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개울은 바다의 시작이요, 핏줄이거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개울은 바다의 시작이요, 핏줄이거늘

[화제의 책] 도종환의 <마음의 쉼표>

맑은 물 한잔의 명상

힘이 부쳐도 격투를 벌여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시대, 매일 추격당하는 자처럼 우울한 영혼이 배회하는 세상에서 시인 도종환의 목소리는 '쉼표'가 되고 '성찰'이 된다. 그리하여 지금껏 참아왔던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문장이 끝나고 속도에 쫓겼던 마음이 사슬을 푼다. 메마르고 여위어 가던 영혼이 어느새 두레박 없이도 맑은 물을 긷는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습니까?"라고 다정하게 물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시인은 우리 마음에 무엇이 비워져야 하고 무엇이 채워져야 할 지 정갈한 깨우침의 숲으로 우리를 편안히 이끈다. 그는 "쉼표도 악보의 한 부분"이라며, "쉬어갈 때 쉬어갈 줄 모르면 박자를 놓치듯" 인생의 박자도 놓칠 수 있다고 고즈넉한 어조로 산방명상(山房瞑想)을 들려준다. 그건 인생이라는 전장(戰場)에서 부상 입은 이들을 위로하는 시인의 노래요, 자기도 모르게 가혹해진 우리의 마음을 씻어주는 정결의 제의다.

▲ <마음의 쉼표>(도종환 지음, 프레시안북 펴냄). ⓒ프레시안
<프레시안>에 1년여 넘게 연재한 '도종환의 산방엽서' 가운데 가려 뽑은 글과 아직 선보이지 않았던 글을 더하여 나온 그의 책 <마음의 쉼표>(프레시안북 펴냄)는 손문상 화백의 삽화가 얹어져 그야말로 한 권의 예쁜 그림엽서첩이 되었다. 지난 겨울 폭설로 오도 가도 못할 때 해야 할 일은 많고 잡아놓은 약속도 하나 둘이 아닌데 산방에 갇힌 처지가 되었으나 도리어 그것이 자유와 사색의 시간을 주었다고 문자로 소식을 전해왔던 도종환 시인은, 이 책에서도 눈 덕분에 찾아온 휴식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있다.

시련의 날을 스러지지 않고 밀고나간 이의 축복

그렇게 고립된 혼자이지만 그저 쓸쓸하다고만 여기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와 자연의 숨결에 귀를 기울여 얻은 깊은 사유의 편린들을 펼쳐낸 그의 명상집은 한 편 한 편 마다 한 그루 황금나무요, 옥으로 다듬은 가지다. 소리 없이 오는 봄을 보면서 그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굳건한 격려의 인사를 보낸다.

"봄은 소리 없이 옵니다. 그러나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옵니다. 지금도 몸 바깥으로 새순과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겨울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 이 세상 모든 봄꽃이 다 겨울부터 준비해온 꽃이라고 생각하면 아름답고 귀하기 그지없습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이름과 향기를 가진 사람들도 그 향기와 빛나는 삶을 겨울부터 준비합니다. 모질고 추운 시련의 날을 보내면서도 멈추지 않고 자기 생을 앞으로 밀어올린 이들에게는 반드시 꽃피는 날이 찾아옵니다."

작고 낮은 존재의 힘에 대한 시인의 관찰과 경이로움은 산방엽서의 도처에 새겨져 있다. "민들레 뿌리"라는 시에서 그는 이렇게 우리를 일깨운다.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 꽃 피기 어려울 때일수록 두 배 세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향해."

그러면서 시인은 "경박하지 말고 진지해져야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낮아지고 겸손해져야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또 우리에게 속삭인다.

여리고 낮은 존재의 아름다움

"여린 가지"라는 시에서 그는 "가장 여린 가지가 가장 푸르다. (…) 줄기 맨 끝 가지들은 한 겨울에도 푸르다"면서 연약한 듯한 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이끄는 역사의 비밀을 편안한 표정으로 누설한다.

