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에서 가르치던 한 학생이 씩씩거리면서 전화를 했다. 작년에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 올해 대입을 준비하던 녀석이었다. '원서도 안 받아주던데요.' 녀석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사정은 이렇다. 정규 학교를 다니지 않은 녀석에게 새로 생긴 여러 가지 입학제도는 일말의 새로운 통로였다. 특히 수능 위주의 정시와는 달리 수시 전형에서는 여러 가지 새로운 방식이 생겼다. 학교장 추천에서부터 자기 추천에 이르기까지.
녀석이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은 자기 추천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다니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걸어간 자신을 한번 돋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태국-버마 국경 지대에 있는 난민촌에 여러 차례 캠프를 다녀온 경험에서부터 꽤 유명한 청소년센터에서 심사한 글짓기에 대상을 차지한 수상 경력까지를 포함하면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녀석에게는 원서를 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동국대와 성공회대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대학들이 수시전형에서 검정고시 출신들에게는 지원할 자격조차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녀석은 자신의 경험과 자기 소개가 볼품없어서 떨어지는 것은 자기 자신이 감당해야하는 일이지만 아예 참여 자격조차 주지 않을 것이면 검정고시라는 제도는 왜 만들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녀석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검정고시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문자 그대로 국가가 정규 학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에게 정규 학교를 다닌 것과 같은 학업 능력과 성취가 있음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그 이후의 공부, 즉 대학에 진학할 최소한의 능력은 된다는 것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대학에 지원할 자격이 애초에 봉쇄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애초 대학들이 주장하던 다양화된 입시 전형, 다양한 인재들의 발굴이 무엇인가? 그것은 대학에서 공부할 기본적인 학업 능력만 인정된다면 그 능력 이외에 다른 여러 가지 잠재력을 보고 학생들을 선발하겠다던 취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검정고시 출신자는 수능을 봐야지만 자기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고 대학은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국가의 학업공인능력을 기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국가의 시험을 개별기관들이 불신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런 시험은 왜 쳐야하는 것인가? 또 국가는 자신의 검증능력을 불신하고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기관들을 그냥 내버려둬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만약 이것이 아니라면 대학들이 이야기하는 '다양화된 입시전형'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뭘 다양하게 보겠다는 것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학생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다른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를 성장시켜왔는지를 물으면서 다양한 잠재력과 능력을 뽑는 것이 다양화된 입시전형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다양화'된 입시전형은 학생 자체 잠재력이 아니라 지원하는 학생을 뒤에서 받쳐주는 권위와 배경을 테스트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게 '다양화된 입시전형'의 실체이다.
사실 이것이 국민의 평등권 침해라는 것은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결정이 난 사항이다. 그때 국가인권위의 결정에 따라 한양대와 연세대 등에서는 수시모집에서 검정고시생들에게 응시제한을 주던 것을 폐지하겠다고 결정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것이 대다수 학교에서 시정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럴 것이면 국가는 차라리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검정고시를 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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