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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땅, 분양하지 말고 임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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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땅, 분양하지 말고 임대하자"

[이정전 칼럼] 세종시 문제와 국토의 효율적 이용

주변 사람들에게 바보 같은 질문을 해봤다. "당신은 돈 많이 벌고 유능하지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과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돈을 좀 덜 벌더라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살고 싶습니까?" 모두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살고 싶다고 말한다.

지난 주 초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후 세종시 논쟁이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더 달아오르고 있다. 여전히 대통령의 신뢰문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세종시에 관하여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핵심인사들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놓고 나서 이제 와서 자신들을 믿어달라고 호소하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이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기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가, 행정효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뻔한 것 같은데 세종시 논쟁이 계속 끓어오르고 있으니 우리 사회가 상식이 잘 안 통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나.

정부의 수정안이 발표되면서 대기업에 대한 특혜의 문제가 추가되었다. 세종시에 입주하는 대기업에게는 원형지를 평당 36만 원 내지 40만 원의 헐값이 공급한다고 한다. 원형지란 구입자가 마음대로 토지이용계획과 건축계획을 세울 수 있는 형태의 토지를 말한다.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입주기업이 원형지를 구입하더라도 이를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은 평당 38만 원이므로 원형지 매입가격에 이 개발비를 합친 금액이 결국 인근 산업단지 조성용지의 가격과 비슷해진다. 따라서 특혜는 없다고 정부는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해명과는 달리 인근 산업단지의 원형지 평균공급가격이 평당 80만 원 근처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종시에 입주하는 대기업은 원형지를 사는 순간 2배 이상 이득을 보는 셈이다.

세종시의 택지를 이미 분양받은 수많은 업체들(주로 건설회사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한국토지주택공사(과거의 토지공사)로부터 평당 227만 원의 가격으로 분양받았다고 한다. 더욱이나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앞으로 더 저렴한 가격에 용지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니 이미 용지를 분양받은 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특혜의 문제나 형평성의 문제는 그렇다고 치자. 설령, 대기업에 대한 특혜의 덕분에 세종시 수정안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고 해도 또 다시 세종시가 전국적 부동산투기의 진원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과거 참여정부가 세종시 계획을 추진하였을 때 지금의 여권 핵심인사들은 참여정부가 온 나라에 투기를 조장하고 전국의 땅값을 크게 높였다고 욕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근원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그렇게 특혜와 형평성의 시비에 휘말리면서까지 정부가 굳이 세종시의 땅을 민간인에게 분양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이 확고해야만 국토가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경제학자나 신자유주의 주장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엄밀히 말하면, 토지가 사유화되어야만 국토가 효율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에서는 대부분의 토지가 국유화되어 있고, 토지의 사유재산권에 엄격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지만, 싱가포르 국민의 주거생활은 안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 싱가포르는 관광의 세계적 명소가 될 정도로 토지이용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다. 문제는 국가가 어떻게 토지를 잘 관리하느냐 이지 사유화의 여부가 아니다.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란 대한민국에 있는 3000여만 필지 각각을 최선의 용도로 이용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각각의 땅 조각을 최선의 용도로 이용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유능한 토지이용자들을 찾아내서 이들에게 충분한 보수를 주고 토지를 이용하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가령, 대한민국의 국토가 모두 국유화되었다고 하자. 각 필지의 토지별로 유능한 토지이용자를 찾아내는 한 가지 방법은 각 필지의 토지이용권을 놓고 경매를 실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명동 한 복판의 땅을 이용할 권리를 경매에 붙이면, 이 땅을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가격을 부를 것이다. 바로 그 사람에게 토지이용권을 주면 된다. 그가 부른 최고가격이 곧 임대료가 된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 3000여 만 필지의 땅 조각 각각에 대하여 최고의 가격(임대료)을 부르는 사람에게 토지이용권을 주어 임대하면, 결국 그 모든 땅을 최고로 유능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결과적으로 국토가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 땅을 반드시 민간에 분양해야만 가장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까? 출구를 찾기 힘든 세종시 땅값 논쟁에 빠진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토지임대방식의 개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떨까. ⓒ프레시안

어쩌면 현 시장메커니즘보다 이렇게 이용권을 경매에 붙이는 토지임대 방식이 유능한 토지이용자를 더 잘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 방식은 토지이용권만 부여하고 소유권은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이득을 노린 투기꾼들, 다시 말해서 가수요를 차단하는데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물론, 경매에 붙이는 방식이 말 같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나름대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제도든지 나름대로의 문제를 안고 있다. 과연 어떤 방법이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가장 잘 담보하는지는 면밀히 연구해보아야 한다. 다만, 여기에서 강조해두려는 것은 토지의 사유화만이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길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헨리 조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토지를 경작하게 하고 또 이 토지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굳이 "이 토지는 당신의 것이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단지 "이 토지로부터 당신이 생산한 것은 바로 당신의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우리나라 땅의 대부분이 이미 사유화되어 있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토지임대제도를 실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세종시의 땅은 모두 이미 공기업이 매입해놓았다. 4조8000억 원을 들여서 총 2200만 평을 매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토지임대제도를 실시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갖추어진 셈이다.

어느 저명한 학자는 부동산소유를 기피하는 시대가 곧 온다고 주장한다. 부동산, 특히 토지의 큰 단점은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토지를 매입해서 보유하고 있으면 많은 돈이 땅에 잠기게 된다. 토지를 파는 데에는 통상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토지를 팔아 급전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점차 경쟁이 심해지고 상황이 수시로 변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속한 변신이 필요하다. 아이스크림 장사하다가 수지가 안 맞으면 빨리 옷 장사로 바꾸고, 옷 장사가 신통치 못하면 얼른 술장사로 바꾸어야 한다. 부동산 소유는 이런 변신에 큰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근래 미국에서도 기업들이 부동산을 소유하기보다는 임대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한다. 토지를 매입하면 막대한 자금이 땅에 묶여 버리지만, 토지를 빌려 쓸 경우에는 여유자금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업이 잘 안되더라도 빌린 땅을 원주인에게 돌려주고 간단하게 손을 털고 나올 수 있다.

미국에서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각종 가재도구를 빌려 쓰는 일이 흔하다. 부자들은 자동차를 빌려 쓰기를 좋아한다. 빌릴 경우에는 원하는 모양과 색깔의 차를 골라가며 매일같이 바꾸어 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잠깐 이용하고 버릴 어린애 옷이나 장난감을 굳이 돈 주고 살 필요가 없다. 빌려 쓰면 그뿐이다. 일주일에 한 번 쓸 청소기를 굳이 돈 주고 사서 일주일 내내 비좁은 집안 구석에 처박아두는 것은 낭비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임대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다. 웬만하면 냉장고도 빌려 쓰고 집도 빌려 쓴다. 미국에서는 계약결혼이 성행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보면 이것도 임대제도의 일종이다. 이렇게 임대문화의 시대가 온다고 하면 토지 역시 소유할 필요가 없는 때가 올 것이다. 토지사유화가 오히려 국토의 효율적 이용에 걸림돌이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토지의 사유화만이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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