재인용)

카스트로가 혁명을 하고 미국에 맞서고 지금까지 사회주의 쿠바를 지켜온 정신이 이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제퍼슨과 그의 동지들의 정신이었다. 말하자면 카스트로는 '20세기의 제퍼슨'이고 제퍼슨은 '18세기의 카스트로'였던 셈이다. 제퍼슨과 카스트로라는 이상한 조합이 실은 예상 외로 깊은 인연의 한 쌍이었던 것이다.

두 명의 '봉기'의 행동가이자 사상가들

▲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토머스 제퍼슨 지음, 마이클 하트 서문, 차태서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 ⓒ프레시안
이 두 사람을 잇는 열쇳말이 있다면, 그것은 '봉기'다. 둘 다 봉기의 행동가이자 사상가들이다. 도대체 '봉기'라는 말을 제외하면, 이들 사상의 9할이 허물어진다.

사실 '봉기'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는 금칙어에 가깝다. 역사 속의 끊임없는 봉기가 혁명으로 발전·성공하지 못하고 진압된 역사 탓이다. 이런 사회에 프레시안북은 봉기의 사상가들의 선집을 그것도 두 권이나 낸 셈이다. 세상이 좋아진 것인가 아니면 그만큼 세상이 절박해진 것인가.

아무튼 이 두 책은 제퍼슨과 카스트로의 이러한 면모를 잘 드러내준다. 특히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와 함께 <제국>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그 하트)가 쓴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의 '서문'은 봉기의 사상가로서 토머스 제퍼슨의 탁월함을 설득력 있게 부각시킨다.

제퍼슨의 글들에서 몇 문장을 따로 떼어 인용해보면, 이보다 더 불온한 문장도 달리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다.

"한두 세기마다 발생하는 약간의 인명 손실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유의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들과 압제자들의 피를 먹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 나무에 주는 천연 비료입니다."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 80쪽)

이 말은 이미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인용했다가 보수 언론의 색깔 공세를 당하기도 한 어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발언들도 있다.

"정부에 대한 저항 정신은 매우 소중하기에, 저는 이것이 앞으로도 영원히 보존되기를 기원합니다. 물론 이러한 정신이 잘못 발취되는 경우도 종종 있겠지만, 아예 침묵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차라리 훨씬 나을 것입니다. 저는 때때로 약간의 봉기가 일어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대기에서 일어나는 폭풍과도 같습니다."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 74쪽)

이 정도로는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면, 이것은 어떤가. 마오쩌둥이나 폴 포트가 아니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의 발언이다.

"나 역시 이러한 대의를 위해 희생된 순교자들에 대해서는 깊은 유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혁명(프랑스대혁명)이 실패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전 인류의 절반이 사라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가운데 아담과 이브만이 남는 대신 그들이 자유롭게 될 수만 있다면, 그 편이 현재의 세상보다 나을 것입니다."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 93쪽)

제퍼슨이 생각 없이 이런 발언들을 쏟아낸 게 아니다. 그는 봉기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연한 사상을 갖고 있었다. 하트의 '서문'의 요점이 그것이다. 제퍼슨은 민주주의가 부패하거나 쇠잔하지 않으려면 각 세대마다 자신만의 봉기가 있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제퍼슨의 계산법에 따르면, 20년에 한 번은 세상을 뒤바꾸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제퍼슨이 마오쩌둥 식의 계속 혁명론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봉기'는 '애국자들과 압제자들의 피'가 튀는 진짜 봉기일 수도 있지만, 헌법을 새로 만드는 제헌 과정, 즉 평화적 봉기일 수도 있다.

하트는 제퍼슨의 이러한 사상이 레닌도, 마오쩌둥도 해결하지 못한 혁명 과정의 딜레마에 대해 가장 올바른 해법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혁명은 관료화한다는 명제에 대한 제퍼슨식 해법은 곧 각 세대마다 자신의 혁명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혹은 공화국을 그 토대부터 새로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퍼슨식 해법은 다름 아니라 또 다른 봉기 전문가 카스트로가 귀담아 들어야 할 지혜다. 그의 쿠바 역시 내부 민주주의에서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지금 쿠바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이 떠드는 '자유화'가 아니라 쿠바의 젊은 노동자, 민중의 또 다른 '봉기', 즉 민주화의 시작이다. 카스트로의 혁명은 제퍼슨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하지만 그 반대도 진리다. 제퍼슨의 혁명은 카스트로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한때 봉기로 등장한 한 국가(미국)는 지금 전 세계 민중의 제1의 타도 대상이 되어 있다. 한 지역 민중의 봉기가 이들에 의한 다른 지역 민중의 또 다른 지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1789년 미국 혁명은 온 몸으로 보여줬다.

카스트로는 저들의 공화국에서 배제된 모든 이들의 새로운 봉기를 촉구한다. "인디언, 가우초, 메스티소, 삼보, 콰드룬, 재산이나 소득 없는 백인 등 모든 민중"(<카스트로 : 아바나 선언> 141쪽)의 봉기를 호소한다. 쿠바 혁명이 봉기의 첫 횃불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 횃불 행진이 라틴아메리카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즉, 20년마다 반복되어야 할 봉기는 또한 지난 번 봉기에서 배제되었던 자들을 포함하는, 아니 그들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봉기여야 한다. 이렇게 제퍼슨과 카스트로가 서로를 비추는 과정에서 인류 전체의 해방의 길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지난 봉기로부터 20년을 훌쩍 더 넘긴 우리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과 <카스트로 : 아바나 선언>은 각각 180여 쪽, 160여 쪽의 짧은 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깊이가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시간 부담 없이도 밀도 있는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다. 문장 하나하나가 인용 가치를 지닌 테제와도 같기 때문이다.

내용이 편향되지도 않았다.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의 경우 장(章)을 하나 할애해서, 흑인, 인디언 등에 대한 제퍼슨의 인종주의적 시각을 폭로해주는 그의 글들을 함께 모아놓고 있다. 봉기의 사상을 풀어놓은 이 책 전반부의 글들과 봉기에서 빠질 자들(이른바 유색인들)에 대한 후반부의 글들을 함께 읽다 보면, 왜 '아바나 선언'이 '독립 선언문'의 뒤를 이을 수밖에 없었는지 보다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책의 독서 경험이 뜻 깊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책들의 핵심 사상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20년마다 새로운 혁명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제퍼슨의 역사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보자. 지난 번 봉기, 그러니까 1987년의 항쟁들이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이었던가. 20년이 이미 훌쩍 지났다. 2008년 촛불 항쟁이 있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예고편 성격이 더 컸다.

지금 우리의 답답함. 이것은 제퍼슨이 말하는 저 새로운 봉기가 지연되는 데 대한 답답함이 아닌가. 그 가운데, 낡은 것은 철면피하게 임종의 순간을 미루고 새로운 것은 지나치게 수줍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선언'의 등장과 승리를 위해, 우리, '혁명가들'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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