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도 파악 못한 의사 단체
실제로 대한의사협회의 성명을 살펴보면, <PD수첩> 광우병 편을 둘러싼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가족들이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에서 <PD수첩>은 이해 당사자인 유족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인용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김철중 기자), <중앙일보>(김정수 기자), <동아일보>(이진한 기자) 등은 이를 그대로 인용 보도했다.
그러나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은 2008년 4월 29일 방송되었고, 아레사 빈슨의 유족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08년 5월 27일이었다. <PD수첩> 방송 당시에는 의료 분쟁이 발생한 상황이 아니었다.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대한의사협회의 성명을 언론이 또 그대로 받아 쓴 것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더구나 4월 29일 방송된 <PD수첩>은 방송 시점에서도 유족뿐만 아니라 담당 의사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며 "<PD수첩>이 유족 입장만 일방적으로 대변한 것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또 "당시 (아레사 빈슨의) 의사는 의료 윤리상 환자의 의료 관련 정보를 공개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단체는 "만약 이 시점에서 의사가 빈슨의 사인을 주장했다면, 이는 전 세계 의사들이 지켜야 할 환자 비밀 엄수 의무를 위배하는 행위였다"며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는 미국의 의사들이 환자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의료 윤리를 어기고, <PD수첩>이 이를 강요했어야 한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 대한의사협회의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못한 무지한" 주장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그대로 받아 썼다. ⓒ프레시안 |
왜곡에 더해 '무지'까지…
대한의사협회의 왜곡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한의사협회는 "(<PD수첩>이) 의학적으로 인간광우병 등 희박한 사인으로 과장해 보도한 것이 분명하며, 더욱이 이를 광우병과 연관짓는 것은 매우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사협회의 주장과는 반대로 소송 과정에서 빈슨의 담당 의사도 '인간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코브 병)'을 의심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빈슨의 담당 의사가 MRI 등을 통해서 인간광우병을 의심했다는 사실이 소송 과정에서 밝혀졌다"며 "미국 보건 당국(NPDPSC·국립프리온질병병리학감시센터)이 시체를 부검한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담당 의사가 빈슨의 사인을 인간광우병으로 의심하지 않았다면 굳이 보건 당국이 시체를 부검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취하는 경우 인간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94퍼센트가량 된다'는 <PD수첩>의 과장된 주장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의학적으로 수긍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런 주장이야말로 "과학적으로 수긍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유전자 'MM' 형을 가진)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은 인간광우병과 같은 프리온 질환에 저항하는 또 다른 유전자 'EK' 형이 하나도 없는 백인과 달리 10퍼센트 가까운 발현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등은 이런 주장을 자세히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유전자 'EK' 형과 인간광우병을 관련시키는 설은 아직 학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공인된 연구 결과가 아니"라며 "이런 내용을 마치 널리 인정되는 유전자 'MM' 형과 언급하는 것은 인간광우병 연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한의사협회 성명서 검토한 학자 이름 밝혀라"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은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비과학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며 "아무런 학술적 권위도 가지지 않는 직능 단체인 의사협회의 의견을 재판부가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의 행태도 에둘러 비판한 셈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대한의사협회의 현 집행부가 대다수의 양심 있고 지각 있는 의사들의 이름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말 것을 정중하게 권고하며, 일반인의 혼란을 가중하는 이런 낮은 수준의 성명서가 대한의사협회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는지 그 경위와 더불어, 성명서 내용을 검토한 학자의 이름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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