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통합방송법 개정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KBS 사장에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임면'에서 '임명'으로 바꾸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던 박지원 의원은 21일 "내가 문광부 장관 때 방송법과 관련해 방송위원회와 충돌이 많았는데, 이를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 했더니 '임면'을 '임명'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옳다고 생각해서 (임명으로 개정하는 것을)받아들인 것"이라고 했다는 구술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박 의원은 또 "김 전 대통령은 방송의 모든 권한을 정부에서 방통위로 넘겨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고 강원용 위원장(당시 방송개혁위원장) 으로부터 수시로 보고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박 의원은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21일 국회에서 가진 '대통령의 KBS 사장 해임, 법적 정당성을 묻는다'는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증언했다.
이 자리에는 박 의원과 함께 당시 문화관광위원 국민회의 간사로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신기남 전 의원, 개정안 마련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당시 방송개혁위원회 소속 이효성 교수가 참석했다.
당시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신기남 전 의원은 "한나라당 간사로 있었던 이경재 의원이 (임명으로 바꾼데 대해) 별다른 뜻이 없는 자기 수정 정도의 형식적인 조치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이는 언어도단이다"고 비판했다.
신 전 의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협상 내용이 속기록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당시 우리가 기득권을 내놓겠다는 것이어서 한나라당이 기분 좋으니 토론 거리가 안됐고, 한나라당이 우리에게 대단한 결단을 내렸다고 한 것이어서 길게 얘기할 게 없었다. 토론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안심사소위에서는 거론됐지만 속기록이 작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이효성 교수(신문방송학과)도 "개정 당시 공영방송을 내 주는 것이 문광부 입장에서 손실이었고 실제로 외부에서 엄청난 로비가 있었지만 당시 국회의원들이 방송의 독립성,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며 당시 사안이 중대했음을 지적했다.
'법치' 강조하는 현정부의 자기모순
한편 이 자리에서는 정연주 사장 해임과 관련된 '해임권' 논란의 법적 정당성에 관한 토론도 이어졌다.
발제자로 참가한 서동용 변호사는 "우리나라 법률은 임명과 임면을 철저히 구분하고 있는 바 방송법상 KBS 사장에 대한 '임명' 규정은 면직권을 배제하는 규정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법학과)는 "헌법에서 특히 국가기관의 권한은 좁게 엄격히 해석해야 하는 것은 일반적인 원칙"이라며 "헌법에서 국가기관에게 권한을 주는 것은 뒤집어서 그 이외의 권한은 없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KBS 사장에 대해서는 임명권만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정부가 선진화 진입 강조하는 것은 법치주의"라며 "KBS 사장 해임은 법적 근거가 없는 해임권의 남용이 되는 것이고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자기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김갑배 변호사는 "우리 헌법은 독재정권 시절부터 87년 직선제 개헌까지 공무원 임용과 관련해 '임명권'으로 표기했고 '임명권'에 해임권이 포함되어 있다는 논리가 있었지만, 개헌 이후 헌법 73조는 '임면'을 분명히 명기했다"며 "임명권으로 임면을 규정하는 것은 독재정권의 논리이자 현재 상황에 대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북대 김승환 교수(법학)는 "개별 사안의 법 적용은 헌법의 통일성의 원칙에 비춰 생각해야 한다"며 "KBS 사장 해임 문제는 단순한 임면권 문제가 아니라 충돌하는 다른 헌법의 원칙들, 즉 언론의 자유, 국민주권의 원칙, 민주주의의 원칙 등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와 관련된 법 해석 공방의 지나친 협소함을 지적했다.
한편 김 교수는 민주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토론회를 왜 지금 하고 있나. 규모를 키워서 더 빨리 열었어야 하지 않느냐"며 "민주당이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까 국민들이 방향을 잃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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