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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프리뷰] 아름다운 구속으로 위장된 애증의 세월, 연극 '뷰티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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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프리뷰] 아름다운 구속으로 위장된 애증의 세월, 연극 '뷰티퀸'

애증으로 점철된 어느 모녀의 참혹한 복수극

▲ ⓒ프레시안

누군가의 맹목적인 사랑으로 죽는 날까지 자신의 자유가 재단되어야 한다면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연극 '뷰티퀸'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일상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엄마와 딸이라는 혈연은 증오로 채색돼 핏빛의 복수로 탈바꿈한다. 모녀간의 복수극은 정지된 일상 속으로 투영돼 예측할 수 없는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일상성이 빚어낸 파국의 공간
"아마 엄마는 절대 죽지 않을 거야. 날 괴롭히기 위해서 / 일흔 살이 돼서야 내 장례식을 치르게 될 걸. 그때 스킨 냄새를 풍기며 네 허리에 팔을 두를 남자가 몇이나 있겠니?"

딸들을 키우는데 자신의 전 생애를 소모한 매그와 엄마를 돌보는데 자신의 젊음을 바쳐야만 했던 모린의 일상은 매순간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한다. 바짝 날이 선 매그와 모린의 대화는 한껏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며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신경질적으로 분유를 개는 모린의 손길은 파토의 편지를 불길 속으로 던져버리는 매그의 광적인 집착과 맞닥뜨려 두 모녀를 광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찬장에서 가스레인지로, 라디오로 이어지는 모린의 단순한 동선은 극의 템포에 가속을 더하며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킨다. 정체돼있던 일상의 공간은 낯선 어둠의 공간으로 일순간 변모해 내제돼있던 욕망의 일그러진 단면을 정면으로 노출시킨다. 사랑에 대한 이들의 병적인 집착은 인간 내면의 이기적인 욕망을 단적으로 그려낸다. 이들의 어긋난 사랑은 살해라는 파국을 불러오게 한다.

심적 리얼리티로 구현되는 텍스트의 정교한 완결성
간결한 대사와 치밀한 구성은 이들의 폭력성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찬장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빛바랜 식기며 언제 샀는지 알아볼 수조차 없는 고물 냉장고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반복된 일상을 재생해낸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이들의 지옥 같은 일상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라디오에서 느릿느릿 흘러나오던 노래처럼 느슨하게 진행되던 초반부는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감으로 섬뜩함을 조성한다. 모린의 히스테릭한 언행과 행동은 매그를 살해할 것임을 가시화하며, 배우들의 농축된 연기는 이러한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이들의 폭력적인 모녀관계는 극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엄마처럼 살기 싫어했던 모린은 숄을 두른 채 매그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레이에게 문을 꼭 닫고 가라고 외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라디오에서는 그런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죽은 매그가 즐겨듣던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없이 느릿느릿 울려 퍼지는 노랫가락은 모린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엄마에게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음울하게 암시하며 일상의 폭력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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