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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림 무용평론가의 춤과 함께한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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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림 무용평론가의 춤과 함께한 시간여행

몸짓의 속삭임을 읽어내다

▲ ⓒ1999년 <허공의 푸른길>

"우리 춤계에는 헐리웃 블록버스터처럼 무대에 불을 지르는 샤샤 발츠도, 폭포수로 무대를 채우는 피나 바우쉬도 없지만, 못난 늙은 소를 3년이나 촬영한 영화 '워낭소리'처럼 '볼레로'만 9년째 안무한 무용가나, 저예산 때문에 단 50회 촬영으로 만든 영화 '똥파리'처럼 무용수 스스로 옷을 지어입고 망치질로 세트를 만드는 춤 작품들이 여러분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소극장의 젊은 무용가들을 찾아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춤을 선택한 것에 늘 감사한다는 김예림 무용평론가. 삶의 매순간마다 춤과 늘 함께했다는 그녀는 월간 '춤과 사람들'에 글을 기고하며 대중과 춤의 돈독한 소통을 꿈꾼다. "저는 무용가 출신 평론가입니다. 7살에 춤을 시작해서 이화여대와 동대학원을 거쳐 1994년 현대무용단-탐에 입단했죠. 무용단 대표시절 글과 인연이 닿아 2006년에 평론가로 등단했어요. 현재는 아르코 공연예술아카데미 책임교수로 재직하며 월간 '춤과 사람들'에 글을 싣고 있어요. 춤을 그만둔다는 상상을 아직 할 수 없는 것을 보면 요란스러운 기복의 그래프를 그리면서도 언제나 함께할 존재임은 틀림없습니다."

▲ ⓒ1996년 <화향>
하지만 춤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대중에게 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보였다. 무용에 대한 홍보나 언론의 관심이 너무나 미약한 현실 탓이다. "요즘 세태를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어요. TV 문화프로그램은 오지의 시간대로 밀려난 지 오래고, 일간지 문화면을 보면 무용계 소식은 가뭄에 콩 나듯 합니다. 독자들의 관심순위에 무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80~90년대 신문기사에 비한다면 무용은 잊혀져가는 장르 같습니다. 무용이라는 분야가 오랜 세월 흐름을 읽지 못하면 어렵기 때문에 문화부 기자들이 맡기 꺼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기자는 연습실만 돌며 취재를 하는데 그 이유가 돈 봉투를 받기 위해서라더군요. 홍보라는 것은 무용단과 무용가만 노력해서 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언론의 바람직한 관심이 더해지길 바랍니다."

소통의 어려움은 대중과의 사이를 멀게 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한다. "춤이라는 장르는 대사가 없기 때문에 대중과 가까워지기 힘든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게다가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출연자도 이해 못하는 어렵고 모호한 춤을 만들어온 것은 춤 스스로 관객을 멀어지게 한 요인이었죠. 그렇다고 대중화를 위해 춤이 예술성을 잃고 쉽게 가서는 안 됩니다. 오스카와일드가 이런 말을 했지요. "예술은 결코 대중적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대중들이 스스로 예술적으로 되도록 해야 한다." 라고요. '시'가 어렵다고 모두가 '만화책'만 만들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박태환과 김연아 선수 때문에 대중이 수영과 피겨스케이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성도 높고 질 좋은 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면 무용 역시 대중의 사랑을 받는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 ⓒ2004년 <유배된 밤2>
그렇다면 대중성과 예술성의 기로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춤의 진정성은 무엇일까? "진정한 춤은 관객에게 가닿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름답던 추하던, 고상하건 천박하건 보는 사람을 생각하고 만든 춤과 자기만족으로 추는 춤은 분명 다릅니다. 짧게 즐기는 춤이나 충격, 혐오를 추구하는 춤 가운데에도 관객의 마음에 와 닿는 명작들이 있기 때문이죠. 극단적인 비유를 하자면, 실적을 채우기 위해 제자를 시켜 대신 안무한 작품에 교주처럼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출연한 교수보다, 기방에서 술상 너머 앉아있는 한 사람을 위해 수건 춤을 춘 기생이 오히려 진정한 춤을 추었다고 할 수 있죠."

제일 좋아하는 무용가로 모리스 베자르를 꼽은 그녀는 성인이 된 후 마츠 에크의 '카르멘'과 피나 바우쉬의 '카페 뮬러', 앙즐랭 프렐조카주의 '결혼'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고. "춤에 무용수의 철학과 연륜, 인성 등이 묻어나서 그것이 관객의 마음에 와 닿을 때 이상적인 춤을 춘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용수는 몸뿐 아니라 가슴과 머리를 채울 수 있는 풍부한 감성과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연륜을 춤에 묻혀낼 수 있어야 합니다."

▲ ⓒ2006년 <초록말을 타고 문득>
[김예림이 만난 무용가]를 통해 만난 무용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무용가를 묻는 질문에 그녀는 어렵게 무용가 Best 3을 꼽았다. "지난 5년간 50여명의 무용가들을 만났는데, 모두 세계적으로 성공한 최고의 무용가들이었어요. 그 중 누군가를 꼽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쎄 드 라 베 무용단(les Ballets C.de la B.)의 알랑 플라텔과 산카이 쥬쿠 무용단의 유시오 아마가츄, 프랑스 무용가 다니엘 라리외를 Best 3로 꼽고 싶네요. 그들은 인터뷰로 그치지 않고 자신의 공연을 본 후 다시 저와 대화를 나누거나 반대로 저에게 수 없는 질문을 쏟아 놓는 등 인터뷰 이상의 춤 교감을 나눈 사람들입니다. 그 밖에도 출중한 미모로 저를 혼란스럽게(?) 했던 일본 현대무용가 가나모리 조와 도도했지만 속 깊은 대화를 나눠준 실비 길렘, 위독한 상황에서도 인터뷰에 응해준 에밀 디미트로프 하지마노(바르나콩쿠르 창시자),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 무용수들의 기량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에는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것입니다. 특히 발레분야의 무용수들 기량은 아주 뛰어나지요. 현대춤의 경우에는 '기량'의 의미에 많은 것이 포함되기 때문에 좀 더 세분화하여 들여다봐야하는데, 몸의 훈련정도, 즉 신체성은 매우 뛰어나다고 봅니다. 그런데 현대춤 작업에서는 신체성만 가지고 좋은 무용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연기, 즉흥, 창작력 등 작품에 따라 안무자의 요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정서적으로 많은 것들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는 발전하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2010년 새롭게 열리는 한국무용협회의 국제무용콩쿠르와 서울국제무용콩쿠르 등 병역 면제혜택이 주어지는 콩쿠르의 열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며 한국무용계의 참신한 바람을 소망했다.

"네덜란드의 무용가 한스 반 마넨에게 무용을 어렵게 느끼는 관객들을 위해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일단 와서 보세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답하더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일단 스토리텔링이 분명한 발레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요. 클래식 발레를 몇 편 보고나면 또 다른 춤이 보고 싶어질 거예요. 조금씩 추상적인 작품에 접근한다면, 타 장르에서 찾지 못한 무한한 상상력의 매력을 만나게 될 겁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음식이 맛있지 않듯 모든 무용공연이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동작에서 의미를 찾으려하지 마시고 전체적인 느낌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추상화를 감상하면서 사소한 붓 터치의 의미를 찾지는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중과 춤의 사랑을 끊임없이 염원하는 김예림 무용평론가. 춤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매서운 겨울의 추위도 단번에 녹여버릴 듯 뜨겁고도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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