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 선생은 누구보다 뛰어난 논리와 표현 능력을 지닌 원로 사회학자이자 정치와 행정의 경험을 풍부하게 갖춘 원로 민주화 운동가이다. 이 책에서도 우리는 냉전 수구 세력이 내세우는 주장의 허구성과 부당성을 예리하고 흥미롭게 비판하면서 진실을 드러내는 그의 뛰어난 능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대단히 풍부하고 유익하다. 그러나 나는 한완상 선생의 제자이기 때문에 이 책의 서평을 쓰기가 여러모로 조심스럽다. 나는 그가 전두환에 의해 해직되었다가 복직된 다음 해인 1985년에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나의 학부 지도교수였다. 나는 그에게서 사회학의 가치와 과제에 대해 배웠다.
1936년생인 한완상 선생은 20세인 1955년에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35세인 1970년에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기 시작했다. 그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1976년에 박정희에 의해 한 차례 해직되었고, 1980년에 전두환에 의해 다시 해직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전두환은 한완상 선생을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죄'로 엮어서 옥에 가두었으며, 결국 그는 해직되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야 했다. 그는 1970~8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의 실천적 지식인으로, 1990년대에는 민주화 정부의 실천적 지식인으로, 2000년대에는 민주화의 심화와 확장을 고민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아왔다. <우아한 패배>에서 우리는 민주화의 진전과 후퇴라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실천적 지식인의 고뇌와 실천을 읽을 수 있다.
▲ <우아한 패배>(한완상 선생 지음, 김영사 펴냄). ⓒ프레시안 |
<우아한 패배>는 한완상 선생의 말을 글로 기록한 것을 모아 놓은 특이한 책이다. 근래에 전문 인터뷰어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그들이 인터뷰한 내용을 자신의 저서로 발간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 중에는 내 인터뷰가 포함된 책도 있다. 나는 2008년에 출간된 그 책의 출간 소식을 그 인터뷰어나 출판사로부터 아직까지 전해 받지 못했거니와 그 인터뷰어는 나를 인터뷰할 때 그 내용을 자기의 저서로 출판할 것이라고 알려주지도 않았다.
애초에 내 인터뷰는 모 잡지의 청탁에 응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인터뷰어는 질문을 하고, 인터뷰이는 답변을 한다. 그러니 인터뷰로 이루어진 책의 실제 저자는 인터뷰어가 아니라 인터뷰이일 것이다.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의 말을 채록해서 자기의 저서라고 발간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이다. <우아한 패배>는 인터뷰의 출판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아한 패배>는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기, 2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기, 3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기, 4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정부' 시기에 행한 인터뷰를 모아 놓은 것이고, 5장은 젊은이들의 질문을 9개로 정리해서 답변한 것이다.
한완상 선생은 '문민정부'에서 초대 통일부총리를 맡아서 남북 관계의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크게 고생했으며, '국민의 정부'에서는 교육부총리를 맡아서 교육 개혁과 학교 개혁을 위해 크게 고생했다. 그가 더 고심했던 쪽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통일부총리 쪽을 골라야 할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전쟁 상태에 있는 비정상적 국가이거니와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정착은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과제이다. <우아한 패배>는 이 과제를 어떻게 이루어야 할 것인가에 관해 많은 정보와 화두를 제공한다.
이 책은 이미 발간된 인터뷰들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내용에서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16년에 걸쳐 이루어진 인터뷰들을 모아 놓았기 때문에 민주화의 전개와 최근의 그 퇴보를 한 흐름 속에서 파악할 수 있으며, 이 흐름의 복판에 있었던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의 인식과 실천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미를 갖는다.
나는 무엇보다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정착에 대한 한완상 선생의 강조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김진균 선생의 지도로 현대 사회와 군사 문제에 관해 상당히 오랫동안 연구했던 나로서도 남북한 모두의 비정상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정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적대적 공생 관계'를 넘어서는 곳에서 남북한의 새로운 발전이 시작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이미 경쟁에서 승리한 남한의 적극적인 주도가 필요하다는 선생의 지적은 극히 타당하다.
<우아한 패배>는 단순히 한완상 선생의 인터뷰를 모아 놓은 책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발전에 관한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의 오래 시간에 걸친 진지한 자기성찰과 핵심적인 제안을 모아 놓은 것이다. 물론 내가 말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란 사회의 문제에 적극 맞서서 그것을 해결하고 평화와 정의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지식인을 뜻한다.
사실 이런 지식인 개념을 나는 1985년 1학기에 수강했던 한완상 선생의 <사회학 개론> 강의에서 배웠다. 그는 지식인과 지식 기사를 이론적으로 명료히 구분하며 우리에게 실리를 탐해서 불의에 눈감는 지식 기사가 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은 사회학의 핵심에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학문을 넘어서 인생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민주주의의 위기와 지식인의 책임에 관해 관심이 커지는 현재에 더욱 중요한 성찰의 화두를 던진다. 이 책이 다음과 같이 지식인의 책임을 다시금 강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식인은 권력의 이데올로기적 왜곡을 직시하고 그 화려한 레토릭 뒤에 있는 권력의 추악한 실체를 용기 있게 그리고 정확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폭로해야 합니다. 이데올로기 비판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필요한 지식인의 덕목이요, 몫입니다. 특히 신권위주의 망령이 다시 꿈틀거리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여기에 창조적인 줄씨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지식인들 자신이 바로 비판적 줄씨알이 되어야 합니다. (532쪽)
우리는 과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처참한 식민과 독재의 역사를 극복하고 이미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세계가 존경하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안중근이 꿈꾸었던 '평화 사회', 김구가 꿈꾸었던 '문화 사회'를 과연 이룰 수 있을까? 한완상 선생은 이런 중대한 질문에 대해 신중하게 긍정적인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지난 100년간의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민주화의 역사였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분명히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희망의 토대는 여전히 유약하고, 이미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기도 하다. '좋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한완상 선생이 '문민정부' 시절부터 줄기차게 지적하고 있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첫째, 냉전 수구 세력의 강고함이다. 잘 알다시피 한국의 보수주의는 사이비 보수주의와 합리적 보수주의로 나뉠 수 있다. 그리고 불행히도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이비 보수주의다. 냉전 수구 세력이란 바로 이 사이비 보수주의 세력을 가리킨다. 냉전 수구 세력은 부일과 독재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보수라는 말을 내세워서 자신의 정체를 은폐한다.
