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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가 직접 '사면'을 거부하라"

[홍성태의 '세상 읽기'] '이건희 사면론'의 문제

이건희 삼성재벌 전 회장을 하루빨리 사면해야 한다는 '이건희 사면론'이 재계와 여당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연하게도 '유전무죄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냐는 비판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사실 이 비판의 적실성은 재판을 통해 확인될 수 있다. 이건희 전 회장을 둘러싼 수사와 재판은 무려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게는 경영권 불법 승계, 배임, 조세 포탈 등의 혐의들이 제기되었으며,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과 2008년 조준웅 특검을 거쳐 2008년 7월 16일에 1심 판결이 내려졌다.

1심 판결의 내용을 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민병훈 부장판사)는 이건희 전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판결했고,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혐의는 공소 시효가 지났다며 면소를 판결했고, 차명 주식 거래를 통한 조세 포탈 혐의에 대해서는 일부를 유죄로 판결해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1100억 원을 선고했다.

그야말로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 격인 판결이라고 할 만하다. 10여 년 전부터 큰 논란을 벌이다가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을 계기로 결국 특검을 구성해서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열린 재판의 결과치고는 참으로 싱거웠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이건희 전 회장의 승리였다.

2009년 5월 29일에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1996년부터 시작된 논란이 13년 만에 마침내 끝나게 된 역사적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확정했고,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혐의에 대해서는 파기 환송을 판결했다. 불법 승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확정했고, 조세 포탈과 배임에 대해서는 유죄를 확정했던 것이다.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에 따라 2009년 8월 14일에 고등법원의 판결이 다시 내려졌다. 서울 고등법원 형사4부는 이건희 전 회장에게 기존의 조세 포탈 유죄에 대해 배임 유죄를 추가해서 판결했으나, 형량은 기존과 똑같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1100억 원으로 확정했다. 죄가 늘어났으나 형량은 늘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그 자체로 커다란 논란을 야기했다. 2008년 7월에서 2009년 8월까지 진행된 1심, 고법, 대법, 다시 고법의 판결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유전무죄'의 네 자를 다시 떠올렸다. '봐주기 수사'에 '봐주기 판결'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계속 제기되었다.

이재용 부사장이 국내 최대의 기업인 삼성재벌을 승계하면서 낸 세금은 불과 16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 어떻게 정상적인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2008년 삼성재벌의 매출액은 놀랍게도 무려 206조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이재용 부사장이 1996년에 이건희 전 회장으로부터 61억 원을 증여받으면서 달랑 16억 원의 증여세만을 내고는 이 어마어마한 기업의 '오너'가 된 것이다.

▲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의 '사면'은 나라뿐만 아니라 이 전 회장 본인과 삼성그룹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뉴시스
상식적으로 보아서 너무나 이상한 일이 대법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나는 오래 전에 삼성재벌의 놀라운 증여술과 관련해서 삼성재벌이 이에 대해 특허를 받으면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칠 것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제 대법원이 삼성재벌의 놀라운 증여술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정해 주었으니 서둘러서 이 증여술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특허를 받는 게 좋겠다.

특허에 대해 부자들이 다소 서운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막대한 세금을 안 내도 되게 해 주니 칭송의 소리가 더 드높을 것이다. 그리고 이 증여술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정해 준 것은 대법원이니 그 특허의 수익금은 대법원을 필두로 이 나라의 사법부를 위해 쓰는 게 좋겠다.

그런데 불법 승계 문제를 떠나서 유죄가 확정된 것만 보더라도 이건희 전 회장을 사면하는 것은 '삼성공화국'이니 '삼성왕국'이니 하는 비판을 명백한 사실로 확인해주는 증거일 수 있다. 예컨대 조세 포탈에 대해 일부만 유죄로 인정했는데도 벌금이 무려 1100억 원에 이른다. 이 정도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 법원의 판결이 확정된 것도 불과 넉 달 전인 2009년 8월이다. 법원은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해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으나 여러 사유를 들어서 형을 크게 줄여주었다. 이 때문에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판결을 둘러싸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법원에서 형을 크게 줄여준 것도 모자라서 대통령이 아예 형을 없애 준다면, 이 나라의 상태에 대해 불안과 의혹이 커지지 않겠는가?

이건희 사면론은 11월 17일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지게 되었다. 김 지사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복권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이틀 뒤인 11월 19일에 조양호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서 같은 주장을 했다.

그리고 12월 11일에는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사실상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을 요청하는 발언을 했고, 국회에서 이귀남 법무장관이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사면 건의를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12월 16일에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2주전 이건희 전 삼성회장 등 기업인 70여 명에 대한 사면복권을 청와대에 탄원했다"고 밝혔다.

나는 손 회장의 발언을 접하고 이귀남 법무장관의 답변은 재계, 청와대, 정부, 한나라당의 협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공표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여러 비판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은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재계의 요구대로 올해 안에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은 2008년 7월 15일에 IOC 위원장 앞으로 자신의 IOC 위원직에 대해 임시 자격 정지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유죄 선고에 따라 이건희 전 회장은 현재 임시 자격정지 상태에 있다. 사면을 받게 되면, 이 상태는 해소되고 이건희 전 회장은 IOC 위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이건희 사면론의 가장 유력한 근거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중요하다고 해서 유죄를 확정 받고 불과 4개월 만에 사면 받는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삼성재벌의 경영권 승계는 참으로 이상했고, 이에 대한 수사와 재판도 그렇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이제는 어렵게 확정된 유죄마저 없던 것으로 한다면, 그야말로 이 나라의 상태 자체가 이상하다는 비판을 받지 않겠는가?

더욱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자체가 심각한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모든 활동과 예산부터 철저히 조사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경제를 위해서 이건희 전 회장이 조속히 사면되어야 한다는 재계의 주장은 '유전무죄'를 공공연히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과 삼성재벌의 영향력은 굉장하다. 그러나 그 영향력의 이면에서 이런저런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인 경영권의 불법 승계 문제에 대해 법원은 무죄를 확정했지만, 바로 이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더 커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국익을 위한 길은 이건희 전 회장을 사면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확정된 유죄만이라도 제대로 집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을 사면하는 것은 '삼성공화국' 또는 '삼성왕국'에 대한 불안과 우려를 더욱 더 크게 할 것이다. 이 나라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건희 전 회장을 위해서도 그의 사면은 문제다.

아무래도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은 '용산 참사'와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유전무죄 국가'의 수립을 선포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 같다. 논란이 계속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건희 전 회장이 자신의 사면에 대한 여러 제안들을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마도 그렇게 하면 이 나라의 신뢰성이 확보되고, 이건희 전 회장의 신뢰성도 커질 것이다. 매출액과 이익률에서만 일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생 경영과 투명 경영에서도 일등을 하는 것이 삼성재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건희 전 회장이 불합리한 사면 제안을 거부하는 것은 그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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