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민사회의 저층에서 감지되는 위기는 그보다 훨씬 더 일상적이고 구조적이다. 시민사회 단체들은 사업과 인력을 유지할 돈이 없고, 정치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있으며, 시민들 역시 매우 위축되어 있다. 이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 세력이 직면한 세 가지 도전에 지혜롭게 응전해야 한다.
시민사회 주리틀기
첫 번째 도전은 정치환경의 악화와 제도적 통로의 봉쇄다. 이명박 정권은 한편으로 시장 및 성장 포퓰리즘, 다른 한편으로 권위주의와 국가조합주의라는 두 바퀴로 굴러간다. 전자가 친기업, 친부자, 반노동, 반공공적 정책을 기초하고 정당화하는 원리라면, 후자는 독립적 시민사회 세력을 약화시키고 친정권 세력을 강화하여 권위주의 국가와 보수적 시민사회를 잇는 지배블럭을 완성하려는 기획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가 '시민사회에 적대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현 정권은 시민사회 자체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기준에 따라 시민사회 단체들을 차별적으로 지원 또는 탄압한다.
이명박 정권이 진보적, 독립적 시민사회 세력을 약화시키는 전략은 크게 네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그 첫 번째, 가장 강력한 방법은 '돈줄 끊기'다. 이것은 진보 헤게모니의 물적 기초를 허무는 전략이다. 이미 정권 출범 3개월 뒤인 2008년 5월에 경찰청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포함하여 이른바 '불법폭력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는 68개 단체를 선정했고, 행정안전부는 이중 25개 단체를 확정하여 정부보조금 지급에서 불이익을 주도록 조처했다. 2009년 2월에는 경찰청에서 광우병대책회의 소속 1842개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 등 야당을 포함하는 '불법폭력시위단체' 목록을 작성해서 행정안전부에 제출했다. 2009년 9월엔 희망제작소 후원 기업들에 대한 국정원의 불법사찰 의혹이 제기되어 박원순 상임이사가 강력히 항의한 바 있다. 이처럼 정부는 돈줄을 끊어 시민사회를 고사시키려 하고 있다.
두 번째 방식은 '도덕성 흠집 내기'다. 2008년 검찰은 환경재단 대표인 최열 씨와 환경운동 리더들을 횡령비리 범죄자처럼 만들었다. 2009년 5월, 감사원은 543개 시민사회단체들에게 보조금 집행과 정산 내역을 낱낱이 보고할 것을 요구하여 감사를 진행했고, 그해 가을 검찰은 민예총 등 16개 시민사회단체들을 횡령 혐의로 조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바로 그 방식이다.
세 번째 방식은 '제도적 통로의 봉쇄'다. 독립적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부처 사업의 구상과 실행 단계에서 완전히 배제되었음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이 독점하고 있는 국회에서 입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없고, 언론 역시 일부 진보언론을 제외하곤 진보적 단체의 활동과 요구를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1990년대 시민단체의 성과를 그토록 빛나게 했던 핵심적인 통로들이 모두 막힌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방식인 '시민에 대한 겁박'은 명망가에 대한 탄압처럼 크게 부각되진 않지만 그 효과는 매우 광범위하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시민들에게 허위정보유포죄, 명예훼손죄, 사이버모욕죄, 저작권법저촉죄 등 죄목을 덮어씌워 처벌한다. 인터넷을 통해 이런 사건들은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전달되고, 그것은 상당한 겁박 효과를 낳았다. 이와 같은 정치환경의 악화는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을 행동능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행동반경을 제약하고 있다.
▲ 진보적 시민사회 단체들은 시민사회의 문화적 변화와 새로운 자의식, 문화적 감수성, 행동양식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 |
시민들은 더이상 '희생자'이고 싶지 않다
두 번째 도전은 시민사회의 탈중심화와 문화변동이다. 여기서 '탈중심화'(decentralization)는 '분화'(differentiation)와 같은 뜻이 아니다. 한국 시민사회의 분화는 이미 1987년 민주화와 더불어 시작됐다. 민주화 운동 또는 민중운동의 '부문운동'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었던 많은 시민사회 영역들이 1990년대 들어서는 노동, 통일, 평화, 환경, 여성, 소비자, 교육, 권력감시 등 분야로 분화됐다. 이와 달리 탈중심화라는 것은 자원과 영향력이 일부 강력한 조직들에 집중되지 않고 수많은 개인, 집단, 조직으로 분산되는 것을 뜻한다.