남한의 냉전 수구 세력은 북한의 강경 군부 세력과 '적대적 공생 관계'를 형성해서 계속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정치계, 경제계, 언론계, 문화계, 학계를 망라해서 강고한 연줄망을 형성하고 있다. 이 사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똑바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냉전 수구 세력이 강요하는 반민족·반민주·반평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정권을 교체하는 것으로 이 사회 전체에서 막강한 위력을 떨치고 있는 냉전수구세력의 지배가 해소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둘째, 민주 개혁 세력의 취약함이다. 민주 개혁 세력은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부일과 독재의 역사를 직시하고, 무조건적인 반북과 친북을 넘어서며, 신자유주의가 강행하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적극 맞서는 것 등을 핵심으로 한다. 요컨대 자유주의, 민주주의, 민족주의, 복지주의, 생태주의가 민주 개혁 세력의 실질적인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냉전 수구 세력이 사실상 이익을 목표로 쉽게 단합될 수 있는 반면에 평화 개혁 세력은 전체적으로 약할 뿐더러 다양한 가치를 추구해서 쉽게 분산된다. 한완상 선생은 혁명보다 개혁이 어렵다는 것을 적극 논증하면서 민주 개혁 세력이라는 주체의 형성이 개혁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해왔다. 너무나 타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토론은 꼭 필요하지만 단합은 더욱 더 필요하다. 서로 차이를 분명히 밝혀서 실질적인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역사의 교훈은 분명하다.
한완상 선생은 <우아한 패배>에서 현재를 일찍이 에리히 프롬이 지적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와의 비슷한 상황으로 설명하고 있다. 독일에서 제1차 세계 대전 뒤에 수립된 바이마르공화국의 개혁이 실패하자 그 실패를 이용해서 히틀러의 독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놀랍게도 히틀러의 독재는 바이마르공화국의 민주주의를 이용해서 역사상 최악의 독재체제를 수립했다. 이 처참한 역사를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로 설명했다.
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되도록 죽은 이들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는 '용산 참사'는 한완상 선생의 설명이 단순한 극단적 사례의 인용이 아니라 진지한 역사적 성찰의 결과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개발과 투기의 이익을 위해 철거와 추방과 학살을 방치한다면, 결국 우리는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탄생시킨 히틀러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한완상 선생이 현재를 대단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실 그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개혁의 좌초에 따른 반동의 격화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햇볕 정책'이라는 말은 그가 통일부총리였던 1993년 5월에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처음 사용했던 말이다. 그는 이 말을 통해 '공변공영'의 '우호적 상생 관계'로 나아가는 새로운 남북 정책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완상 선생의 개혁은 결국 냉전 수구 세력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개혁의 좌초는 전 대통령 노무현의 자살이라는 대사건마저 빚어내고 말았다. 그는 노무현의 자살을 냉전 수구 세력에 의한 사실상의 타살로 파악한다. 그러나 그는 노무현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에 비견되는 '우아한 패배'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그는 현재를 비판하되 결코 비관하지 않으며, 개혁의 진전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적극 공유하고자 한다.
과연 이 추위는 겨울이 다시 온다는 조짐일까? 나는 조용히, 그러나 힘주어 말하고 싶다. 이 추위와 혼란은 잠시 나타난 꽃샘추위일 뿐이라는 것을. 아무리 칼바람처럼 매섭다 할지라도 소리 없이 장엄하게 다가오는 봄을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이런 믿음과 희망을 가슴에 뜨겁게 지니면서 지난 10여 년간 긴박했던 역사 현실과 직접 대좌했던 나의 경험, 나의 증언 그리고 나의 경고를 여기 내놓는다. (5쪽)
우리의 역사도 기독교의 역사처럼 결국 '우아한 패배'의 승리로 귀결될 것인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물론 치열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보'의 이름으로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을 외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한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보편적 가치를 탐구하고, 그것을 여기서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책들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민주 개혁 세력이 비로소 신뢰를 얻고 이 사회의 발전을 적극 추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정치와 행정의 민주화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경험을 잘 정리해서 널리 공유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지난 여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남한강 답사에서 곽노현이 제안했던 것이다. <우아한 패배>는 이런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한완상 선생의 경험은 민주개혁세력 전체의 자산이다.
한완상 선생은 활발한 강연과 집필을 하고 있다. 그가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공유해야 할 경험은 이미 발표된 것보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다. <우아한 패배>를 읽고 나는 그의 회고록을 기다리게 되었다. '우아한 패배'를 딛고 '진정한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 냉전 수구 세력에 대해, 민주 개혁 세력에 대해, 한국의 기독교에 대해, 한국 사회의 특징과 과제에 대해 우리는 그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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