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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의료법인' 시도하는 정부, 남아공 되길 꿈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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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의료법인' 시도하는 정부, 남아공 되길 꿈꾸나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2010 월드컵 열리는 남아공에 갔더니…

2010년 월드컵 준비로 한창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다녀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노조 조직화 연수단에 속해서다. 남아공 노조운동은 그 위상이 한국과 비교할 때 너무 달랐다.

남아공의 대표적 노총인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COSATU, 이하 코사투)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 공산당과 더불어 집권 3자동맹의 일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남아공에서는 경찰노조는 물론 군인노조도 활동하고 있었고, 군인노조에게 파업권을 주느냐 마느냐가 정치적 논란거리였다.

▲2010년 월드컵 준비로 한창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다녀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노조 조직화 연수단에 속해서다. 남아공 노조운동은 그 위상이 한국과 비교할 때 너무 달랐다. 사진은 월드컵주경기장건설장면.ⓒ프레시안

"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고 외치는 경찰노조 위원장이 존재하는 나라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경찰노조의 위원장은 자기 노조의 안내 책자에서 자신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고 대놓고 선전했다. 코사투의 지도부는 물론이고 코사투 산하 주요 산별노조의 대표자들 대부분 공산당 당원이었다.

당신이 말하는 사회주의가 뭐냐고 물으면, 백인백색(百人百色)의 답이 나왔다. 프롤레타리아독재를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스스로 "적색 노조운동(red unionism)을 지향한다"고 답한 어느 노조간부는 대뜸 한국의 교회는 어떤 교파들이 많으냐고 물으면서 자기는 감리교도이기 때문에 한국에 가게 되면 감리교회에 꼭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방문 일정이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남아공 노조운동이 부러워졌다. 경찰노조의 위원장이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인 게 부러운 건 아니었다. 민주화 역사가 우리보다 짧은 1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경찰노조를 조직할 수 있을 만큼 '결사의 자유'가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었고, 노조 위원장도 공식 석상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상의 자유'가 보장될 만큼 남아공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의 질이 높은 점이 부러웠다.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하면서도 국민 모두가 자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반공(反共) 파시스트들이 여전히 활개 치는 한국 사회와 뚜렷이 비교되었다.

▲ 방문 일정이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남아공 노조운동이 부러워졌다. 경찰노조의 위원장이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인 게 부러운 건 아니었다. 민주화 역사가 우리보다 짧은 1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경찰노조를 조직할 수 있을 만큼 '결사의 자유'가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었고, 노조 위원장도 공식 석상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상의 자유'가 보장될 만큼 남아공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의 질이 높은 점이 부러웠다.ⓒ프레시안

"OECD 회원국이 공무원, 교사의 노조 활동을 막을 수 있나요?"

남아공의 노조간부들은 우리가 말하는 한국의 노동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통합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정했다고 위원장이 해고되고, 전교조가 정부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을 했다고 핵심 간부들이 징계를 당하는 게 OECD 회원국에서 어떻게 가능하냐고 입을 모았다.

파업을 하면 형법의 업무방해 조항을 들이밀어 노조원을 구속하고 금전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한국의 현실은 이들에게 경악 자체였다. 민주노총과 산하 산별노조 본부가 경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소식에는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그런데 한국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의료제도로 넘어가자 이번에는 부럽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바로 한국의 국민건강보험(National Health Insurance) 때문이었다.

남아공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우리나라에는 있는 국민건강보험이 남아공에는 없다. 백인 독재 체제의 유산으로 남아공은 미국식 의료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남아공의 의료보험은 민간 보험사들이 100% 장악했다. 공공병원은 정부가 관할하고, 민간 보험사는 시장 논리에 따라 오로지 민간병원만 상대한다.

그래서 의료 양극화가 심각했다. 국민의 20%만이 민간 보험사를 통해 의료보험 혜택을 누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병원에 가고, 국민의 80%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공공병원에 가는 상황이었다.

