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 열린 '노동자 세계 한마당(World of Work pavilion)'도 그런 행사 중 하나다. 국제노총(ITUC)이 주도한 이 행사는 코펜하겐 시내와 본회의장 벨라센터 중간쯤에 있는 덴마크 노총(LO) 본부 건물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의 실현 방안을 타진하며, 저탄소 산업 정책을 위한 노동조합의 입장을 정리하는 데 초점이 모아졌다.
이 자리에서 나온 각국의 경험은 다양하면서도 공통적이었다. 14일 열린 첫날 행사에서 국제식품농업노동조합(IUF)은 저탄소 시대에 지속 가능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려는 노동조합의 비전을 이야기했다. 프랑스노총(CGT)은 환경문제를 해결할 때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국제공공노조(PSI)는 기후 위기에서 탈출하는 데 있어서 공공 서비스의 역할을 다루었다.
국제건설목공노조(BWI)가 마련한 자리에서는 탄소를 줄이고자 건물의 단열, 개량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런 주장을 놓고 벨기에사회주의노동조합(ABVV)의 한 활동가는 "벨기에에서 건축 사업은 15개 단계나 되는 하청 구조를 통해 이루어진다"며 "이 때문에 단체협약 등을 통해 탄소를 줄이는 '녹색 일자리'이면서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를 보장받기 어렵다"고 토론했다. 한국의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이야기다.
이런 문제제기에 BWI 토론자는 일종의 '틀거리 협약(framwork agreement)'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정부, 공공 기관, 초국적 기업이 사업을 발주할 때, 노동기본권 보장 등 처우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는 협약을 맺어서 노동조합이 약하거나 부재한 사업장에서도 협약이 확대 적용되거나 적어도 투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노사 관계가 다른 유럽의 이야기지만, 제도적 수단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을 주는 의견이었다.
▲ 2006년에 출범한 미국의 블루그린동맹(Blue Green Alliance)은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이 서로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인상적으로 연대 중이다. ⓒ프레시안 |
이날 열린 미국의 블루그린동맹(Blue Green Alliance)의 토론에서는 미국 내의 유력한 산업별 노동조합과 시에라클럽 같은 환경단체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블루그린동맹은 2006년에 출범하여 환경단체의 기후 변화-에너지 문제와 노동조합의 노동법 개혁 문제를 서로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인상적인 연대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 동맹에는 미국철강노조, 통신노조, 천연자원보호회의, 서비스노조(SEIU), 북미국제노조, 전력노조, 교원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 동맹은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기후 변화 대응 프로그램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이날 토론에서는 '녹색 일자리'의 의미를 확대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교원노조의 참가자는 "재생 가능 에너지 관련 일자리뿐만 아니라, 녹색 전환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숙련을 향상하는 사회적 재교육 활동까지 녹색 일자리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내부의 다양성은 어찌할 것인가? 철강, 원자력 산업의 노동자들은 녹색 전환이 쉽지 않은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시에라클럽의 한 활동가는 "블루그린동맹은 차이보다 공통의 인식에서 가능한 활동부터 주력한다"며 상호대화를 거듭 강조했다. 물론 원론보다 현실의 어려움이 많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서로 만나고 볼 일이다.
15일, 16일의 행사는 더욱 많은 조직과 내용으로 채워졌다. 국제운수노조(ITF)는 기후 변화와 교통 부문의 고용 대안 모델을 다루었고, 네덜란드노총(FNV)은 작업장의 녹색 프로그램을 주제로 잡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경제 재건과 녹색 일자리가 사회적으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지를 타진했다. 에너지 전환, 여성 노동자와 녹색 일자리, 재정 확보와 투여 방안도 토론에 포함되었다.
15일에는 한국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EPIC)가 양대 노총과 함께 마련한 자리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녹색 성장 정책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녹색 분칠(green wash)' 정치 선전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과 원자력 발전 증설과 같은 해악적인 계획을 포함하고 있음을 국제 사회에 알렸다.
실제로 이런 자리가 시급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지난달에 글로벌 유니온(Global Unions)이 펴낸 자료를 보면, 한국은 녹색 재정 지출은 모범적인데 노동기본권 탄압이 문제라는 식으로 기록되었다. 이런 식의 잘못된 상황 인식이 국제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녹색연합의 이유진 기후에너지국장은 발제를 통해 한국의 녹색성장이 실제로는 탄 소저감과 에너지 효율화와는 거리가 멀고, 국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을 전했다. 지속가능노동재단(Sustainlabour)의 요아킴 니트로와 델라웨어 대학의 존 번 교수는 토론을 통해 한국 정부의 녹색 투자가 국제적으로 부풀려져 전해지고 있다는 데에 공감을 표하고, 녹색 전환은 단지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과 사회 전환의 문제라는 의견을 전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서는 한국 내에서 노동 탄압과 시장 위주 성장 정책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한국의 산업 구조가 기후 변화 대응 체제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결론은 한국 노동운동 내부에서부터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과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는 다짐 또는 과제다.
이제 코펜하겐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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