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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회장이 '정직'을 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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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회장이 '정직'을 말하는 이유

[기고] 스스로 초법적 존재라 믿는가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돼야한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5일 선친이자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전 회장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한 발언이다. 언론의 보도를 보고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 전 회장이 '정직'을 권장하고 '거짓말'을 꾸짖다니. 아마 이 전 회장이 배운 정직과 거짓말은 보통 사람이 배운 그것과는 뜻이 다른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해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온갖 불법과 탈법을 동원해 삼성그룹 경영권을 아들에게 넘기려는 사람이 정직 운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의 발언을 달리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는 그의 발언을 음미하면 이 전 회장은 스스로를 정직한 사람으로,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전 회장의 발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직한 사람이 부정직한 사람들을 훈계하거나 권면하는 투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스스로를 객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사정이 이쯤되면 정신건강이 염려되는 지경이다.

이건희 전 회장이 배운 정직과 거짓말의 의미가 전도된 것도, 그의 정신건강이 나쁜 것도 아니라고 할 때 이 전 회장의 방자하기 그지 없는 발언을 이해하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이 전 회장이 스스로를 초법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며 국민들을 정말 우습게 알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독법을 억지스럽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가 않다. 이 전 회장은 사상 유례없는 1인 사면복권의 첫 수혜자가 된 직후 공식석상에서 "우리사회 각 분야가 정신을 좀 차려야 합니다"라고 기염을 토한 바 있는데, 본의가 무엇이건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유죄가 확정된 후 사면복권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이 전 회장의 연이은 발언들을 관통하는 코드는 특권의식, 법치주의에 대한 무시, 민주공화국의 최고 원리인 국민주권에 대한 경시 등으로 요약해도 무리가 없다. 하긴 이 전 회장과 그 가신그룹이 자신들을 특수계급이라고 간주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이들이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흔들만한 중대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독, 감시, 처벌할 국가기관 중 어느 하나 제 역할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다수 언론과 지식인들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이들을 옹호하기 급급했고, 결정적으로 많은, 어쩌면 대다수 국민들이 이들의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이들에게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이건희 전 회장과 그 일가 및 가신그룹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은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건희 일가 및 가신그룹의 발호는 강하고 선한 국가의 구성 및 이런 국가를 조직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시민들의 출현, 공정한 시장경제질서의 정착, 법치주의의 제도화, 특권과 반칙의 폐절 등의 과제를 한국사회에 던져주고 있다.

최근에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보면 이건희 전 회장과 그 일가 및 가신그룹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난다. 김 변호사의 책을 읽고 나면 이건희 신화가 한낱 허상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삼성전자의 비약적 발전은 '이건희 때문'이 아니라 '이건희에도 불구하고' 라고 평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건희 전 회장을 우러러보고 두려워하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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