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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연탄길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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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연탄길은 누구인가요?

[공연리뷰&프리뷰] 뮤지컬 '연탄길'의 소박한 밥상 차림

▲ ⓒ프레시안

"삶이란 / 나 아닌 / 그 누구에게 /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뮤지컬 '연탄길'은 그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연탄 한 장' 되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안도현 시인의 시구처럼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온 몸으로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연탄의 따스한 온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열기를 소진한 채 차갑게 식어가는 연탄. 싸늘하게 식은 연탄은 자신의 재마저 빙판길 위에 뿌리고는 그 길을 디디는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뮤지컬 '연탄길'은 따뜻한 밥과 잠자리의 소중함을 잊은 채로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해왔던 우리에게 소리 없는 일침을 놓는다.

날개 잃은 나비의 무한비상
빡빡한 일상을 꾸려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생계에 매달려야 하는 등장인물들. 인물들은 맛있는 음식과 등 따스운 집을 동경하며 건너편 아파트의 불빛을 넋 놓고 바라본다. 객석 양옆으로 드리워진 조명에 비쳐진 불빛은 결코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신기루처럼 보인다. 이들은 탕짜면 한 그릇도 마음대로 사먹을 수 없고 비가 오면 지붕 샐 걱정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공과금에 아이 병원비까지 당장의 생계가 급급한 '오십씨씨 인생'들이다. 간소하다 못해 남루한 이들의 삶은 그러나 지붕을 지키는 아버지와 몰래 서류가방에 돈봉투를 찔러주는 친구의 손길로 이내 따스해진다. 따스한 이들의 손길은 레몬 옐로우 빛의 밝은 멜로디에 덧입혀져 답답한 이들의 현실을 지난한 일상으로부터 구출해낸다. 이들은 찢겨진 나비의 날개에 풍선을 달아 나비의 비상을 돕는다. 이들의 날갯짓은 서로의 희망에너지를 통해 더 높이 날아오른다.

농축된 원작의 밀도와 배우들의 안정된 앙상블
네 개의 각각 독립된 에피소드들은 사회자의 진행 하에 유기적인 극의 구조를 취한다. 사회자는 극을 이끌어가며 이들의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전달한다. 공연의 처음과 마지막에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등장하는 사회자는 배우들의 인형 옷을 주섬주섬 챙기며 무대와 무대 밖의 공간을 넘나든다. 사회자의 등장은 극에 탄력을 더하며 각각의 에피소드에 담겨진 일상의 진실을 관객들에게 환기시킨다.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소박한 무대와 과장되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 진 원작의 진실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희망뮤지컬'이라는 부제목에서 예측되는 빤한 감동의 스토리는 배우들의 세심한 연기와 시원한 가창력으로 새로운 감동을 일궈낸다. 희망과 감동이라는 진부한 두 단어, 그리고 그 두 가지의 결과물로 양산되는 눈물이라는 극히 진부한 도식은 단원들의 땀방울로 한 걸음 진보한다. 이들이 선사하는 감동은 '엄마'라는 이름이 빚어내는 최루성 감정이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에서 연유하지 않는다. 이들은 담담한 시선으로 등장인물들의 고단한 일상을 몸소 살아낸다. 낯선 그들의 삶 속에 아롱진 눈물은 그렇기에 진실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오늘 뒤에는 기약할 수 없는 내일이 놓여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의 무대는 차린 건 별로 없지만 정성으로 가득한 어머니의 밥상을 떠올리게 한다. 밥과 국의 온기가 채 가실까 헝겊으로 조심스레 덮어놓고는 고단한 일상에서 돌아올 가족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따스한 밥상. 그 밥상은 오늘도 누군가의 연탄길이 되어 관객들의 차가워진 가슴 구석구석을 따뜻하게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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