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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전기 요금을 국민이 내주는 마당에…

산업계의 싼 전기 요금부터 손 봐야…"형평성 고려해야"

박미영(가명·36) 씨는 현재 공덕동에서 작은 '옥탑방'에서 살고 있다. 12제곱미터 크기의 방 한 칸짜리 옥탑방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18일 기자가 찾았을 때도, 옥탑방은 바닥이 차가워 맨발로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이날 서울 기온은 영하 2도였다.

박 씨는 "그나마 오늘은 좀 낫다"며 "얼마 전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 날에는 화장실 전체가 얼어 문도 제대로 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날도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은 화장실 창문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그가 이곳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땀이 비 오듯 내리는 여름이야 참으면 되지만, 겨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주택 옥상에 단열재 없이 벽돌로만 만들어진 방이라 외풍이 심하다. 추위를 참다못해 창문엔 문풍지를 붙였고, 그 위에 유리를 붙인 뒤, 다시 샤워 커튼까지 달았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보일러를 계속 틀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12월엔 실내 온도가 영상 10도~11도를 유지할 정도로 최소한만 사용했다. 그럼에도 12월 가스 요금 통지서를 받은 박 씨는 깜짝 놀랐다. 가스비가 11만 원이 나왔다. 대형 할인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그가 받는 월급의 10분의 1이 난방비로 나간 셈.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걸 생각했지만 현재 살고 있는 곳만큼 월세가 싼 곳을 찾기란 어렵다. 그는 현재 보증금 500만 원에 한 달 15만 원의 월세를 내고 있다.

결국 추위를 견디고자 구입한 전열 기구는 박 씨에게 필수품이 됐다. 그가 애용하는 기구는 전기장판과 전기히터. 전기히터는 그가 집에서 컴퓨터를 할 때 주로 이용하고, 전기장판은 잠 잘 때 이용한다. 12월에 그가 쓴 전기 요금은 5만 원을 조금 넘었다. 선풍기를 이용하는 여름에 그가 내는 전기 값은 7000원 정도다.

박미영 씨는 "비록 전기 값이 많이 나오지만 만약 이것도 없었다면 올 겨울을 집에서 보내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성북동 달동네 전경. ⓒ프레시안

전열기구로 겨울을 버티는 기초수급자들

그나마 박 씨는 나은 상황이다. '쪽방촌'에 사는 저소득층,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경우 이번 겨울 한파가 절망적이다. 성북동에 위치한 달동네에서 살고 있는 박명자(가명·57)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80세의 노모를 모시고 있는지라 한 달에 그가 구청으로부터 받는 돈은 약 60만 원.

이 돈으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는 건 불가능하다. 방 두 칸 집에서 살고 있는 그가 사용하는 난방 수단은 연탄보일러와 전기장판. 하루에 그가 쓰는 연탄은 25장. 방 두 개에 들어가는 연탄 개수다. 배달비를 포함, 연탄 한 장이 대략 600원 정도이다. 한 달에 연탄보일러에 들어가는 돈만 5만 원 가까이 된다.

집이 오래됐고 워낙 바람이 많이 부는 산동네인지라 연탄보일러만으론 난방이 해결되지 않는다. 창문에는 지나간 달력들이 겹겹이 붙어 있었지만 추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머니의 경우 관절염을 앓고 있어 무릎을 항상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 박 씨가 3년 전 '거금' 5만 원을 들여 전열기를 산 이유다.

한 달 전기 값은 대략 10만 원 정도 나온다. 비싸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전기장판과 같은 난방 수단이라도 있어야 겨울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단열재라도 사서 벽에 붙일까도 생각했지만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전력 수요 줄이기 위해 겨울철 전기요금 인상 추진

이들은 당장 다음 겨울이 걱정이다. 전기 요금이 대폭 상승할 조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여름철에 비해 낮게 책정된 겨울철 전기 요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식경제부는 겨울철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는 추세를 반영, 계절별 전기 요금 체계를 여름과 겨울에 동일 요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난방 수요 급증에 따른 전력 수요를 요금 인상을 통해 줄여보겠다는 취지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동절기 전력 수요가 해마다 증가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빌딩의 난방기, 가정용 난방기 등의 사용 증가로 생활 패턴이 변하면서 겨울철에도 여름철 못지않게 전력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특히 교육·일반·산업용 전력의 경우 겨울(12~3월)과 봄·가을 요금이 각각 여름철(7~8월) 요금의 85퍼센트와 77퍼센트 수준이기에 정부는 합리적 요금제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지경부는 1년을 기준으로 하는 전체 전기요금은 건드리지 않고 겨울과 봄 가을 요금을 조정하는 방안과, 겨울을 포함, 전체 요금 수준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자는 겨울철 요금을 여름과 같게 올리고 대신 봄, 가을 요금을 더 낮추는 방법이다. 후자는 겨울철 요금을 여름 수준으로 높이면서 주택용, 농업용 등의 전기요금을 전반적으로 올리는 방안이다.

▲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14일 전력 비상수급 대책회의를 열고 겨울철 전기 요금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프레시안

지난 12월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전력 수요는 겨울철 전력 사용량 최고 기록을 12월에만 12번을 기록했다. 게다가 겨울철 전력 사용량 최고치가 여름을 추월한 것은 16년 만의 일이다. 여기에는 올 겨울 불어 닥친 한파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난방 시스템이 변한 것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전기를 사용하는 이른바 시스템 난방기나 코일형 난방기를 쓰는 건물이 늘어났다. 가정은 더 심각하다. 전기난로, 온풍기를 사용하는 가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9년 전체 난방에서 전기 난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23퍼센트로 최근 5년 사이 6퍼센트 포인트나 늘었다.

