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이 처음 병역 거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했었다. 정말 총을 들 수 없겠냐고 묻고 되물었다. 집총을 거부하는 것만이 병역 거부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서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병역 거부가 격렬하게 비난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을 걱정한 것이 아니다. 이 정부에서 대체 복무제에 대한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조차 되지 않을 것이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에는 메아리조차 없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인가에 대해 큰소리를 내는 것은 얼마나 무모하고 무의미한가.
'최고 엘리트'들이라는 법조인들조차도 신영철 대법관의 행태, 그리고 '절차는 불법이지만 결과는 합법'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보며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져있는 시대이다. 자신들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한 느낌이란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들어야하는 사람은 귀를 틀어막고 들을 생각도 안 하는데 글은 써서 무엇하고 말을 해서 무엇하고 항의는 해서 무엇하냐는 무력함에 온 국민이 너나할 것 없이 빠져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타인이나 세상의 변화에 의미를 두면 버틸 수가 없다. 오로지 내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내 안에 의미가 있는 그런 것만을 해야 견딜 수가 있다. 세상이 모두 이럴진대 녀석이 이 무의미와 과연 싸우면서 버틸 수 있을지 그것이 두려웠다.
▲ 연세대 종교극예술연구회 학생들이 지난 7월 13일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예수의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대체 복무제 시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직후다. ⓒ프레시안 |
IMF이후 몰락해버린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국가권력이 시민을 보호하기는커녕 경제적 위기 상황이라는 이유로 국민을 동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전(前) 정부에서 국방부가 이미 약속한 것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뒤집어버리는 사회에 어떤 민주주의가 있는가를 되물었다.
녀석이 거부한 것은 병역만이 아니라 국민을 주권자가 아닌 동원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폭력적인 '전시 동원 체제'였다.
돌이켜보면 언제 우리 사회가 전시가 아닌 적이 있었던가? 군사 독재 시절에는 반공과 근대화를 위해 코흘리개까지 저금통을 들고 동원되어야했고 중고등학생들까지 총검술을 배웠다. 나라가 민주화가 되고 나서는 곧바로 터진 경제 위기에 돌반지까지 빼들고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발적으로 동원되었다. 그러나 이 위기와 전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위기에 이은 위기. 전쟁에 이은 또 다른 전쟁. 녀석이 거부한 것은 이 항구화된 위기이며 전시 상황이다.
녀석은 몰락한 자신의 가족사에서 이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삶이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총을 내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총을 내리지 않는 한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며 녀석은 자신의 총을 내려놓았다. '우리 이제 총을 내리고 삶을 살아갑시다.'
이번에는 내가 깨달았다. 녀석은 무의미와 싸우는 또 다른 전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전시동원체제를 향한 녀석의 평화적인 거부, 그것은 이미 삶이고 의미였다.
(2002년 박시환 남부지법 판사(현 대법관)는 병역법에 명시된 양심적 병역 거부 처벌 조항에 대해 '위헌 법률 심판'을 청구했고, 2004년 헌법재판소는 국회에 대체 복무제 도입을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또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대체 복무제 도입을 권고했다. 유엔인권위원회 역시 여러 차례 우리 정부에 같은 권고를 했다.
마침내 2007년 9월, 국방부는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 복무를 허용하고 2009년 1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뒤인 지난해 12월 24일,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 복무를 '전면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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