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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몰표'는 재연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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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몰표'는 재연될 것인가"

[지방선거 쟁점과 전망 ⑤] 교육감 진화의 4단계

'교육감'이 진화하고 있다. 간선 방식으로 뽑던 시절에는 교육감은 그저 퇴직 교육 관료들을 위한 자리였을 뿐이다. 투표인 수가 많지 않았던 탓에 선거 부정도 심했다. 출신 학교 등에 따른 연줄이 당선의 중요한 변수가 되곤 했다.

1단계 진화 : "이제 '저평가 가치주'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허술하게 뽑기에는 교육감이라는 자리가 너무 무겁다. 광역지방자치단체장과 맞먹는 예산을 다루는 자리다. 교사와 교육공무원을 감독하고, 학교 신설 허가를 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교육 대통령'이라는 조금 과장된 표현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이제는 교육감이 이렇게 대단한 자리인 줄 다들 안다. 권력 시장에서 저평가된 알짜 주식으로 통했던 시절이 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노리는 사람도 많다. 본격적으로 상장됐고, 주가도 올랐다. 심지어 오는 6월 교육감 선거에 전직 교육부 장관이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비유하자면, 전직 대통령이 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격이다. 당사자가 부인하고 있어서, 그저 가능성으로만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교육감의 위상 변화를 실감케 한다. 이게 1단계 진화다.

2단계 진화 : 촛불 소녀들의 MB 교육 탄핵

그리고 정치적 상징성까지 띠게 됐다. 이게 2단계다. 계기는 지난 2008년 촛불 집회였다. 당시 촛불 열기가 온 나라를 달궜다가 식어 내릴 때까지 몇 개의 변곡점을 거쳤는데, 그 첫 번째는 '촛불 소녀'의 등장이었다. 과거 집회 현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여중생, 여고생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촛불 집회는 새로운 성격을 띠게 됐다. 운동권의 관성에 따라 진행되는 집회가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발랄한 에너지가 넘치는 집회가 됐다. 다음 변곡점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의제가 이명박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번질 때였다. '미친 소, 미친 교육 반대'라는 구호가 대표적이다. 방과 후 집회에 참석해 촛불소녀들이 이런 구호를 외치는 장면은, 현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탄핵 결의로 받아들여졌다.

촛불 열기가 식을 무렵,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있었다. 진보개혁 성향인 주경복 건국대 교수가 출마해, 공정택 당시 교육감과 맞붙었다. 온갖 비리에 연루돼 있을 뿐 아니라, 소수 엘리트 위주 교육 정책을 편다는 평가를 받았던 공정택 후보는 이미지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겹치는 부분이 컸다. 따라서 촛불 집회에 열심히 참가했던 이들은 당시 선거에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는 성격을 부여했다.

그러나 주경복 후보가 졌다. 주경복 후보에게 '反 MB'라는 상징성이 있었던 만큼, 선거 패배는 거꾸로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회생하는 계기가 됐다.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이 대통령에게도 고도의 정치적 상징성을 띤 사건이었다.

3단계 진화 : "교육이 복지와 인권 의제를 선도한다"

3단계 진화는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주도했다. 김 교육감은 무상 급식, 학생 인권 등 굵직한 의제를 던졌다. 무상 급식은 교육계라는 테두리를 넘어서는 의제다. '보편적 복지'라는 복지 철학과 맞물려 있다. '모든' 아이들에게 학교가 무상으로 점심식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가난한 아이들만 무상 급식 대상이 될 경우, 낙인 효과가 생길 수 있다. 급식을 받는 아이들이 주눅들거나 놀림을 받을 수 있다는 게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에게 무상 급식을 하면, 이런 걱정이 사라진다. 게다가 아이들의 점심만큼은 차별이 없다는 점이 제도화되므로, '내 자식에게만 비싼 밥을 먹이겠다'는 생각이 원천봉쇄 된다. 따라서 급식의 질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부모들은 전체 급식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힘을 쏟게 된다.

이런 원리는 급식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길게 보면, 등록금, 의료비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북유럽식 보편적 복지로 향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 급식을 받고 있는 초등학생들. 교육감 선거뿐 아니라 광역지자체장 선거에서도 무상급식이 주요 공약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연합뉴스

학생 인권 역시 마찬가지다.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말은, 한국에서 그저 책 제목이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어른들도 애들은 때려서 키워야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곤 했다. 전교조 교사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흔했다. 또 학생 인권은 교권과 상충한다는 인식도 팽배했다. 학생인권 영역에서 대표적인 의제인 '체벌'에 대해 반대하면, "네가 학교 와서 가르쳐봐라. 안 때리고 되나"라는 날선 반박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학생 인권 조례는 이런 모든 금기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그리고 이런 도전은 다양한 영역으로 번지는 불씨가 될 수 있다. 오랫동안 인권침해가 당연시 됐던 영역에서 인권 감수성을 높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군대나 정신병원에서 이뤄지는 인권 침해에 대해서도 관심이 커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교육 의제가 사회 의제를 선도하는 것. 이를 통해 교육담론이 더 깊고 풍성해지는 것. 이게 3단계 진화다.

4단계 진화는?

그렇다면, 다음 진화 단계는 어떤 걸까. 아무도 모른다. 대략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지난해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6월 교육감 선거에서 오로지 서울에만 관심이 쏠리는 상황을 걱정했다. 교육자치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역 간 균형인데, 이런 취지가 제대로 구현될 것 같지 않다는 게다. 사실, 그렇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만, 6월 교육감 선거에서 언론의 관심은 서울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 2008년 교육감 선거 결과를 참조하는 수 밖에 없다. 당시 결과를 요약하면, '낮은 투표율'과 '강남 몰표'다. 촛불의 온기가 남아있던 시점에 치러진 선거였지만, 의외로 전체적인 투표율은 낮았다. 대신 부유층이 많이 사는 서초구와 강남구만 이례적으로 투표율이 높았다. 당시 전체 투표율은 15.4퍼센트였는데, 서초구와 강남구는 각각 19.6퍼센트와 19.1퍼센트로 투표율 1, 2위를 기록했다.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는 투표율도 높았지만, 공정택 후보에 대한 쏠림 현상도 두드러졌다. 당시 주경복 후보는 서울시내 25개 구 가운데 17개 구에서 공정택 후보를 앞질렀다. 그러나 강남 3구에서 쏟아진 공 후보 지지표는 이를 뒤집고도 남았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복지와 인권에 관한 의제를 던졌다면, 오는 6월 선거는 이런 의제에 대한 보수와 진보 세력의 입장 차이를 보여주는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철학의 영역인 동시에 계급, 계층의 영역이기도 하다. 요컨대 강남 3구 주민들이 복지와 인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장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逆 강남 몰표' 가능성은 없나

복지와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해질수록 가난한 이들이 누리는 혜택은 커진다. 그러나 과거 선거에서 이런 상식이 통한 적은 없다. 서민들이 부자 감세를 추진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일이 흔했다. 따라서 복지와 인권과 맞물린 교육 의제에 대해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 주민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주목된다. 다른 선거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 성향과 계급이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식 문제'인 교육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가난한 지역에서 '강남 몰표'와 마찬가지 현상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게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의 교육감은 4단계 진화를 거치게 된다. 교육 의제에 대한 계층 별 차이를 조정하면서 이뤄지는, 수준 높은 교육 자치가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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