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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판을 포커로 바꿨는데, 우린 화투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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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그들은 판을 포커로 바꿨는데, 우린 화투 들고 있다"

[토론회] 노동운동, 이대로는 안 된다…그렇다면 어떻게?

노동운동이 위기라는 말은 새롭지 않다. 말 그대로 오래된 이야기다. 혹자는 "90년대 초반과 지금의 위기는 다르지만, 노동운동의 위기는 이미 20년 전부터 나왔던 얘기"(김유선 한국노동연구소 소장)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1987년 이후 10년이 민주노조운동에게 '영광의 10년'이었다면 1997년 이후 2007년까지는 '잃어버린 10년'이었다"(김형기 경북대 교수)고 했다.

오래된 얘기지만, 위기에 대한 표현의 수위는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민주노조운동, 그 조직적 실체인 민주노총은 진보진영으로부터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민주노총은 실패했다"(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지금 노동운동은 바닥을 친 것도, 긴 어둠 속에 있는 것도 아니라 구멍이 곳곳에 뚫린 채 가라앉고 있는 배다"(이병훈 중앙대 교수) 등의 거친 표현의 함의는 하나다. '정말, 이제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사회민주주의연대, 좋은정책포험, 혁신네크워크가 19일 함께 연 토론회 '노동운동, 활로는 있는가'에서 3명의 발제자와 6명의 토론자, 그리고 사회자까지 모든 사람들은 노동운동이 위기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위기의 원인과 대안에 대한 주장도 민주노총 밖에서 보기엔 그저 미세한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당연히 "제2의 민주노조운동"이나 "차세대 노동운동", "민주노총의 정치집단화" 등 서로 다른 곳에 방점을 찍고 있는 여러 대안의 공통점도 분명했다. 지금과는 180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20년 노동운동으로 임금은 올랐지만 다들 전보다 불행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낮아지는 조직율, 지향의 실종, 전략과 정책 기획의 부재, 리더십의 위기 등 원인이야 다양할 것이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가 "노동운동의 위기란 범위도 깊이도 구조도 방대한 현상"이라고 한 것은 그런 맥락이다.

민주노총의 핵심인 금속노조의 또 핵심, 현대차라는 현장에서 뼈가 굵은 하부영 대표는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외환위기 사태 이후 정권과 자본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속된 말로, 87년부터 10년 간은 '고스톱' 판이었다면 1997년 이후에는 정권과 자본이 판을 아예 '포커판'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화투짝을 들고 포커를 치고 있다. 당연히 백전 백패다."

하부영 대표는 노동운동이 실패한 이유를 놓고 "지난 20년 동안 노동운동이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87년의 요구를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금은 올랐지만, 사람들은 행복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부영 대표는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전보다 불행하다고 했다"고 토로했다.

박태주 노동행정연구원 교수도 동의했다. 다만 박 교수는 "물론 노동운동은 밥 먹여주는 것에서부터 벗어날 수는 없지만 개별화된, 단기적 관점에서의 실리가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 장기적 실리의 핵심으로 박 교수가 꼽은 것은 "노동시간 단축"이었다.

▲오래된 얘기지만,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한 표현의 수위는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이 거친 표현의 함의는 하나다. '정말, 이제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프레시안 최형락 기자

"고용 없는 성장? 고용이 감소하는 성장"

이는 현재의 위기가 노동운동 내부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하부영 대표는 "사람들은 '고용 없는 성장' 시대라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고용이 감소하는 성장'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않는 정규직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고용을 지키는 것도 어려운 정규직의 오늘날 현실"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 대표는 이어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화에 소극적인 것은 오늘의 노동운동이지만 정작 그들은 노조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울산공단에 조직화를 위해 2년 동안 쫓아다녔다. 그런데 한 명도 조직하지 못했다. 직접 만나보니 '우리는 노조 필요없다'고 했다. '우리 사장은 지금 2주 동안 돈 빌리러 다니는데 노조 만들어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무조건 조직화? 잘못된 관점이다. 오히려 다단계 하도급과 같은 수직서열화된 구조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조직화도 안 된다. 중간착취를 못하게 해야 한다. 이 문제만 막아주면 중소영세 노동자 임금은 20~30% 인상된다."

물론 반론은 내부에도 있다. 이날 청중으로 토론회를 지켜본 차수련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처음 민주노총의 구호가 '비정규직 차별철폐'냐 '정규직화냐'를 놓고 밤을 새워 토론했던 2000년부터 지금까지 민주노총은 대안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직화된 정규직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돌파하지 않으면 대체 어떤 힘으로 할 거냐"는 말이었다.

역시 청중이었던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정규직 고용에 대한 위협만 가지고 비정규직과 양극화 문제에 소극적인 노동운동을 옹호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런 질문에 대한 하부영 대표의 대안은 "민주노총이 더 정치투쟁 전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명 '제2민주노조운동'이다. "혁신은 안 되기도 하겠지만 알면서도 못하고 안 하는 것"인만큼 혁신이 아니라 아예 새롭게 하자는 것이다.

"87년 세대가 다 정년퇴직하면 노동운동이 존재할 수 있을까?"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주대환 대표가 주장한 "지금의 20대, 30대가 주역이 되는 일명 '차세대 노동운동'"도 비슷한 고민의 결론이다. 주대환 대표도 "정치투쟁 과잉이 위기의 근원이 아니라 정치투쟁의 결핍이 위기의 근원"이라고 했지만, "더 심각한 것은 민주노조운동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일종의 세대 교체론이다. 그는 "과연 1987년 노동운동 세대가 정년퇴직을 한 이후에도 민주노조운동은 이어질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주 대표는 "노동자 출신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학출 활동가들이 이제 노동운동에서 떠나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있고 노동운동에 관여해 온 지식인들의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무대 위에 오른 사람들 가운데 34세로 최연소 토론자였던 정승호 부산일반노조 조합원은 이런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번 민주노총 선거에서 부위원장 후보로 나서기도 한 정승호 씨는 "학출이든, 노동자 출신이든 둘 다 관성화, 관료화 돼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종파가 된 정파가 위기의 핵심" vs. "정파는 민주주의 상징"

이날 토론회의 또 다른 쟁점은 정파였다. 최근 민주노총 선거에서도 논란이 됐던 것은 정파였다.

김유선 소장은 "정파들끼리의 차이란 없다"며 "지금의 정파는 20년 가까이 흘러오면서 만들어진 다양한 인간관계가 착종된 종파"라고 지적했다. 이병훈 교수도 "현재 위기의 핵심은 정파"라며 "정파적 입장 차이로 인한 발목잡기 식의 소모적 논쟁"을 위기의 하나의 이유로 꼽았다. "직접 해 보니 현실에서는 정파들의 차이는 아무 것도 없었다"던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같은 논리다.

반면, 박태주 교수는 "노동운동을 망친 주범으로 꼽히는 정파는 사실 노조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며 "일사분란한 이념과 노선, 전술·전략으로 민주노총이 움직이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하냐"고 되물었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도 "위기의 본질이 정파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파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지, 정파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논리인 셈이다.

조건준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정파 간의 질적 차별이 없고 수평적 경쟁이 있는 것이 문제"라며 "과거 87년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지향이 질적으로 달랐듯이 정파도 그런 질적 차이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의 사회를 맡았던 김형기 교수는 토론회 끝에 "토론은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벼랑 끝에 몰린" 노동운동의 활로는 과연 있을까? 4시간에 걸친 토론회 시간 동안 여러 말들이 오갔지만, 누구도 답은 아직 적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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