남아공 교육보건노조(NEHAWU)의 주선으로 '클리닉스'라는 영리의료법인이 운영하는 소웨토의 한 민간병원을 방문할 수 있었다. 200병상도 안 되는데 한국의 일류 병원과 비교했을 때 시설과 서비스의 수준이 거의 같았다. 근무하는 간호사에게 의료보험료를 물었더니, 우리나라 돈으로 한 달에 기본 40만 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2008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구매력 대비 1인당 GDP 수준은 남아공이 한국의 36% 수준에 불과했다. 의료보험 없이 병원에서 아이를 낳을 경우 하루 입원비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우리나라 돈으로 100만 원이라고 했다. 그 간호사에게 월급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40만 원이 안 된다고 했다.

심각해지는 의료 양극화…ANC, 2010년 국민건강보험 도입 공약하다

남아공 최대의 공공병원인 '크리스 하니' 병원을 갔는데, 최근 정부의 재정지원이 이뤄져 새 건물이 세워지기는 했지만, 병원 시설이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형편없었다. 병원장은 국민건강보험 같은 별도의 재원이 없고 정부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공공병원에 속한 인력과 시설의 질이 민간병원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했다. 의료보험이 없어 민간병원에 가지 못하는 환자가 계속 공공병원으로 밀려들어 공공병원의 수용능력은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민간 보험과 민간의료자본이 왜곡시킨 의료제도로 인해 남아공은 보건의료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아공의 HIV/AIDS 환자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18세에서 35세 인구의 20% 가까이가 HIV 보균자다. 영아사망률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남아공 방문 첫날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는 한쪽 귀로 흘리고 말았는데, 국민건강보험의 부재(不在)와 연결시켜 생각해보니 남아공 의료제도의 심각성이 피부에 와 닿았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남아공의 여당인 ANC는 2009년 총선에서 2010년 국민건강보험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코사투와 산하 노조들은 ANC 정부가 민간 보험과 민간의료자본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공약을 착실하게 이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남아공의 여당인 ANC는 2009년 총선에서 2010년 국민건강보험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코사투와 산하 노조들은 ANC 정부가 민간 보험과 민간의료자본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공약을 착실하게 이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사진은 남아공의대표적노총인코사투의요하네스버그지역본부간부들의회의모습. ⓒ프레시안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너무나 소중하다" 깨닫게 해 준 남아공

한국 노동 상황의 참담함과 더불어 국민건강보험제도에 대한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귀국을 하니 돌아가는 꼴이 가관이다. 노동 상황이야 그렇다 치고, 온갖 거짓말을 쏟아내며 영리법인 도입에 '올인'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일부 언론의 작태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국민 대다수의 건강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부자들의 이윤증식에만 몰두하는 대표적인 신문인 <중앙일보>는 17일자 사설에서 기획재정부가 맹목적으로 추진하던 영리병원 도입 드라이브가 삐걱거리는 데 불만을 토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영리병원이 허용될 경우 의료서비스가 양극화하고 건강보험제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일부 주장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형국이 5년째 계속되고 있다"며 선동질을 해댔다.

영리병원 도입이 국민 다수의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과는 무관한 부자들만을 위한 의료서비스이며, 이 때문에 공공의료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영리병원과 의료산업화를 이미 시행해온 태국과 싱가포르에서 확인된 바다. 보건의료노조 연수단의 남아공 연수는 안 그래도 의료제도와 병원운영의 상업화·이윤화로 인해 여러 가지 폐해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영리병원이 도입되고 민간의료보험이 기승을 부릴 경우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지를 생생히 목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영리병원과 사보험이 활개를 치는 남아공을 보면서 병원 영리화와 의료상업화를 막는 마지막 보루인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너무나 소중함을 느꼈다."

보건의료노조의 한 간부가 귀국 비행기 안에서 한 말이다.

많은 한국의 축구팬들과 언론인들이 2010년 월드컵을 보러 남아공에 갈 것이다. 축구경기만 보지 말고 의료제도도 보고 오라고 권하고 싶다. 월 40만 원이 넘는 민간의료보험료를 척척 낼 수 있는 부자가 아니라면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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