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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했다', 새해 '음악제국'의 포문을 연 음악의 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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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했다', 새해 '음악제국'의 포문을 연 음악의 신들

[김작가의 음담악담] 추위 뚫고 세 번째 한국 찾은 뮤즈의 콘서트

3년전 이맘때도 눈이 쌓여 있었다. 찬바람은 매서웠지만 온도는 살짝 영상에 걸쳐 있었는지, 바닥은 질척질척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밤의 지하철을 내려 철퍽철퍽 걸어갔다. 꿉꿉하기 그지 없는 환경이었지만 표정은 마냥 설레었다. 몇 시간 후 다시 수천명의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러 더욱 차가워진 바람을 뚫고 걸어갔다. 환희의 얼굴이었다. 2007년 초, 뮤즈(Muse)의 첫 내한 공연 전후 풍경이다. 2010년 1월 7일과 마찬가지의 모습이었다. 그 때의 내한 공연, 같은 해 여름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을 찾은 뮤즈는 그때처럼 눈이 쌓인 도로를 보며, 한국의 겨울은 눈이 참 많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 동안의 한국 공연처럼 웸블리에 못지 않은, 뜨거운 관객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서울에는 몇 년만인지 모를 한파가 불어닥쳤다.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도 아니고, 세 번째다. 이 정도면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냥 가지 말까. 달라야 얼마나 다르겠어, 라고 어떻게든 안 갈 구실을 찾게 된다. 그래도 2010년 첫 내한 공연이다. 공연관람이란 일종의 업무, 처음부터 나태할 수는 없다. 한 번 수업에 빠지면 계속 빠지게 되는 이치와 같다. 하여, 지하철에 몸을 맡겼다. 한 시간 후 올림픽 공원에 도착했다. 눈더미가 단단했다. 보통 때의 공연이었다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을 인파는 눈더미 사이로 난 외길을 따라 툰드라로 향하는 순록떼처럼 줄줄이 체조경기장으로 향했다. 누구 하나 춥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처음이 아닌 사람은 지난 공연의 감동을 기억하고 있기에, 처음인 사람은 소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기에 마냥 들떠 있었다. 뮤즈의 라이브란, 무릇 그러한 것이다.

▲보컬, 기타, 피아노를 아우르는 뮤즈의 프론트맨, 매뉴 벨라미. ⓒ옐로우나인
브릿팝이 수명을 다하고 라디오헤드(Radiohead)가 영국 록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90년대 후반, 그 자장권에서 뮤즈는 태어났다. 1999년 세기말적 우울과 격정을 농축하고 있던 <Showbiz>로 데뷔한 그들은 2001년 <Origin Of Symmetry>를 거쳐 2003년 <Absolution>으로 더이상 라디오헤드와 비교되지 않아도 될 자격을 갖춘, 독자적 세계를 구축했다. 그 세계는 2006년 <Black Holes and Revelations>으로 더욱 견고해졌고 최근 앨범인 <The Resistence>로 확장됐다. SF적 가사를 바탕으로, 그들은 그 공상을 사운드로 구현해왔다. 그것은 세기말 브릿팝의 우울, 헤비 메탈의 폭주, 아트 록의 탐미가 어우러진 스페이스 오페라였다.

뮤즈가 록의 새로운 미학을 제시했냐는 질문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기존의 문법들을 재료료 고출력 엔진을 만들었다는 건 분명하다. 그것은 다만 스튜디오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드럼(도미닉 하워드), 베이스(크리스 볼첸홈)의 막강한 지원 사격하에 기타와 피아노를 종횡무진 누비며 격정의 보컬을 뿜어내는 매튜 벨라미의 활약은 그들에게 최고의 라이브 밴드 중 하나라는 평가를 붙게 했다. 콜드플레이(Coldplay), 트래비스(Travis) 등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밴드들만큼의 메가 히트곡은 없었으되 관객 동원력 및 영향력에 있어서 뮤즈가 꿀리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무대에는 세 명이 있을 뿐이지만 삼십인조 오케스트라에 못지 않은 웅장한 카타르시스를, 뮤즈는 줄곧 제공했던 것이다. 지난 두 번의 내한에서도 그들은 그 능력을 유감없이 떨쳤다. 이제 세 번째로 포스를 시전할 차례였다.