"어린잎이 나무의 생명을 끌고 갑니다. 가장 여리고 가장 푸른 잎이 맨 위에서 나무의 성장을 이끕니다. (…) 연두 빛 어린잎이 밀고 간만큼 나무는 성장한 겁니다. 새로운 시대로 그렇게 옵니다. (…) 경직된 나무, 움직임이 둔해지고 껍질이 딱딱해지는 나무에는 새로운 생명이 깃들지 않습니다."

"개울"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시인 도종환은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는 존재들의 빛나는 가치를 분명하게 설파한다.

"개울은 제가 그저 개울인 줄 안다. 산골짝에서 이름 없는 돌멩이나 매만지며 밤에는 별을 안아 흐르고 낮에는 구름을 풀어 색깔을 내며 이렇게 소리 없이 낮은 곳을 지키다 가는 물줄기인줄 안다. (…) 개울은 제가 바다의 핏줄임을 모른다. 바다의 시작이요 맥박임을 모른다. (…) 그러나 가슴 속 그 물빛으로 마침내 수천 수만 바닷고기를 자라게 하고 어선만한 고래도 살게 하는 것이다. 언젠가 개울은 알게 될 것이다. 제가 곧 바다의 출발점이며 완성이었음을. 멈추지 않고 흐른다면……."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우리 자신이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개울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핏줄처럼 다른 물들과 연결되어 있고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흘러가 바다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흘러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장관을 또한 다음과 같이 전해준다.

"강의 생명력은 매순간마다 스스로 거듭 새로워지며 먼 곳까지 멈추지 않고 가는 데 있습니다. 가면서 맑아지는 것입니다. 더러운 물보다 훨씬 많은 새로운 물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생명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그는 강물이 "가면서 맑아"진다고 한다. 그러니 인생이란 두려워 머무를 일이 아니며 끊임없이 새로운 물결과 섞이면서 자신을 더 깊고 크게 만들어가는 여정이 된다.

사랑이 많은 시인의 노래

그 여정이 때로 막히거나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고 여긴다면, 그것도 실망할 일이 아니라고 시인은 "좀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라는 시에서 우리를 정겹게 다독인다.

"우리가 약속의 땅에 이르지 못했다면 더 기다리는 사람이 됩시다. (…) 사랑했던 사람을 미워하지 맙시다. 우리의 사랑은 옳았습니다. 어제까지도 우리가 거친 바람 속에 살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우리에게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합시다. 더 많은 땀과 눈물이 필요한 때문이라고 생각합시다. 다만 내 손으로 내 살에 못을 박은 듯한 아픔은 잊지 맙시다. 그가 나를 사랑한 것보다 내가 그를 더 사랑하지 못해 살을 찢는 듯한 아픔으로 돌아서야 했던 것을 잊지 맙시다."

이런 인생사에서 고달픈 이들을 떠올리며 그는 "젖으며 빗속에서도 먼 길을 가야 하는 새"를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본다. 기다리던 이는 오지 않고 대신 비가 내리자 "젖은 꽃들은 진종일 소리 없이 지고" 있다면서 "사람은 잡을 수 있지만 지는 꽃은 잡을 수 없다"고 속절없이 아파한다. 한 밤중 깨어 일어나니 들리는 방 안 가득한 귀뚜라미 소리에 그는 "나의 시가 나의 울음이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밤은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어서 밤새 울었고,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워져버릴 수 없어서 소리 내어 울던 밤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때 우리도 한 마리 귀뚜라미였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이어 시인은 "우리 대신 귀뚜라미가 밤을 새워 울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고, 잠든 우리의 영혼이 다시 깨어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고 머리맡에 와 울면서 밤을 지킵니다"라고 모두가 잠든 사이에 이젠 귀뚜라미 소리 하나도 되지 못하고 있는 문학과 예술과 종교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가 그리워하는 것들

그러나 그의 산방 명상이 단지 자연의 음성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는 권력의 오만과 자본주의의 탐욕도 짚고 나간다.

