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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초로의 日 의사가 한국 한의사를 찾은 이유는?

[인터뷰] 日 도야마대 의대 와타나베 유키오 박사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갑산한의원. 이 한의원의 대표 한의사 이상곤 박사(전 대구한의대학교 교수)가 환자에게 침을 놓는 모습을 한 초로의 일본 남성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간간이 이 박사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적었다. 시술이 끝난 후에는 환자를 직접 만나서 몇 가지 경과를 묻기도 했다.

그와 이명으로 갑산한의원을 찾은 김민주(가명·23) 씨의 대화를 엿들었다.

"이명으로 병원을 찾은 것은 언제입니까?" "이 곳에서 이명을 치료한 환자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서 1주일 전에 처음 방문했습니다." "첫 번째 침을 맞은 후에 상태에 호전이 있었습니까?" "네, 귀에서 울리는 소리가 줄어들고, 소리가 들리는 시간 간격이 많이 줄었습니다." "놀랍군요!"

김 씨뿐만이 아니었다.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갑산한의원을 찾은 이봉준(가명·48)씨도 그를 놀라게 했다.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은 지 오래되었습니까?" "네, 수년째 고생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환절기에만 재채기, 콧물 등의 증상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계절과 관계없이 재채기, 콧물, 코막힘 등으로 고생을 했어요. 코 대신 입을 벌려야 하니까, 당연히 목에 염증마저 자주 생겼습니다."

"갑산한의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았습니까? 효과는 있었습니까?"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이 곳을 찾아왔습니다. 자율신경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서, 정기적으로 침을 맞고, 약 처방을 받아서 지금은 정말로 많이 나아졌습니다. 일상생활을 문제 없이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는 일본 도야마(富山)대학교 의과대학 이비인후과 과장으로 재직 중인 와타나베 유키오(64) 박사. 와타나베 박사는 일본에서 현기증(어지럼증)의 권위자로 알려진 의사다. 현대 의학, 전통 의학이 양립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현대 의학뿐이다. 당연히 와타나베 박사도 현대 의학으로 진료하고, 가르친다.

이런 와타나베 박사가 한의원에서 침 시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양의사, 한의사가 서로 적대하는 일이 다반사인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그나마 이상곤 박사의 배경 설명을 듣고 나서야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도야마대 의대는 일본에서 서양 의학에 전통 의학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 갑산한의원 이상곤 박사(전 대구한의대 교수)가 침을 놓는 모습을 일본 도야마대 의대 와타나베 유키오 박사가 지켜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일본 의사가 침 법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설명을 듣고서도 여전히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상곤 박사를 좇던 와타나베 박사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 한국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이상곤 박사는 그가 대구한의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교류가 있었다. 그는 비염, 이명 등 이비인후과 질환 치료를 잘 하는 한의사로 일본에도 널리 알려졌다. 지난 2006년에는 그가 새롭게 개발한 한약 처방이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는 임상시험도 공동으로 진행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의 침 법에 계속 관심이 있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마련됐다."

이상곤 박사는 지난 2006년 5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약 20개월간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에게 새롭게 개발한 자신의 한약 처방의 효과를 살피고자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와타나베 박사는 이 임상시험의 프로토콜을 인증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20개월간의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 이 박사의 한약 처방은 기존의 처방보다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한국에서는 당신 같은 양의사가 침 법과 같은 전통 의학에 관심을 갖는 일이 보기 드물다.

"도야마대 의대는 일본에서도 현대 의학과 전통 의학을 접목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런 일은 꼭 필요하다. 왜냐 하면, 그렇게 현대 의학과 전통 의학을 접목시키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지럼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양방, 한방 약을 같이 사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나 같은 경우는 어지럼증으로 찾아오는 환자에게 우선 양방으로 진료를 한다. 상태가 계속 호전되지 않으면 한방으로 진료를 바꿔본다. 실제로 한방으로 진료했을 때, 환자의 상태가 크게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아예 처음부터 양방, 한방 처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지럼증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환자들은 이런 방법이 잘 통한다."

도야마대 의대는 와타나베 박사가 설명한 양방, 한방 처방의 결합을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체계화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 이상곤 박사는 "도야마대 의대를 방문하고서 부끄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며 "한국의 한의학계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전통 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을 일본의 양의사들이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회만 된다면 허임 침 법 배우고 싶다"

▲ 도야마대 의대 이비인후과 과장으로 재직 중인 와타나베 유키오 박사는 현대 의학과 전통 의학의 접목에 관심이 많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상곤 박사의 침 치료에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


"이상곤 박사의 침이 비염, 이명 치료에 큰 효과가 있다, 이런 얘기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박사의 명성을 듣고서 외국에서도 환자가 찾아오고, 이 박사를 찾아온 이명 환자 10명 중 7명이 효과를 본다고 들었다. 이명은 현대 의학으로도 굉장히 치료가 어려운 병인데, 이 정도의 치료 효과는 굉장한 것이다.

이상곤 박사의 침 법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는데, 마침 이런 기회가 왔다. 이참에 그의 침 법의 내용을 자세히 파악할 생각이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그의 침 법을 배워서 어지럼증 환자를 치료하는 데도 한 번 이용해보고 싶다. 일본 (양)의사들 사이에서 최근 전통 의학의 약뿐만 아니라 침에 대한 관심도 높은 편이다."


- 이상곤 박사의 침 법은 이른바 '허임 보사 침 법'으로 불린다. 조선의 명의 허임의 침 법의 전통을 다시 부활시킨 것이라서 이렇게 부르는데, 혹시 허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허임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일본, 중국에도 널리 알려진 조선의 명의라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에 대해서도 좀 더 알아보고 싶다. 다른 무엇보다도 단절된 허임의 침 법을 이상곤 박사가 다시 되살렸다는 게 놀랍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텐데, 이 박사가 성공적으로 해냈다."

- 일본에서는 전통 의학이 공식적으로는 의료 체계 바깥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일반인 사이에서 침에 대한 수요 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일본에서도 자격증을 받은 침구사들이 일반인을 상대로 침을 놓을 수 있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듯이, 침구사들이 침으로 일반인에게 의사가 미처 해주지 못한 의료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양자가 보완 관계를 가지면서 양립하는 게 시민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현대 의학 vs 전통 의학? 제 3의 길을 찾자"

- 한국에서는 양방, 한방 이원화된 의료 체계가 마련돼 있다. 이런 이원화된 의료 체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방금 얘기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양자가 서로 적대하지 않고 자신만의 장점을 부각하면 결과적으로 시민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선의의 경쟁 속에서 둘 다 발전할 수 있을 테고, 만약 서로가 장점을 취하면 전혀 다른 새로운 의학의 등장을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

이런 와타나베 박사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사실 한국의 전통 의학, 서양 의학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의료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의학은 중국, 일본의 전통 의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력이 있고, 서양 의학의 수준도 세계 최고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되었다.

만약 이런 전통 의학, 서양 의학이 서로의 장점을 취하면서 제3의 길을 모색한다면, 그것은 한국의 시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축복이 될 것이다. 은퇴를 앞둔 초로의 양의사가 스무 살이나 어린 이웃 나라의 한의사의 침 법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는 모습, 우리는 혹시 눈앞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 와타나베 박사가 얘기한 전통 의학과 현대 의학의 장점을 취한 새로운 의학, 한국에서 등장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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