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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사자성어는? 토건망국!

[홍성태의 '세상 읽기'] 생태복지국가를 향하여

1960년 8월 27일 미국의 공군 대위 조셉 키팅거는 기구를 타고 무려 30킬로미터 상공까지 올라가서 지상을 향해 낙하했다. 우주비행사가 대기권 상층부에서 낙하산을 이용해서 탈출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키팅거는 13분 동안 무려 시속 1100킬로미터의 속도로 지상으로 낙하했다. 그리고 낙하산을 이용해서 무사히 지상에 착륙했다. 그가 낙하한 곳은 민간 항공기의 상한 고도보다 두 배 정도 높은 곳이었다. 아직까지 키팅거의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대기록을 자랑하기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별에서 살고 있는가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눈이 잔뜩 쌓인 인왕산 줄기를 타고 오랜만에 짧지만 즐거운 산행을 했다. 청운동 공원에서 인왕산을 향해 오르다가 인왕산 정상 근처에서 오른쪽으로 빠져서 기차바위를 타고 부암동으로 내려왔다. 부암동을 굽어보고 있는 커다란 바위 봉우리가 기차바위다. 꽤 오래 전부터 그곳에 오르고 싶었는데 마침 시간이 되어서 오후 늦게 반코트를 입은 평상복 차림으로 그냥 눈길을 헤치고 올라갔다.

날이 추워서 눈이 녹지 않았기 때문에 눈이 쌓인 곳도 그렇게 미끄럽지 않았고, 비탈에서 미끄러져 눈밭에 구르기도 했지만 삐지도 젖지도 않았다. 추워서 다행이었다. 내려와서 보니 찬바람에 볼이 잔뜩 얼어서 실룩이는 것도 어려웠지만 많은 눈에 덮인 아름다운 북악의 줄기들을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산 위에서 보는 서울과 주변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는 않았다. 눈에 덮인 산들은 아름다웠지만 산들 사이에 어지럽게 들어선 주택과 도로의 모습은 답답하고 난잡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엄청난 스모그였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하늘은 손을 뻗으면 곧 파란 물이 묻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짙은 파란 색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그대로 두고 저 앞을 바라보노라면 어디나 회갈색 빛 하늘이었다. 거대한 스모그가 서울과 주변의 상공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20여 년 전에 북한산 백운대에 올라서 이 모습을 처음으로 보고 질렸었는데, 그 동안 이 심각한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계속 악화되어왔다. 우리는 정말 거대한 괴물을 호흡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 괴물이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이와 같은 괴물들이 횡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 '지구 온난화'라는 거대한 생태 위기가 나타나게 되었다. '지구 온난화'라는 말이 지구가 살기 좋아지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해서 최근에는 '기후 변화'라는 말을 널리 쓰고 있는데, 사실 '기후 변화'라는 말은 문제의 실태를 제대로 전할 수 없는 너무나 무미건조한 말이어서 차라리 '지구 고온화'라고 하는 게 좋겠다. 고열에 시달려 본 사람은 그 고통과 위험을 잘 알겠지만, 지금 지구 전체가 고열에 시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지구가 금성처럼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뜨거운 불모의 별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대단히 무서운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 무서운 상황이 바로 우리 자신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구 고온화'로 대표되는 생태 위기는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인위의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생태 위기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파국으로 끝날 수도 있고 개선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사회문제이다. 이미 생태 위기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전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겨우 파국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타이타닉호는 빙산을 얕보고 오만한 항해를 하다가 침몰해 버렸다. 갈수록 빠르게 악화되는 생태 위기의 징후들을 무시하다가는 우리의 문명 자체가 곧 타이타닉호의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 그 실체가 '4대강 죽이기'인 것을 '4대강 살리기'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보다 더 명확한 '방기곡경'의 사례가 어디에 있겠는가? ⓒ프레시안
2009년 말에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방기곡경'(旁岐曲逕)이라는 어려운 말을 선정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 길이 아닌 '샛길과 굽은 길'을 이르는 말"로서 "바른길을 좇아서 정당하고 순탄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한다는 것을 비유할 때 많이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참 잘 맞는 말을 선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법재판소에서 사실상의 위헌 판결을 받은 '미디어 법'의 개정과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세종시 줄이기'는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른바 '4대강 살리기'야말로 가장 심각한 '방기곡경'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 실체가 '4대강 죽이기'인 것을 '4대강 살리기'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보다 더 명확한 '방기곡경'의 사례가 어디에 있겠는가?

2010년의 사자성어는 아마도 '토건망국'이 될지 모른다. 물론 이 말은 고사성어가 아니라 현재의 무서운 상황을 지적하기 위해 내가 고안한 직설의 사자성어일 뿐이다. 말 그대로 우리의 생명줄인 4대강마저도 토건의 제물로 만드는 토건국가의 극단화 정책을 강행하니 환경도 경제도 모두 죽고 말 것이라는 뜻이다. 생태와 경제에 해당하는 영어는 모두 'Eco'를 어간으로 삼고 있다. Eco는 '지구' 또는 '자연'을 뜻한다. 자연이 죽으면 경제도 죽는다. 자연의 강을 콘크리트 수로와 콘크리트 호수로 만드는 것이 '강 살리기'일 수는 없다. '강 죽이기'에 막대한 재정을 투여하니, 강도 죽고, 재정도 죽고, 경제도 죽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심각한 생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날 이에 대해서는 모든 나라가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덴마크 코펜하겐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겉으로는 생태 위기를 인정하면서도 속으로는 생태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의 '녹색 성장'도 그렇다. 자연의 강을 대대적으로 파괴해서 콘크리트 수로와 콘크리트 호수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반생태주의거나 사이비 생태주의일 뿐이다. 생태 위기의 맥락에서 녹색은 자연을 뜻하는 것이지 인공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4대강 죽이기'이자 '대운하 1단계'가 분명한 '4대강 살리기'를 포기해야 '녹색성장'의 신뢰성이 확보될 것이다.

'일류 선진 국가'는 '진짜 참기름'처럼 유치한 동어반복의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로 내세울 만하기는 하다. 진정한 문제는 그 내용이다. '일류 선진 국가'는 모든 구성원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복지국가'가 아니면 안 된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을 강행하는 '정글 국가'는 그저 '삼류 후진 국가'일 뿐이다. 살아 있는 자연은 복지의 기반이자 원천이다. 오늘날 '복지국가'는 자연을 존중하는 '생태복지국가'여야 한다. 우리는 이미 '생태복지국가'를 추구할 수 있는 물적 근거를 갖고 있다. 재정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해서 토건족과 투기꾼의 배를 불리는 토건국가를 개혁하면, 우리는 곧 '진정한 일류 선진국가'인 '생태복지국가'를 이룩하게 될 것이다.

2009년은 참으로 고단한 한 해였으니 2010년은 모쪼록 즐거운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문제들이 터져서 2010년은 더욱 더 고단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특히 민생의 핵심인 고용 문제와 교육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럴수록 우리는 재정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토건국가의 문제에 더욱 더 주목해야 한다. '생태복지국가'는 저기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과제'이다. 키팅거가 절절히 느꼈던 것처럼 이 아름다운 별에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기 위해 '생태복지국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2010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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