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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도 인권에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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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도 인권에 목마르다

[의제27 '시선'] 반쪽짜리 인권의 날, 죽어가는 인권

12월 10일은 '인권의 날'이다. 1948년 유엔에서 세계 각국이 모여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지 61주년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 한국에서는 '반쪽짜리' 인권의 날이 되었다. 국가인권위가 주최한 인권상 시상식에 인권단체 연석회의 등 40개가 넘는 인권단체가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추천한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수상자로 결정하자, 인권단체는 "인권상이 아니라 정부의 눈치 보기"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행사장 대신 거리에 나선 인권단체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에게 '인권추락상'을 수여했다. 그런 상을 당사자가 기뻐하지는 않겠지만 현실을 비꼰 패러디인 셈이다. 인권이란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인권은 마치 결투의 장소가 된 듯하다. 왜 인권을 둘러싸고 갈등과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동서 냉전을 뛰어넘은 '세계인권선언'

원래 세계인권선언은 동서냉전의 시대에 탄생했다.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분할된 국제사회는 핵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극단적 대결로 치달았다. 하지만 냉전의 시대에 반드시 이념대결과 체제경쟁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1948년 세계의 지도자들은 놀랍게도 '세계인권선언'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담은 국제협정을 만들었다. 이 선언은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그 누구도 노예의 신분이나 노예상태에 예속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문구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었다.

냉전이 세계를 둘로 나눈 시대에도 이 선언은 전 인류의 보편적 권리를 정의할 뿐 아니라 인권을 추구하는 세계적 차원의 합의를 표현했다.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부터 미국의 독립선언문, 프랑스의 인권선언문, 그리고 노동자, 여성, 소수인종의 참정권을 위한 운동을 통해 인간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은 새로운 역사의 이정표를 세웠다.

세계인권선언의 위대성은 인간의 권리를 시민적, 정치적 권리로만 제한하지 않고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권리 등 일반적으로 인정된 인간의 모든 권리를 옹호했다는 점이다. 칼 마르크스는 개인의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가 자본가의 착취를 은폐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소련은 세계인권선언에 사회경제적 권리를 가장 먼저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미국의 입장은 미국 독립선언문에 적혀 있는 대로 개인의 권리를 강조했다.

엘리너 루스벨트와 국제적 마그나 카르타의 탄생

미국과 소련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이때 서로 대립하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통합하여 국제적 합의를 만든 사람이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뒤를 이은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엘리너 루스벨트를 '세계인권선언'을 작성하기 위한 미국 대표로 임명했다. 유엔의 인권위원회에 첫 번째 의장이 된 엘리너 루스벨트는 놀라운 정치력을 발휘했다.

엘리너 루스벨트는 "경제적 안정과 독립 없이는 그 어떤 개인의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 결핍된 상태에 있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인간의 다양한 권리는 서로 나누어질 수 없으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한 이 표현은 냉전의 시대를 뛰어넘은 인간의 이성이 이룩한 위대한 통찰이었다. 결국 세계인권선언은 이념의 대립을 초월하여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식량과 주거, 의료, 교육, 노동의 권리와 같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경제적 권리를 모두 포함했다.

세계인권선언문의 다른 위대성은 모든 시민의 인권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밝힌 점이다. 모든 국가에게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가 될 인간적, 시민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증진할 것으로 촉구했다. 이런 점에서 엘리너 루스벨트는 세계인권선언이 "모든 인류를 위한 국제적 마그나 카르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결국 이 선언문은 유엔 총회에서 찬성 48, 반대 0, 기권 8로 채택되었다. (선언문을 채택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8개 국가가 기권했다).

한국의 인권 상황을 우려하는 국제사회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은 개인이 사회와 국가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의 목록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역사의 흐름은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갔다. 군사정부가 통치하는 한국에서 시민적, 정치적 권리는 용기가 없다면 말하기조차 위험한 단어였으며, 사회경제적 권리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1987년 민주화가 이룩된 이후에야 인권의 가치는 헌법에 의해 보장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정부가 등장한 이후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인권은 국가적 과제로 인정을 받았고, 한국은 인권국가의 귀감이 되었다.
▲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아이린 칸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프레시안

그러나 최근 유엔 기구와 국제엠네스티 등 인권단체에서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올해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경제사회문화권 위원회는 한국의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국가인권위의 권한과 조직을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아이린 칸 국제엠네스티 사무총장은 "2008년 한국에서 1200여명의 시위 참여자가 처벌받은 데 비해, 수차례에 걸쳐 경찰의 불법적 폭력이 있었는데도 단 한 명의 경찰도 처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예 아시아인권위원회(AHRC)는 한국의 인권등급을 A등급에서 B등급으로 낮춰야 한다고 국가인권위원회 국제조정기구(ICC)에 요구했다.

왜 인권 선진국으로 칭송을 받던 한국이 이처럼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게 되었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지금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방기하는 국가의 정책 때문에 인권이 죽어가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독립성 훼손 시비와 조직과 예산의 축소 논란에 휩싸이면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거센 비판에 받고 있다.

다시 인권을 위해 노력해야

내년에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 된다. 4.19혁명은 50주년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인권에 목마르다. 독재자에게 인권은 위험한 단어일지 모른다. 법과 질서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인권은 혼란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단어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린 칸 엠네스티 사무총장이 말했듯이 "집회 참가자 있다는 것은 그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그렇다. 자유권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그리고 인권은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장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권이 '4대강 사업'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권은 사라져도 인권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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