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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이 아닌 기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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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이 아닌 기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기고] 9일 힘없는 약자들의 '힘'을 보여줍시다

어제(6일)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에서는 205일 간의 천막기도회와 284일 간의 추모미사를 마무리 하는 '마지막' 미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민들이 모여 길고 힘든 여정 함께 해온 서로를 부둥켜안았습니다. 눈물이 있었고, 함성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남일당이 있도록 한 문정현 신부님은 여전한 목소리로 '마지막' 책 판매를 하셨고,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던 문규현 신부님은 변함없는 정정함으로 '마지막' 기도를 하셨습니다. 남일당을 본당으로 지켜온 이강서 신부님은 '마지막' 공지를 통해 수사기록 3000페이지 공개를 다시 한 번 요구하셨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신부님이신 전종훈 신부님은 여전한 차분함으로 '마지막'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들 모두와 그 자리에 참여한 모든 시민과 마음 속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모든 국민은 어제의 미사가 결코 용산참사의 '마지막' 미사가 아니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4일 검찰이 용산참사와 관련하여 9명을 추가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345일 만에 극적인 합의를 이루었다고 발표한지 6일 만에 이루어진 조치입니다. 1년 가까이 냉동고 속에 시신을 안치한 채 장례조차도 치르지 못한 용산참사입니다. 고인의 넋을 기리고 진실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명예를 회복하고자 장례식장에서, 참사의 현장에서, 거리에서 유가족들과 종교인들과 일반시민들의 힘겨운 투쟁이 이어진 것이 1년입니다.

이제 겨우 장례절차를 확정하고 보상 문제를 합의했습니다. 망자에 대한 죄스러움에 눈물을 머금고 우선 장례는 치르자고 합의를 한 것입니다. 검찰은 1월 9일 확정된 장례식을 앞두고, 장례절차를 준비하는 무거운 마음에 또다시 날카로운 상처를 내버렸습니다.

▲ 용산 참사 현장에서 진행된 미사 ⓒ프레시안(사진=최형락)

범대위와 조합 간 합의와 사법절차는 별개라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는 사인 간의 문제일 뿐이라는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결국 합의에 따라 발표된 정운찬 총리의 유감표명이 진정성 결여된 면피용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와 관련하여 이미 7명이 총 37년형을 선고받고 차가운 감방에 갇혀있습니다. 핵심증거인 검찰수사기록 3000페이지의 공개 없이 자신을 변호할 권리와 자신이 잡혀온 과정을 알 권리도 묵살당한 채 이충연 철거민대책위원장은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목으로 갇혀있습니다. 장례식에 참여하라며 고작 나흘 동안 구속집행을 정지시킨 검찰의 조치는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과 확연히 비교됩니다.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아 참담할 뿐입니다.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사람 위에 존재하는 법은 법이 아닙니다. 검찰은 고인의 한과 유가족의 슬픔 앞에서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메마른 법치가 아니라 국민의 아픔에 눈물을 머금은 법치라야만 국민이 존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산참사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정부는 국민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권력을 위임했기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민의 상처에, 특히 공권력의 개입에 따른 비극에 대해 무한 책임이 존재합니다. 하물며 하늘보다 귀한 생명을 빼앗긴 상황에서 사인 간의 문제 운운하는 자체가 용인될 수 없습니다. 진실규명과 구속자들에 대한 구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래야 유감입니다. 그래야 책임입니다. 또한 그래야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신년연설을 통해 또한번 강조한 친서민 중도실용의 정책기조가 진정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국회가 해야 할 일도 자명합니다. 다시는 제2, 제3의 용산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재개발 관련 법제를 개정해야 합니다. 메마른 법치에 희생되지 않도록 증거공개를 강제할 수 있게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받은 국민의 정신적 외상을 치유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이미 발의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민생법안이며, 이러한 법안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입니다.

1월 9일 장례식이 진행됩니다. 용산참사 문제는 망각과의 싸움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여전히 유효합니다. 장례식은 망각이 아닌 기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지, 얼마나 많은 국민이 용산을 기억하며 슬퍼하고 분노하는지 정부가 볼 것입니다. 검찰도 주시할 것입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의 힘을 보여줍시다. 그래서 검찰의 수사자료가 공개되고, 구속자들이 석방되고, 무엇보다 고인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합시다. 미사에서 한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남일당에서 힘없는 사회의 약자들이 결코 힘없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음 한 켠에 고인들에 대한 추모를, 또 다른 한 켠에 문제해결을 위한 결의를 품고 참여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마음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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