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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차 고장·지연, 정말 폭설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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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동차 고장·지연, 정말 폭설 때문이었을까?

[기고] '1등 철도, 1등 국민'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

수 십 년 만에 쏟아진 폭설도 어느덧 '과거'가 되었다.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 때문에 벌어졌던 아우성도 잊혀진 것일까? 수도권 시민의 발인 전동차가 정상적으로 운행되지 못하고, 운 좋게 전철을 탔어도 목적지까지 여전히 불안하기만 했던 그 며칠. 모처럼 도착한 전동차는 느릿느릿 움직이다 이내 멈춰 섰다. 한 정거장을 가는데 몇 번이나 가고 서고를 반복했다.

심지어 지난 5일 9시경 부평을 힘겹게 출발한 전동차는 신도림역에서 아예 멈춰서 버렸다. 열린 출입문이 닫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비직원이 급하게 달려와서 조치에 나섰지만 한번 열린 출입문은 닫힐 줄 몰랐다. 급기야 임시로 차단막을 설치하고 위험천만한 운행을 시도하다 끝내 승차한 모든 시민들을 하차 시켜야만 했다.

대체, 이 모든 일들이 정말 '눈' 때문일까? 혹 다른 구조적 문제가 이런 아우성을 증폭시킨 핵심 이유는 아니었을까? 생 '난리통'이 어느 정도 수그러든 이제라도,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돌아보려는 이유다.

▲ 대체, 이 모든 일들이 정말 '눈' 때문일까? 혹 다른 구조적 문제가 이런 아우성을 증폭시킨 핵심 이유는 아니었을까? ⓒ철도노조

사라져가는 철도직원들…"선로 눈 치우기도 바쁘다"

폭설로 인해 시민이 전동차로 몰려든 역의 혼잡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자칫 떠밀려 선로로 떨어질까 염려스러웠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안전을 위해 당연히 있어야할 역직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몇 남지 않은 역 직원들은 "워낙 한꺼번에 많은 눈이 내려 선로에 쌓인 눈을 치우기조차 버거웠다"고 한다. 직원들은 무엇보다 먼저 선로전환기에 덮인 눈을 신속하게 치워야 한다. 눈을 제때 치워주지 않으면 레일과 레일 사이에 눈이 끼어들어 밀착상태가 나빠지고 자칫 열차탈선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철역으로 통하는 계단과 승강장에 눈이 쌓이고 살얼음이 얼어 미끄럼사고가 발생할 우려도 크지만 미처 손을 나누지 못해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만 있을 뿐이다. 임시방편으로 카펫이나 골판지를 깔아 놓았으나 눈으로 인한 사고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 몇 남지 않은 역 직원들은 "워낙 한꺼번에 많은 눈이 내려 선로에 쌓인 눈을 치우기조차 버거웠다"고 한다. ⓒ철도노조

셀프서비스로 바뀐 철도역

철도공사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철도역을 점차 무인화하고 있다. 매집표업무, 안내, 열차감시, 안전관리, 유실물관리 등 대국민업무를 축소하거나 폐지했다. 열차를 이용하는 시민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철도공사는 수도권 전철에 종이 승차권을 카드형으로 바꾸고 매표창구를 자동화시켰다. 그 결과 자동발매기 앞에서 전철표를 구입하거나 반환금을 받으려 길게 늘어선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기기작동이 서투른 경우 대중교통인 전동차의 이용은 더욱 힘들어 진다.

자동화 시스템으로 각 역의 직원들은 과거에 비해 30% 이상 줄었다. 이제 시민들이 알아서 자동발매기에서 표를 구입하고 안내표지와 방송에 따라 승차하고 내려야 한다. 사실상 철도 이용이 셀프시스템화 된 셈이다.

