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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가, 그리고 경계도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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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가, 그리고 경계도시2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화재현장에서 귀금속을 훔쳐 달아난 소방관에 대해 기사쓰기를 포기한 문정수는 그 사실을 오밤중에 찾아간 여자 친구 노목희에게 고백한다. 속옷 차림으로 그와 맥주를 마시던 노목희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냅둬. 쓰지마. 난 그 소방관 편은 아니지만 문정수 편이야. 그냥 냅둬. 경찰한테도 말하지 말고 데스크한테도 말하지 마. 냅둬." 그녀는 두 사람이 다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기자인 문정수나 귀금속을 훔친 소방관이나. 두 사람 모두 가엾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 문정수는 조급하게 여자의 '속을 파고들다' 잠이 든다.

사람들이 하도 좋다 해서 오히려 싫어 했던 작가 김훈의 소설 <공무도하>는 이상하게도 중간중간 울컥하게 만드는 대목이 많다. 아마도 그건, 김훈 선생이 처음으로 자신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은 이 세상의 모든 희귀한 일을 뒤좇고 관찰하는 기자다. 김훈 작가 역시 한때 필치를 휘날리던 기자였다. 작가든, 감독이든, 화가든 자신의 얘기를 할 때 작품이 더없이 빛나는 법이다. 괜스레 구분하자면 우파 니힐리스트인 김훈 선생의 이번 소설은 지금의 우리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든(아마도 그는 용산참사도 집단 이기주의가 근본적인 이유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상당한 설득력과 일리를 펼쳐 낸다. 좌든 우든 세상을 고민하는 그 정서에 진심이 묻어나면 감동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공무도하>는 여주인공 노목희의 얘기처럼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불쌍해서 마음이 아파지는 작품이다.

▲ 경계도시2

근 4년만에 세상에 나온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북한 노동당 서열 27위의 김철수라는 인물로 몰려 사면초가에 빠진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늦은 밤 홀로 호텔방에 남겨진(버려진) 모습이다. 시종일관 그를 뒤좇던 홍형숙 감독의 카메라는 기회가 이때다 싶은데도 그에게 질문을 치고 가지 못한다. 나레이션조차 "겨우 독대의 기회가 생겼는데도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남한 사회의 강고한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이 경계의 철학자에게 홍형숙 감독은 괄호 열고 이렇게 묻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믿었던 당신이 그렇다면 거짓말 한 것인가요? 당신은 김철수인가요 아닌가요?" 이 침묵의 장면 속에는 홍형숙감독의, 눈물의 질문이 스며들어있다. 송두율이 김철수이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그가 누구이든 이제 우리사회는 그를 껴안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해 오던 홍형숙감독조차 뜻밖의 사건 속에서 '자기 안의 파시즘'을 발견하곤 혼란에 빠진다. 하여, <경계도시2>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이념의 자화상을 더 깊게 파헤친 작품이다. 2003년 우리들은 송두율 교수를 구속시키는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위세 앞에 입바른 얘기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편에 선 꼴이 됐었다. 홍형숙감독은 이번 다큐를 통해 어쩌면 그 일원에 자신 역시 속해 있었을지 모른다고 조용히 고백하고 나선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홍감독이 빠른 시간에 <경계도시3>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그때문이다. 독일로 떠난 송두율 교수를 다시 인터뷰하는 것은 물론 그때 그의 구속에 직간접적으로 동의했던 자칭 진보진영의 뼈아픈 반성의 고백들을 담아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를 할 때 진정성을 되찾는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그 과정에서 우파 니힐이 됐든 좌파 정통이 됐든 그런 구분은 다 개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김훈의 소설에 살짝 마음이 떨렸다. 홍형숙의 다큐를 보면서는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다. 원래는 그 반대일 줄 알았다.

*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407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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