예정 시각을 40분 넘긴 8시 40분 쯤, 체조 경기장의 불이 꺼졌다. 공연 전에 트는 노래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이제 시작할 거라는 기대감에 터지곤 했던 객석의 함성이 몇 배로 커졌다. 무대에 설치된 세 대의 대형 LCD에 영상이 들어왔다. 빌딩의 형상. 이번 월드 투어의 제목이 '레지스턴스 투어'. 도시 저항군의 전투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인트로 음악을 뒤덮는 객석의 환호성과 함께 뮤즈가 무대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첫 곡 'Uprising'을 연주했다. 새 앨범의 첫 번째 수록곡이자 첫 싱글. 분위기는 달아오를 틈도 없이 이미 절정이었다. 매튜 벨라미는 계속 손을 치켜들며 객석을 선동했고 이에 맞춰 수천개의 손이 일제히, 하지만 자유롭게 솟아 올랐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 손은 내려갈 틈이 없었다. 격한 노래를 연주할 때는 환희를 표현하기 위해, 차분한 노래를 연주할 때는 디카속에 그 모습을 간직하기 위한 손들이 객석의 머리 위에 계속 솟아 있었다.

그 무수한 손들과 무대 위의 세 남자가 만들어내는 광기와 열기는 제3제국의 전당대회와도 같았다. 뇌의 일부가 심장 근처에 있어 성대와 양손을 따로 관장하는 듯한 매튜 벨라미의 멀티 플레이, 그가 마음놓고 무대를 휘젓고 사운드 폭탄을 투척할 수 있게 든든한 토대를 구축하는 두 명의 리드머가 이 전당대회의 총통격이었던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무대 위의 스크린뿐만 아니라 양 옆의 중계 스크린까지 현장과 VJ영상이 적절하게 섞이며 무대와 뮤즈, 관객을 하나의 유기체로 묶어냈다. 갈수록 거대해지는 록 콘서트에서 무대는 일종의 로봇이다. 그리고 밴드는 그 로봇에 탑승한 파일럿이다. 파일럿과 로봇은 음향과 조명, 그리고 영상의 도움을 얻어 하나가 된다. 뮤즈의 이번 공연에 투입된 그 요소들은 로봇과 파일럿의 싱크로율을 100%로 끌어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이 가동시간 2시간 한정의 유기체의 필살기는 역시 후반에 터져나왔다. 모두가 세트리스트를 알고 가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뮤즈 콘서트에서의 관례를 아는 것도 아닐텐데 'Starlight'를 연주할 때 1-2-1-3 박수는 세상 그 어떤 퍼커션보다 아름다운 리듬으로 펜스에서 천장까지 울려 퍼졌다. 바로 이어진 뮤즈의 대표적인 히트곡 'Time Is Running Out'. 객석은 최고조로 출렁거렸다. 싱얼롱은 태양처럼 폭발했다. 'Stockholm Syndrome'으로 본 공연이 끝나고 이어진 두 곡의 앵콜 'Plug In Baby' 'Knights Of Cydonia'로 이 도시저항전의 장렬한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까지, 아무도 땅에 발만 붙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뛰고, 소리지르고, 매료되고, 황홀해할 뿐이었다. 뮤즈의 음악을 비판할 수는 있을지언정, 뮤즈의 라이브를 누가 흠잡을 수 있겠는가. 취향과 기준을 넘어서는 그 압도적인 포스앞에서 말이다. 지난 두 번의 공연에 비해 아쉬웠던 사운드, 그래서 백업 세션의 신서사이저가 잘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쉽지도 않은 건 바로 그 실력과 아우라의 존재감덕이었다. 에센스가 되어 떠다니는 록 콘서트의 열락이 거기 있기 때문이었다.

좌석에 앉아 봤음에도, 공연이 끝난 후 몸에는 살짝 땀이 흘렀다. 찬바람에 순식간에 땀이 식는 걸 느끼며, 악천후를 무릅쓰고 먼 길을 재촉했던 진짜 이유가 떠올랐다. 그건 평론가의 책무따위가 아니었다. 두 번이나 만끽했던 관객으로서의 희열이었다. 머리는 망각했을지라도, 몸은 생생히 간직하고 있던 두 번의 희열이 추위를 뚫었다. 이보다 더한 추위가 몰아치더라도, 그들의 기량이 녹슬지 않는 한 몸은 언제라도 다시 그들의 공연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들이 시전하는 포스에 전율을 느끼며, 툰드라의 풀을 뜯는 순록처럼 행복해하리라.

▲ ⓒ옐로우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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