▲이제 시민들이 알아서 자동발매기에서 표를 구입하고 안내표지와 방송에 따라 승차하고 내려야 한다. 사실상 철도 이용이 셀프시스템화 된 셈이다. ⓒ철도노조

정비인원도 대폭 축소…늘어난 1인승무, 대응력 떨어진다

인력감축은 정비와 운전업무에도 불어오고 있다. 철도공사는 차량정비 일정 조정을 통해 인력감축을 시도하고 있다. 점검주기가 늘어나면 차량의 세세한 문제점을 충실하게 정비하지 못하고 지나칠 가능성이 높다. 또 코레일(옛 철도공사)은 열차 운행 중에 발생하는 고장을 조치하기 위해 각 역에 배치된 기동검수도 없애버렸다. 이번 폭설로 열차 출입문 등이 고장 났을 때 기동검수가 있었다면 훨씬 빠르게 열차운행을 정상화시켰을 것이다.

또 코레일은 차량, 시설, 전기 등 주재사무소를 통합하고 있다. 선로를 점검하는 시설은 순회주기를 변경했다. 이 경우 사고발생시 비상출동시간이 늘어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리한 인력감축은 시민안전과 직결되는 1인승무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분당선과, 중앙선, 광명셔틀을 비롯해 경의선에도 1인 승무(차장승무생략)가 도입됐다. 기관사가 운전뿐만 아니라 출입문 취급, 여객방송 및 안내, 냉난방 조절, 무선송수신, 긴급 상황 처리를 도맡아 해야 한다.

이 경우 객실 내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대응력은 급속히 떨어진다. 1000여 명이 타고 있는 전동차에 아무리 급한 일이 생겨도 운행 중인 차량을 멈추지 않는 한 다음 역까지 가서 조치할 수밖에 없다.

막대한 적자, 정부책임을 철도직원과 국민에게 떠넘기다

철도 직원들은 "폭설로 인한 철도대란을 더욱 키운 데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도 큰 몫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철도노조가 인력충원을 요구하면 의래 나오는 말이 있다. 철도가 적자라는 것. '경영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임금도 깎고 인력도 대폭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 코레일의 설명이다. 정부는 한발 더 나가 '2012년 까지 적자를 반으로 줄이지 않으면 민영화를 검토하겠다'고 까지 했다.

그러나 철도적자의 근본책임은 정부에 있다. 2009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철도적자는 정책적 적자"라고 밝혔다. 정부나 코레일의 주장과는 달리, 철도운영 때문에 발생하는 적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작년 철도적자는 7000억 원 정도다. 그러나 7000억의 적자에는 정부에서 부담키로 한 PSO 법적 의무금 미수액(1000억 원), 고속철도 건설비용이 포함된 과도한 선로사용료(6000억 원), 고속철도 건설비용 4조5000억 원에 대한 이자(2000억 원)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에서 당연히 책임져야할 비용을 철도가 대신 지불함으로써 발생하는 구조적 적자가 철도적자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자신의 책임을 철도직원과 국민에게 전가시켜 인력감축과 요금인상, 대국민업무를 축소시키고 있다.

작년에도 정부는 한해 2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인천공항철도를 철도공사에 떠 넘겼다. 그 대가로 정부는 한해 1000억 원의 재정적 부담을 줄였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철도경영의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흰 눈은 정말 억울하다

문제는 오히려 간단하다. 철도적자가 그토록 문제라면 정부가 책임을 다하면 된다.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철도공사에 떠넘기면서 인력까지 무모하게 줄이라는 건 너무나 가혹하다. 내년까지 사업증가에 따른 필요인원만 2000여 명이나 된다. 지금 당장 부족한 인원도 3500여 명이다. 이런 현실을 부정하고 더 많은 인원만을 줄이라는 건 열차안전을 담보로 한 도박이나 다름없다.

철도직원은 답답하다. 폭설로 인한 철도대란을 지켜보며 언제까지 자연재해 탓 만 할 건지 정말 안타깝다. 물론 예기치 못한 폭설 등 천재지변의 경우 열차의 정상운행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자연재해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그러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며 연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새하얀 눈이 너무나 억울하다.

시민의 이동권을 책임지는 국가기간산업으로써 평상시는 물론이려니와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기계가 함으로써 발생하는 어려움을 철도직원이 신속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제까지 자연재해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1등 철도, 1등 국민'이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가할 뿐이다.

▲ 언제까지 자연재해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1등 철도, 1등 국민'이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가할 뿐이다. ⓒ철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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