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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프리뷰] '적의 화장법'에 대한 신랄한 고찰, 연극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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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프리뷰] '적의 화장법'에 대한 신랄한 고찰, 연극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

양의 이면 뒷편 숨겨진 추악한 욕망

▲ ⓒ프레시안

"나는 적을 믿습니다. 신의 존재에 관한 증거라 해봐야 허약하고 부질없기 일쑤이며, 그 권능에 대한 증거 역시 못지않게 빈약하지요. 하지만 내부의 적의 존재를 뒷받침할 증거는 어마어마하고, 그 힘의 증거는 가히 압도적이지요. 내가 적의 존재를 믿는 것은, 밤낮 할 것 없이, 내 삶의 길목마다 그것과 마주치기 때문입니다."

연극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 는 아멜리 노통의 『적의 화장법』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익명성을 담보로 서로를 사냥하는 이들은 인간이기 이전에 '늑대'이며, 철저한 약육강식의 법칙 속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신분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는 비수가 되어 다른 이의 가슴에 꽂히고, 다른 이의 가슴에 꽂힌 비수는 또 다른 이의 비수가 되어 회복될 수 없는 상흔으로 남겨진다. 그리고 이들의 상흔은 꼬이고 얽혀서 마침내 모두를 늑대로 만들기에 이른다.

죽어야 마땅한 누군가가 버젓이 살아남아 어떤 이가 죽여지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죽여져야만 하는, 이들의 세상은 온전한 적의 존재들로 가득하다. 혼인빙자간음에 목소리 높여 도덕적 사상의 고취를 설교하는 형사는 목격자로 경찰에 소환된 여고생에게 돈을 쥐어주며 자신의 원조교제를 은닉하기에 급급하다. 원조교제로 생계를 꾸려가는 여고생은 선행자 추천으로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여고생들의 희생양이 되어 지하철 선로로 뛰어드는 연기를 감행하기에 이른다.

약혼녀와의 결혼을 앞둔 지하철 기관사는 자신의 전 애인의 죽음을 은폐하고자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사진을 꺼내들어 자신의 흔적을 지운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몸도 마음도 다 주어버렸던 여자는 혼인빙자간음죄의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말하며 식칼을 조용히 꺼내든다.

이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경찰서는 그 어떤 사건도 해결하지 못하는 혹은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박약한, 무력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다. 이 속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잔혹한 참상을 연출해낸다. 인간이라는 거죽 뒤 숨겨진 늑대의 형상은 죄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연을 반추하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양의 이면 뒤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의 진실은 그 적의 존재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임을 섬뜩하게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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