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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의 '파도'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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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의 '파도'를 위하여

[손호철 칼럼] 한 무명 노동자의 민주노총을 향한 무모한 도전

정승호. "정승호가 누구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승호라는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승호라는 이름은 생소하기만 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며칠 전 그의 이름을 한 언론에서 접하게 됐고 당분간 그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아니 팬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그를 잘 알지 못한다. 나이는 33살에 사진을 보니 선한 얼굴을 한 노동운동가 아니 노동자라는 것(사진으로는 아직도 대학 캠퍼스에서 마주치는 신세대 대학생 같다), 그것도 잘 나가는 대기업 노동자가 아니라 우리 시대, 즉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징인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이라는 점이 내가 알고 있는 그에 대한 정보의 거의 전부이다. 그리고 우연히 나와 함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활동을 하고 있는 동료 교수에게 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가 그로부터 그가 대학시절부터 뛰어났던 그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재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인 부산일반노조 소속 조합원이고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에서 상근중인 정씨가 최근 언론에 보도가 되고 나까지 팬이 되기로 자처하고 나선 것은 그가 곧 있을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무명의 이 젊은 노동운동가가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가 던진 출사표 때문이다. "특정한 정파에 추대를 받지 않는 후보는 당선되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정파구조에 작은 파도라도 일으키고 싶다." 그의 이 출사표를 듣고 나는 무릎을 쳤다. 그리고 누가 이번 선거에 출마하느냐와 상관없이 민주노총의 지부인 교수노조의 조합원으로 그의 '선거운동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프레시안

그는 말한다. "운동에서 정파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정파가 조직을 지키는 논리로 변신해 자기성찰을 봉쇄하고 있다. 또 정파는 이제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을 장악하기 위한 선거조직으로 전락했으며 배타적인 패권주의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파구조의 해체가 민주노총 혁신의 핵심이다."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문제가 어찌 '국민파(우파)', '중앙파', '현장파(좌파)'라는 정파구조 문제만 이겠는가? 이 난의 "민주노총, 다시 태어나라"(2009년 2월 9일자 칼럼보기)에서 지적했듯이 중앙간부의 부패스캔들, 성폭력과 이에 대한 조직적 은폐 시도 등으로 상징되는 도덕적 타락,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미온적 대응 등 민주노총과 민주적 노동운동은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무명의 노동운동가 정승호의 출사표는 이 같은 위기, 그리고 이 같은 위기에 대응해 제대로 된 혁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노동운동의 상층엘리트와 정파들에 대한 풀뿌리의 반란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내친 김에 정씨가 추천하는 이갑용 전 민주노총위원장의 자서전적 노동운동 회고 글인 <길은 복잡하지 않다>를 사서 단숨에 다 읽었다. 특히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의 전설적인 전사인 이갑용 전위원장은 김대중 정부 초기 위원장을 맡았을 당시 내가 정치위원회의 자문위원장을 맡아 자주 본 적이 있어 그 올곧은 품성과 열정을 잘 알고 있기에 그의 이야기를 옆에서 직접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읽었다(이 책은 내가 최근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감동 깊고 뭉클한 책으로 강추, 강추한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문제점들을 대강은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 왔던 내가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가를 반성했다. 즉 민주노총의 정파주의의 폐해, 특히 최근 민주노총을 좌지우지해온 다수 정파의 문제점(이전 위원장의 표현을 빌리면 "반성 없음과 계급의식 부족, 권력지향, 패권주의, 비리 등")이 내가 상상을 해온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었다. 사실 이 전 위원장이 고발하는 충격적인 현실에 놀라 뜬 눈으로 밤을 새야 했고 정승호와 같은 때 묻지 않은 풀뿌리 노동운동가의 도발전인 도전이 왜 필요한가를 절감했다.

이갑용 전위원장이 고발한 민주노총의 현실에 나는 절망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승호와 같은 건강한 풀뿌리 노동자의 도전에서 나는 작으나마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가 민주노총의 정파구조를 향해 온 몸을 던져 일으키고 싶은 작은 파도에 작은 물방울이라도 보태고 싶다.

<후기> 안타까운 소식 하나. 민주노총은 위원장후보 등록 시 위원장 후보가 사무총장 후보와 러닝메이트로 함께 등록하도록 되어 있어, 정승호씨가 사방에서 사무총장 러닝메이트를 구했으나 등록 마감인 8일까지 러닝메이트를 구하지 못했다. 그 결과 정씨는 위원장 후보 등록을 포기하고 러닝메이트가 필요 없는 부위원장에 등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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