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아카데미(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 중 상당수가 지난 18일 독립영화 감독 155인의 시네마루 보이콧 선언에 동참했으나, 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현재 시네마루가 자체 기획해 지난 18일부터 시작한 'Just The Beginning : 1+1=! 영화제'에서 버젓이 상영되고 있다. 작품의 판권을 갖고 있는 영화아카데미의 상위기관인 영진위가 감독들에게 사전 상의나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시네마루 측에 작품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이에 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감독들 및 영화아카데미 비상대책위원회는 22일 시네마루 앞에서 각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영진위에는 배급 경위를 투명하게 밝힐 것을, 시네마루에는 상영을 당장 중단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또한 상영작을 연출한 감독들이 "우리 영화가 이곳에서 상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22일부터 오늘까지 매일 10시부터 3시 사이에 시네마루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펼쳐왔다. (▶관련기사 참조 : 아카데미 출신 감독들 "왜 멋대로 내 영화를 트나" )
그러나 시네마루 측은 "영진위에서 합법적으로 작품을 수급받은 만큼 상영을 중단할 이유는 없다"며 상영을 강행할 뜻을 비쳤다. 그리고 23일 홈페이지에 기획전 2, 3주차 상영작 소개와 시간표를 발표하면서 문제가 된 작품들의 상영을 강행하는 한편,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감독들의 작품 15편을 새로이 상영작 목록에 포함시켜 상영계획을 공지했다. 감독들의 상영중단 요구를 정면에서 거절한 것은 물론, 영화아카데미 비상대책위 측을 도발한 셈이다. 또한 본지가 확인한 결과, 단편을 연출한 감독들 역시 시간표가 공지된 후인 오늘 오전까지도 자신의 작품이 상영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한 단편 연출자는 "이런 식으로 창작자의 권리를 무시하다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 릴레이 1인시위 3일째 날에 피켓을 들고 있는 <로망은 없다>의 수경 감독. 영화아카데미 감독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작품이 상영되는 것에 항의하며 한다협의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왔으나 극장측은 이들의 요구와 의사를 무시한 채 상영 강행을 확정했다. 감독들은 22일 극장입구 바로 앞에서 시위를 했으나 같은 건물에 있는 레스토랑 등으로부터 "영업에 방해된다"는 항의를 듣고 23일부터 큰길 앞으로 장소를 옮겨서 시위를 진행했다.ⓒ프레시안 |
영화아카데미 감독들은 "어이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상영이 예고된 단편의 감독들은 물론, 시네마루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에 동참하고 있던 감독들 역시 황당하다는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아카데미 비상대책위 측은 원래 오늘까지 1인 릴레이 시위를 진행하기로 했으나, 오늘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이후 대책들을 논의할 예정이다.
베를린영화제에 갔다가 22일 귀국한 소상민, 류형기 감독 역시 뒤늦게 릴레이 시위에 참여하면서 현재 영진위를 둘러싼 사태에 유감을 표했다.
<나는 곤경에 처했다!>의 소상민 감독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배급권이 학교 측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전에는 사전에 연락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 보이콧을 선언했는데도 이런 식으로 땜빵으로 상영되고 있다. 성명서에 나온 표현대로 '동원되는 느낌'이다"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시네마루 측에서 해명서를 통해 "땜빵상영이 아닌 사전에 기획해 준비하고 있었던 프로그램"이라 밝혔지만, 이를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소상민 감독은 "1+1=! 영화제라는 게 어떤 의미로 어떻게 기획된 것인지 전혀 알 도리가 없었다. 내가 검색을 잘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기획전을 한다면서 제대로 홍보조차 하지 않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너와 나의 21세기>를 연출한 류형기 감독 역시 출국 전날 '보이콧 선언'에 서명을 했으나 베를린영화제에 있는 동안 막무가내로 자신의 영화가 상영됐다면서 "이러게 쉽게 서명의 의미가 없어지나 싶다"며 착잡함을 드러냈다. "내 영화가 마치 도둑질당하는 느낌"이라는 것. "감독들 입장에서야 한 번이라도 더 상영이 된다면 반길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이런 식은 아니다"라는 게 류형기 감독의 입장이다. 또한 류감독은 "내 영화가 여기서 상영된다는 사실보다 인디스페이스가 없어지는 것을 보며 더욱 강한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인디스페이스와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영화를 보러 다녔다는 류형기 감독은 "정당한 주체가 운영했던 곳이 불공정한 공모를 통해 위기를 겪고 있어 화가 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객들이 직접 나서 행동하는 것을 보며 힘이 나기도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인 영진위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조희문 영진위원장이 23일 극장에 들르기는 했으나, 1인시위를 펼치고 있는 감독들과는 대화하지 않은 채 극장측 관계자만 만나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시네마루 측 역시 22일 돌린 해명서 외에 비상대책위에 별다른 대화를 청해오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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