이러한 원인에는 매년 상승하는 난방비에 있다.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작년 12월 도시가스 요금 상승률은 7.1퍼센트. 1년 전 같은 달의 0.8퍼센트 상승에 비해 7배나 상승했다. 연탄 가격도 20퍼센트 상승, 1년 전 11.7퍼센트를 넘어섰다. 매년 지속적으로 난방비가 상승하고 있는 것. 하지만 전기 요금은 이렇다 할 상승이 없다. 최근 몇 년 간 가격의 변동이 거의 없었다.

등유나 도시가스의 경우 2006~2008년 요금 인상률이 각각 32.9퍼센트, 12.2퍼센트인 반면 전기는 3.1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조영탁 한밭대 교수(경제학과)는 지난 12월, 에너지시민연대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다른 난방 요금과 달리 상대적으로 싼 전기 요금으로 서민층이 전기난방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전기요금 인상? 문제의 본질은 건드리지 않는 임시 대책"

상황이 이렇기에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말이 많다. 정부의 전기 요금 인상이 추진될 경우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서민에게 돌아간다는 것. 물론 정부는 대책회의를 갖고 서민과 저소득층을 위한 에너지 비용 부담 경감 정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장애인, 상이유공자, 독립유공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전기 요금 20퍼센트 할인, 3개월 이상 전기 요금 체납자의 혹한기 전기 제한 공급 유예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문제의 본질은 건드리지 않는 임시 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조영탁 교수는 "정부와 한전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사후약방문'식 정책만 펴왔다"고 질타했다. 그는 "정부와 한전은 적자와 재원 부족을 요금 인상의 기회로만 활용해 전기 요금 인상론을 펴고 있으나 사후 요금 인상으로 인한 혼란과 소비자 손실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조영탁 교수는 "원가 왜곡으로 낭비를 유발하고 세금 거두기만 편리하도록 되어 있는 현행 에너지 세제와 요금은 경제성, 형평성, 환경성이 모두 부족하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중장기적인 실행 계획과 시스템 개편,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규제 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기료의 형평성 먼저 해결해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전기 요금의 형평성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 요금은 계절뿐만 아니라 분야별로 차등 요금제가 적용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2008년 같은 열량을 내는 요금이 전기는 등유의 62퍼센트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하다. 에너지원별 가격 추이를 살펴보면 주택용 전기 요금은 단가가(원/킬로와트) 130.72, 교육용은 92.8, 산업용은 55, 농사용은 33 등을 기록하고 있다. 등유의 요금 지수를 100이라고 하면, 주택용 전기는 90, 교육용은 64, 산업용은 55, 농사용은 33에 불과하다.

ⓒ프레시안

정희정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전기 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으로 볼 때나 원가 기준으로 볼 때 낮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무조건 요금을 평균치로 끌어 올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OECD 평균 전기 요금이 100원이라면 한국은 50원이다.

정희정 사무처장은 "전기 요금 수준을 정하는 건 나라마다 정책에 따라 달리 정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 요금이 원가에도 못 미치는 게 사실이지만 서민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무조건 전기 값을 올리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률적으로 전기 요금을 올리는 게 아닌 전기 요금의 체제 자체를 형평성 있게 바꾸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정희정 사무처장은 특히 산업계 전기 요금과 가정용 전기 요금의 차별을 지적했다.

사실 산업계, 즉 기업이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음에도 이들이 사용하는 전기는 굉장히 저렴하다. 전문가들은 이들 전기 요금을 시민들이 대신 내주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등유를 기준으로 주택용 전기 요금은 90인 반면, 산업용 전기 요금은 55에 불과하다. 거의 절반 가까이 싼 것이다.

정희정 사무청장은 "삼성 같은 경우, 주식 한 주가 70만 원이나 할 정도로 잘 나가는 기업임에도 전기 요금을 이렇게 할인 받고 있다"며 "결국 할인 된 돈은 모두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희정 사무처장은 "삼성전자의 경우 2009년 전기 할인 액수가 약 1500억 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기업과 일반 가정과의 전기 요금 간극은 줄이지 않고 일률적으로 전기 요금을 올리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기업의 전기 요금을 일반 시민이 대신 내주고 있는 구조를 개선한 뒤 전기 요금 가격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전기 요금의 일괄 인상을 놓고 군불을 지피는 정부가 서민을 배려할지 의문이다. 겨울이 무서운 서민들이다.

'에너지 기본권' 도입하면…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에너지 사용이 어려운 건 당연하다. 겨울철 한파가 들이 닥칠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전기, 수도, 가스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의 겨울나기는 해가 지날수록 더욱 어렵기만 하다.

소위 빈공층에게 전기와 수도, 냉난방 등의 에너지를 필요한 만큼, 최소한 수준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권리가 '에너지 기본권'이다. 국민이 국가에 납세, 국방, 교육 등의 의무를 다하는 것 처럼 국가도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1988년 '곤궁 상태로 특별한 곤란에 직면해 있는 이들이 국가로부터 가스, 수도, 전기, 전화 서비스를 받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보조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에너지 기본권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 제도를 위해 전력 회사, 가스 회사, 수도 공급 회사 등과 협정을 통해 '에너지 연대 기금'을 조성,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17대 국회에서 '에너지 기본권'을 놓고 도입을 검토한 적이 있다. 당시 조승수 의원과 시민단체 등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행복 추구권'을 근거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는 별도로 에너지 기본권을 보장해야 다차원적인 빈곤 대책이 이뤄질 수 있다고 에너지 기본권 법제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산업자원부는 "에너지 기본권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 아니다"라고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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