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회장은 지난 2008년 4월 경영쇄신안 발표 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매년 국내에 체류하며 1월 9일 삼성 사장단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올해는 국내에서의 편안한(?) 생일을 뒤로 하고 지난 6일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함께 삼성 전용기를 타고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출발했다.
이 전 회장의 측근 중 한 관계자는 "회장께서 작은 감기에도 심하게 앓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는 외부활동을 삼가왔다"고 전했다.
이 전 회장이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국가적 관심사를 위해 사상 최대의 폭설이 쏟아진 후 전세계적인 혹한의 날씨에도 IOC 위원들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것."
기자가 쓴 글인지, 삼성 홍보실 직원이 쓴 글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언론이 삼성의 눈치를 본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 국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지나친 감이 있다. 단 한 명만 사면한, 전례를 찾기 어려운 해괴한 사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대부분 언론은 삼성 측의 말을 빌려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할 때"라는 여론을 조성하기 급급하다.
아예 대놓고 "삼성에는 어떤 딴지도 걸지 말라"고 독자들을 호통치는 언론사마저 있다. 지난 6일 <한국일보>의 1면에 실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아이폰 도입을 유보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인터넷 상에서 삭제됐다. 이 보도를 받아 쓴 <프라임경제>, <세계일보> 역시 관련 기사들을 모두 내렸다. 이 언론사들은 이유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그저 "삼성에서 요청하지는 않았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의 전부다.
1면에까지 실린 나름 '특종' 기사를 해당 언론이 뚜렷한 이유 없이 자진 삭제한 사태가 발생하자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삼성과 SK 측에 기사 내용과 관련해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머니투데이>는 경제개혁연대를 두고 "나설 데와 안 나설 데를 가리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아예 경제개혁연대의 행보를 두고 "오버" "오지랖"이라고 막말을 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이 기사에서는 시민단체가 특정 목적(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을 갖고 해대는 공세에 '글로벌 기업'인 삼성과 SK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그러나 <한국일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사주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한 담합 행위에 다름 아니다. 시장 경제 질서를 해치는 행위다. 이런 행위야말로 자본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태도다.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행위는 삼성의 오늘을 있도록 해준 소비자들, 즉 시민들이 당연히 누릴 권리다.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머니투데이 지면서 캡처 |
특정 기자나 언론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삼성에 기가 죽는, 나아가 삼성이 주는 광고를 받기 위해 일선에서 뛰는 기자들에게 '광고와 맞바꿀 기사' 생산을 요구하는 대다수 언론의 현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여서 적시했을 뿐이다.
삼성을 두려워하는 건 비단 경제지나 보수언론으로 알려진 일부 대형매체뿐만이 아니다. 진보매체로 알려진 한 언론사의 기업담당 기자는 지난해 열린 한 토론회에서 "모든 언론이 삼성에 침묵을 지킨다. 회사에서 삼성 관련 기사를 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실제 경제위기로 광고매출이 격감한 후, 진보언론들에서도 이 전 회장 일가를 감시하는 기사는 찾기 어렵다. 다른 진보매체 기자는 사석에서 "광고국에서 삼성 광고를 따오기 위해 읍소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왜 삼성만 갖고 그러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질문이 틀렸다. "왜 이건희 전 회장 일가만 물고 늘어지느냐" 정도가 보다 정확하다. 이 전 회장 일가는 최근 수년간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너무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초법적 권위를 누리며 한국 사회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번 사면은 어찌 보면 이를 입증하는 '사소한' 사례인지도 모른다.
일선에서 뛰는 기자들 상당수가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면서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말을 되뇌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 대부분은 '적어도' 삼성만은 보위(保衛)하는 사기(私器)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사기를 쳐야만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의 현실이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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