"끝없는 탐욕과 벼랑을 향해 질주하는 자본주의를 향해 참회합니다. 할 줄 아는 게 삽질밖에 없어 강이고 길이고 끝없이 파헤치고 뒤집는 21세기 오늘의 이 나라를 향해 절합니다. (…) 정작 절해야 할 사람들이 절하지 않음으로 스님과 신부님들이 대신 절하는 것입니다. 매 맞아야 할 사람들이 회초리를 피하고 있으므로 대신 매를 맞는 것입니다. 다리가 부러지도록 절하는 것입니다. 허리가 휘도록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바보같이 참으로 바보같이 대신 절하는 것입니다. 눈물겹도록 절하는 것입니다."

그는 투전판이 아닌, 인정 깊은 세상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다. 자본주의의 논리와 욕망이 지배하는 현실에서는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웃고 떠들며 묵내기 화투를 치는, 사람 냄새나는 겨울밤은 이제 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슬퍼한다. "겨울이 되어 황량해진 들판 위로 바람만이 몰아쳐도 달걀 하나 서로 나누어 먹을 줄 아는 이들"을 그리워한다.

결국 그는 어떤 인생을 우리에게 권하고 있는가? 권력의 창검으로 날이 선 살벌했던 세월을 지나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욕심으로 무장한 시대 앞에서, 도종환은 "찬란한 소멸"의 기쁨을 나누자고 한다. 가을 오후 은행나무 고갯길을 걸으며 가슴 벅차한다.

찬란한 소멸의 기쁨

"은행나무는 순간순간 제 삶에 충실하여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목마른 날들도 많았고 하염없이 빗줄기에 젖어야 하는 날도 있었으며, 뜨거운 햇살에 몸이 바짝바짝 타는 날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햇살에도 정직하였고 목마름에도 비겁하지 않았습니다. 바람에 시달릴 때는 시달리는 대로 바람을 받아들였고, 구름 그림자에 그늘진 날은 그늘 속에서 담담하였습니다. (…) 황홀의 편린들을 하나씩 떼어 바람에 주며 은행나무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불태우고 있습디다. (…) 가을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은행나무 아래서 남아 있는 우리 생의 어느 날이 이렇게 찬란한 소멸이기를 바랍니다."

그가 산방으로 들어간 때는 그의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치고 병들대로 병들어 있었을 때라고 한다. 2년 전인 2008년 그가 펴낸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의 글머리에서 시인은 이렇게 적고 있다.

"5년 전 이 숲에 들어올 때 저의 몸과 마음은 거덜 나 있었습니다. 몸은 병들었고 마음도 황폐한 사막처럼 모래먼지가 날렸습니다. 숲은 그런 저를 내치지 않고 받아 주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게 하여 골짜기 물로 닦아 주었고 나뭇잎의 숨결로 말려주었습니다."

그는 "지금 숲은 적빈(赤貧)"이라며 지녔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맨몸이라고 말하고, 그 숲에서 "청안(淸安)한 삶"을 배웠다고 한다. 이제 그는 숲속 고적한 산방에서 깨우친 "쉼표"의 의미를 더욱 깊게 새긴다. 그 청안의 힘을 좀 더 넉넉해지고 더욱 따뜻해진 성찰의 기운으로 겸손하고 소박하게 나눈다.

"언제 산방으로 한번 놀러 오세요."라고 초대해준 그의 말에 그러겠노라고 말만하고 여태 가지 못하고 있는 나도 이젠 잠시 쉼표를 찍고 그 숲으로 집에서 담근 매실주 하나 들고 가봐야겠다. 사방이 고요한 시간에 술잔을 서로 기울이며 새벽이 오는 줄 모르게 길고 긴 정담을 나누고 싶다. 푸짐하고 환한 미소로 반길 그를 떠올리니 절로 기분이 좋다.

생각해 보니, <마음의 쉼표>를 읽는 이들은 모두 도종환 시인의 산방으로 초대받은 이들이 아닌가? 그 방에 들어서면 몸과 마음이 이내 가벼워질 것만 같다. 비에 젖은 새처럼 먼 길을 가야하는 우리네 인생에 그가 정성으로 우려낸 낸 차의 향기에 슬며시 취해봄이 어떤가? 언젠지 기억나지 않은 예전에 잃었던 하늘이 열리고 오랫동안 맡지 못했던 흙냄새로 가슴이 뿌듯해지리라.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