한국 시민사회는 1990년대의 분화 과정에 이어, 2000년대 들어서는 급속한 탈중심화를 경험했다. 그러한 탈중심화를 목격한 최초의 극적인 사건은 2002년 여중생 추모집회에서였다. 이 경향은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를 거쳐 지속됐고, 2008년 촛불항쟁은 한국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에 새로운 주기가 이미 궤도에 올라 있음을 분명히 확인시켜줬다.
이러한 탈중심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역시 인터넷과 휴대폰이다. 정보통신기술의 혁명과 사이버액티비즘의 확산은 새로운 종류의 공중(公衆)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한국 시민사회의 탈중심화 경향은 정보사회 현상을 넘어서는 측면을 갖고 있다. 시민사회 연합체들의 관계구조 전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는 대형 시민단체들이 정치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다양한 중소규모 시민단체, 진보적 싱크탱크와 소셜디자인 그룹들이 생겨났다. 소규모 지역공동체들과 인터넷 소모임 등 온오프라인의 풀뿌리 네트워크들이 시민사회 기저에 넓게 확산됐다. 더 이상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조직이 없기 때문에 여러 분산된 힘들을 모을 수 있는 중심, 응집된 파워를 발휘하는 대표선수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것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진짜 문제는 탈중심화된 현실에 상응하는 새로운 네트워킹, 새로운 연대의 방식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위와 같은 탈중심화 경향과 더불어 1987년 민주화 이후, 짧게는 민주정권 10년 동안 시민들의 주권의식이 크게 성장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2000년대의 일련의 촛불집회들에서 조직된 시민사회 단체들은 정권·정부·정책을 비판하는 네거티브 프레임을 주로 구사했고, 국민과 민중은 주로 고통 받거나 분노하는 희생자로 표현되고 있었으며,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시민들의 저항 문화 속에서는 이 나라의 정치와 사회에 당당한 주인으로 참여한다는 자부심과 긍정적 정체성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념과 정책의제보다는 구체적 사건과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진보적 시민사회 단체들은 아직 시민사회의 이러한 문화적 변화, 특히 20~30대 청장년층의 새로운 자의식과 문화적 감수성, 행동양식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왜 사람들은 부동산과 주식에 눈을 돌리나?
끝으로 세 번째 도전은 한국 시민사회의 이중성 심화다. 사회적, 민주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공적 시민사회'와, 개인적 성공과 자산증식을 추구하는 '욕망의 시민사회'라는 두 모습이 서로 대립하며 공존하고 있는 모순적 현실이다. 이런 이중성이 시민사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인 까닭은, 그것이 사회적, 공공적 해결책보다는 기회주의와 현실순응주의를 강화시키며, 따라서 진보 세력의 시민사회 기반을 매우 협소하고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직면해 있는 4대 체감문제는 바로 고용, 주거, 교육, 노후 문제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주된 해결방식이 개인자산의 증식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런 개인주의적 대응들은 사회문제의 사사화(私事化)를 더욱 심화시키는 시스템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즉 사회문제로 고통 받는 시민들은 개인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가운데 바로 그 문제적 사회시스템의 조력자가 된다.
이런 역설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뭘까? 노동의 세계, 공공의 세계, 자산의 세계라는 3세계 사이의 악순환 메커니즘 때문이다. 즉 고용 불안이 구조화된 노동시장, 공적 책임을 방기하는 국가, 개인적인 자산증식 추구는 서로를 강화하는 순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은 노동을 통해서도, 국가를 통해서도 생활상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미래의 리스크에 대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동과 공공의 세계 밖에 있는 경제적 원천, 즉 부동산이나 주식·펀드·채권 등 금융자산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이런 종류의 자산 개인주의가 지배적인 삶의 양식으로 정립되면, 사람들은 노동의 세계에서 서로 연대하거나 국가의 공적 책무를 강화하는 '사회적 우회로'를 외면하게 된다.
