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공공의료 확충 없는 통일은 재앙"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공공의료 확충 없는 통일은 재앙"

[복지국가SOCIETY] 동·서독 보건의료통합이 주는 교훈

2009년 11월 9일은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지난 11월에는 통독 20주년을 기념하여 여러 분야에서 토론회와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동서독의 통일과정과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분야와 관련해서는 보건복지가족부와 독-한의학회 등이 공동주최하는 '남북보건의료통합 준비 한-독 심포지엄'이 11월 25일 개최되었다. 필자는 최근의 이러한 논의들을 종합하여 우리나라 보건의료통합 과정에 시사하는 바를 몇 가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그 누구도 1989년 11월 9일에 동서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지게 되고, 1990년 10월 3일에 동서독이 공식적인 통일을 이루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하였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동서독 통일을 위한 대책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보건의료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북한의 통일 시기도 예측하기 어렵다. 통일의 과정도 동서독의 경우와 비슷하게 갑자기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남북한의 분단과 대결 양상이 과거 동서독의 그것에 비해 훨씬 심각하기 때문에 통일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동서독은 통일 이전부터 교류협력을 진행하고 있었고, 통일 직전 동독 내부에서 통일과 자유에 대한 요구가 시위의 형태로 나타났지만, 북한의 경우 내부에서 통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있으며, 남북한의 교류협력 수준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 정부 들어 그간의 햇볕정책도 재검토되는 등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보건의료분야의 통합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보다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남북한 교류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보건의료분야에 한정해서는, 통일 이후의 보건의료 통합 과정에 대한 논의보다는, 지금부터라도 당장 수행할 수 있는 보건의료분야의 장기적인 통일계획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 통일계획의 주요내용은 남북한 보건의료체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것이고, 이를 위한 남한사회의 내부적인 노력과 북한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 베를린 장벽.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이 장벽은 동·서 베를린을 남북으로 나누었던 길이 45km의 경계선으로, 현재는 슈라이쉐스 토어 부근에만 잔재가 남아 있다.

둘째, 1990년 당시 동서독 의료보장체계는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동서독 보건의료 통합 과정에서 동독 의료보장체계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였고, 서독 의료보장체계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로도 활용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통일 이전의 동독 병원은 인력이 부족한 상태였고, 병상도 부족하여 대기자가 많았는데, 그 중에는 긴급하게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병원 건물이 노후화되었고, 약품과 의료서비스의 공급도 제한되었다. 그러나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통일 이전 동독 보건의료체계의 장점으로는 외래진료와 입원진료가 긴밀히 연계되어 있고, 질병의 예방 및 조기발견의 강조, 관리, 치료, 가정간호가 포괄적으로 제공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폴리클리닉'이라는 정부가 운영하는 외래전문병원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통일 이전 동독의 대부분의 의사는 '폴리클리닉'에 고용되어 있었고, 일차 외래 영역에서 민간개원의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였다. '폴리클리닉'에는 10명 이상의 의사가 고용되어 외래진료를 하고 있었고 1989년 말에는 동독에 5248개의 '폴리클리닉'이 있었다.

당시 서독의 보건시스템은 오래 전부터 효율성과 능률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 반면, 동독의 보건시스템은 1980년대 초반까지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폴리클리닉'과 같은 정부직영 외래전문병원은 당시 서독에서 언급되던 의료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일차 의료부문 개혁의 대안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일차 의료부문의 통합 과정에서 동독의 폴리클리닉이 민간개원의사로 대체되었다.

