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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한국영화의 또 다른 물꼬를 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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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한국영화의 또 다른 물꼬를 트다

[뷰포인트] <전우치> 리뷰

*이 글은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하는 영화전문 월간지 '시노'에 실린 글임

화담(김윤석)의 도술에 걸려 요괴의 힘을 얻게 된 인경(임수정)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난장을 부릴 때쯤,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는 전우치(강동원)가 첨단의 고층빌딩 옥상 난간에 우뚝 서서 화담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영화 <전우치>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정중동. 지금껏 전우치는 망나니 도사에 불과했지만 사실은 내심 그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곧 전우치는, 손에 넣는 순간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만파식적을 사이에 두고 화담과 500년만에 다시 일촉즉발의 대격돌을 벌일 참이다. 저 아래 세상은 자신이 지금 뭘 하려 하는지, 뭣 때문에 이러는지 알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은 늘, 세상을 탈취하려는 자의 야욕을 올바로 간파하지 못하고 또 (이유야 어찌됐든) 거기에 맞서려는 자의 진심도 잘 알지 못한다. 무심한 세상이지만 그 뒤에서는 항상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다.

▲ 전우치

최동훈 감독의 역작 <전우치>는 여태껏 우리가 봐왔던 할리우드의 수많은 히어로 무비 혹은 앤티 히어로 무비를 마치 영화속 주인공인 전우치가 이쪽 저쪽 담장을 사뿐히 넘어가듯, 그렇게 가볍게 제쳐버린 영화다. 한국영화의 상상력과 판타지,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테크놀로지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전우치>는 한국영화의 수준이 한단계를 훌쩍 넘어섰음을 입증하는, 2009년 연말의 쾌거와 같은 영화다. 상업영화의 진보란 두가지의 요소 곧, 머리(상상력)와 손재주(CG)일 터 <전우치>는 그 두마리 토끼를 제대로 포획한 셈이다.

하지만 두 요소만으로는 이른바 대박이 어려울 수 있는데, <전우치>가 그렇지 않은 것은 5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스토리가 물샐 틈 없이 꽉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화담의 500년 앞날을 예고하는 한 미친 무당의 얘기를 포함해 전우치가 홀딱 반한 여인 인경이 훗날 그가 죽을 자리를 인도하게 된다는 스승 천관대사(백윤식)의 얘기 등등 최동훈은 전체 시나리오를 촘촘히 엮인 그물망처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이야기란 먼저 큰 그림부터 볼 줄 알아야 한다. 작은 그림에 얽매이게 되면 이어지는 에피소드와 캐릭터들의 관계와 설정에 상당한 혼선과 구멍이 생기게 된다.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에 이어, 이야기를 가장 잘 써나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최동훈은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자신이 여전이 이 방면 최고수 가운데 한명임을 입증해 냈다.

▲ 전우치

최초 공개과정에서 영화가 다소 산만하다는 반응들은 순전히 오해때문이거나 2시간16분의 러닝타임에 대한 편견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오해는, 그동안 18세급의 영화를 만들어 왔던 최동훈 감독이 처음으로 12세 등급을 만들었고 그래서 영화 전체를 도사와 신선이 벌이는 도술의 CG, 곧 볼거리로만 채우는 바람에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이 주내용이었다. 한마디로 '애들 영화'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동훈은 12세급을 겨냥하는 척 영화를 관객들 모두가 나름 자신의 연령대로 보고 느끼게 만듦으로써 오히려 관객층을 자연스럽게 확장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런 대사는 정말 성인용이다.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을 몰살시킨 후 여유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가던 화담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급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이렇게 비웃는다. "앞으로의 인생도 그리 대단한 건 아냐." 유들거리는 화담의 표정 뒤에는 그러니 너무 애쓰며 살지 말라는 역설의 동정이 담겨져 있다. 원래는 강아지인 초랭이(유해진)로 하여금 전우치를 배반시키는데 성공한 후에 그가 하는 말도 나름 걸작이다. "네가 정말 인간이 다됐구나. 배신도 할 줄 알고." 인간의 세상에서 사(邪)는 없어지지 않는, 존재함으로써 오히려 정(正)이 있음을 알게 하는 또 다른 존재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우치>의 곳곳에 배치돼 있는 이 '인생철학'들은 이 영화가 결코 만만한 방학용 특수 어드벤처 액션영화가 아님을 보여준다.

전우치와 화담, 초랭이와 인경의 주요 캐릭터 외에 이들을 받쳐주는 세명의 도사들 곧 송영창, 주진모, 김상호의 역할과 연기도 일품이다. 요즘들어 부쩍 다양한 이미지를 선보이는 송영창은 그와 같은 중견 연기자들이야말로 우리 영화계에서 보석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새삼 갖게 만든다. 근데 이 영화의 화려한 와이어 액션에 대해서는 언제 얘기할 것이냐고? 그걸 꼭 굳이 얘기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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