특히 자산분포가 소득분포와 구분되는 고유한 구조와 동학을 갖게 될 때 자산증식추구는 시민사회의 연대 기반을 심각하게 허물어뜨릴 수 있다. 즉 소득수준과 자산수준이 비례하지 않는다면, 그건 임금수준이나 고용지위가 낮은 사람이라도 자산증식에 성공적이거나 성공을 기대할 수 있음을 뜻한다. 계급의식과 연대행동에 중대한 균열이 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이 그런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런던정경대의 경제지리학자인 스토퍼(Michael Storper)는 임금정체나 고용유연화 등이 값싼 상품과 서비스 공급으로 이어지는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가 발생할 경우 "노동자로서는 상대적 손실, 소비자로서는 상대적 이득"이라는 관계가 성립함을 규명한 바 있다. 이를 소득-자산 관계에 응용해 보면, 자산분포가 소득분포에서 독립되어 있을 경우 고소득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자산증식 시스템과 이해관계를 갖는 사회계층들은 어떤 정권이나 정책이 노동, 복지 등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집값, 재개발, 뉴타운, 주가(株價) 등에 긍정적 영향이 기대된다면 '투자자 잉여'(investor surplus)가 발생하는 셈이다. 직장인, 노동자, 중소상인들이 시장포퓰리즘적 경제논리에 동조하게 되는 이유다.
지금 한국에선 위와 같은 자산증식의 시스템이 (자의든 타의든) 시민들의 삶 깊숙이 침투되어 있기 때문에,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시민사회 세력들조차도 그 가치를 삶의 일상에서 실현하고 만개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진보개혁이여, 변화하라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대응방향을 대략 스케치하자면 이렇다.
첫째, 정치적 탄압과 봉쇄에 대해 진보개혁 진영은 주로 사실관계를 폭로하고 그것의 반민주성을 비판하는 식으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감시와 처벌의 실상만 전달한다면 시민들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음을 의식해야 할 것이다. 준엄한 고발, 비장한 호소만이 아니라, 여유로운 조소, 당당한 자부심, 승리의 경험을 풍부히 공유해야 한다.
활동방식과 관련해선, 한편으로 전문용어로 도배한 정책리포트만 내놓는 전문가주의, 다른 한편으로 규탄성명과 항의집회만 관성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주의를 모두 극복해야 한다. 열악한 정치환경 하에서는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시민사회 기저의 근거지들을 구축해가는 실속 있는 진지전이 중요하다.
둘째, 시민사회의 탈중심화에 상응하는 새로운 연계와 연대의 모델을 실험하고 창출해야 한다. 이는 좁게는 시민사회 단체들 간의 관계, 넓게는 시민사회 단체와 시민사회 기저에 산포된 수많은 공동체와 네트워크들 사이의 관계에 관련된다. 탈중심화된 구조에서는 모든 관계가 쌍방적으로 된다. 진보적 시민사회 세력은 계몽에서 공감으로, 호소에서 대화로, 집중에서 협업으로 '대화적 전환'(dialogical turn)을 과감히 시도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전문가형 운동, 시민참여형 운동, 시민주도형 운동 사이의 선순환 관계를 창출해야 한다.
셋째, 노동·공공·자산세계 간의 사유화 강화 메커니즘을 끊기 위한 대안적 선순환 고리를 창출해내야 한다. '대박'의 욕망에 사로잡혀 살지 않더라도 삶의 리스크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시민정치의 사회적 토대가 조성된다. 시스템 개혁을 위해서는 고용 불안을 완화시키기 위한 정책대안을 개발하고, 국가의 공적 기능을 강화하는 국가재정구조 개혁을 추진하며, 고용과 복지를 통해 성장을 달성하는 대안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위해서는 개혁의 주체세력이 반드시 요구되는바, 욕망의 시민사회에 지배되지 않는 사회적, 공공적, 연대적 삶의 공간을 열망하는 시민사회의 욕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