왜냐하면, 통일 이전에 동서독 보건의료 통합을 위한 장기적 준비과정이 없었고, 이에 더해 동독의 경제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던 이유로 모든 분야에서 통일을 빠르게 추진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동서독 보건의료제도의 장점을 취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서독의 여당이었던 기민당과 자민당이 반대하였고, 동독 기사당도 폴리클리닉, 외래진료소 등의 기관 유지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든 면에서 현재 남북 간의 격차가 당시 동서독 간의 격차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므로 통일 이전부터 남북한 보건의료체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남북한 보건의료 통합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사회의 급속한 변화가 감지될 때에는 이미 남북한이 통일의 추진 속도를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 전체의 보건의료재정 중 공공재정이 차지하는 비율을 비교해 보면, 통일 당시였던 1990년 현재 서독은 76.2%였던 반면, 남한은 2008년 현재 53%에 지나지 않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의료보장의 수준이 낮아, 의료이용 시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비의 크기가 크고, 사회계층 간 지역 간 의료이용의 격차가 큰 실정이다. 한편, 구 동독시절에는 1883년부터 존재했던 사회보험제도가 통합사회보험제도로 그 형식만 바뀌어 지속되었기 때문에 동독 국민들에게 사회보험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 주민은 사회보험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보험료나 본인부담금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경제력이 빈곤한 북한 주민의 의료이용에서 불평등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남한은 의료재정체계의 공공성을 서독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즉,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을 대폭 확대하여 보장성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의료재정에서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고 가계의 본인부담을 낮추어야 한다. 이렇게 확충된 공공재원의 일부는 통일기금 또는 통일세와 더불어 보건의료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북한의 보건의료 인프라를 재건하기 위한 재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동서독 통일 당시, 서독은 높은 공공재원 비중(76.2%)을 기본으로, 통일세 부과를 통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동독지역의 병원과 보건의료시설, 의료보험제도에 막대한 재원을 지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서독의 국가보건의료제도를 성공적으로 동독지역에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통일의 과정에서 예상되는 경제활동 참가율의 저하를 포함하여 실업과 빈곤의 문제는 의료보장제도가 어떤 형태로 운영되는지와 상관없이 의료보장제도 그 자체의 기반을 불안정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남북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남북 간 경제력의 격차를 줄이고, 통일 시기에 주민의 재정부담 능력을 고려한 의료보장 및 재원조달 방안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통일 직후 시기 동안 급격하게 증가될 실업자와 그의 가족들을 의료보장제도에서 수용할 수 있는 대응책 또한 필요할 것이다.

한편, 1990년 당시 서독의 전체 병상 중 공공병상의 비중은 62.8%였지만, 현재 남한의 공공병상 비중은 10% 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더해, 남한 민간의료기관들의 강한 이윤추구 경향 때문에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민간병상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고, 고가의 진단의료장비 역시 경쟁적으로 도입되고 있으며,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남한 내 의료자원의 지역 간 격차가 이보다 더 커진다면 향후 남북한 통일과정에서 남북 간 의료수준의 격차를 줄이는 데 큰 제약점으로 작용할 것이고 남북한 사회통합을 저해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남북한 의료제공체계의 격차를 줄이려면, 남한의 민간병원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무분별한 경쟁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공공의료자원의 비중을 크게 높여야 한다.

셋째, 독일은 1949년 이후 비록 제한적이었지만 공식 또는 비공식적 교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독의 보건의료 및 의료보장제도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통일 전후 동독 보건의료체계의 상황은 서독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막연하게 평가했던 것보다는 훨씬 심각하였는데, 특히 병원부문의 침체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 예상보다 큰 통일비용을 지불하였던 것이다. 장기적으로 남북한 통일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효율적인 지원방향을 모색하려면 북한지역의 사회보장 및 보건의료제도에 대한 실상 파악이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은 통일 이전 동독의 상황보다 훨씬 심각하므로, 대북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 의료부문의 인프라 재건을 통해 통일비용을 줄이기 위한 다각적인 지원을 수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경제사회 전반적으로 남한이 더욱 평등하고 통합적인 국가로 변해야 한다. 이는 남한이 보편적 복지국가로 전환하고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함과 아울러, 북한의 올바른 변화 발전을 추동하고 통일을 효과적으로 대비하는 데도 매우 유익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서독의 사회 통합적 복지국가가 있었기에 동서독 통일과 이후의 사회통합이 비교적 효과적으로 가능했던 경험에서 교훈을 얻자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서독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유능하고 보편적인 복지국가로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한다. 장차 북한의 개혁개방에서 예견되는 중국식의 불균형 성장은 극단적인 사회 양극화로 인해 남북한 통일에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인 바, 북한을 사회 통합적 개혁개방으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먼저 남한이 서독 이상의 사회 통합적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앞서 기술한 남북한 보건의료 통합 전략과 노력도 이러한 보편적 복지국가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