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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을 곳은 교실…포기하지 않으면 희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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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을 곳은 교실…포기하지 않으면 희망 있다"

[인터뷰] 일제고사 해직 교사들이 돌아본 지난 1년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쏟아지는 빗소리 너무 좋아
나무들도 정신없이 몸을 흔든다

앗. 생각없이 흥건히 젖어가는
길거리 구경하다가
운동장 물바다를 뛰어다니는 아이 두 명
보고 말았다

아직은 그리움 멀리해야지
가슴 속 깊은 다짐 하나도 소용없어
에이씨~ 보지 말걸 그랬다
(박수영, 전 서울 거원초 교사)


천생 교사였다. 좋은 것을 보면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부터 난다고 했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만 봐도, 그리움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며.

꼭 1년 전이었다. 서울 지역 초·중학교 교사 7명은 지난해 12월 16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해임 통보를 받았다. 같은해 10월 치러진 일제고사(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시험을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선택권을 안내했다는 이유였다.

이들에 대한 징계는 사실상 전국의 교사를 겨냥한 정부의 '충격과 공포' 작전이었다. 집권 직후 전국 단위 일제고사를 부활시킨 정부는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듯 교사들의 소청 청구마저 기각하며 해임 결정을 유지했다.

이후 사립학교와 같은해 12월에 치러진 일제고사에서 선택권을 안내한 교사 6명이 더 해직됐다. 그러나 올해 일제고사에서 똑같은 행동을 한 교사들에게 더 이상 대규모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일제고사 거부는 곧 해임'이라는 공식이 전국민의 머릿속에 정착했고, 반대 여론 속에서도 일제고사는 꼬박꼬박 치러지고 있다.

교실에서 쫓겨난 7명의 교사들은 1년 동안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지난 4일, 교사들의 임시 일터가 된 서울 동작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사무실을 찾았다.

제각기 다사다난했던 지난 1년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들은 마지막에 한결같이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실로 돌아가고 싶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교실이 아닌 법정을 오간 1년…"내가 할 수 있는 일 찾아다녔다"

"학교 다닐 때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공부 모임 네 군데에 참석하고, 모든 연수 챙기고, 밤마다 다음날 수업 준비하고, 전교조 지회 활동까지…. 애들을 만나는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고 보람이 있었다."

최혜원 교사(전 서울 길동초)는 일제고사로 해직된 교사들 가운데 '막내'다. 교직 생활 3년 만에 해임된 그는 1년 전 교실로 향하는 그를 막는 교장 앞에서 아이들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그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학생들과 교문 밖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며 '거리 수업'을 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그를 '도둑괭이 쌤'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아이들과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짓던 최혜원 교사는 1년 만에 각종 소송 때문에 교실이 아닌 경찰서과 법정을 오가야 했다. 지난해 12월, 그는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고 적힌 노란 풍선을 보신각 일대에서 날리는 퍼포먼스를 준비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됐고, 집시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당했다. 그의 글을 짜깁기해 전교조를 비난한 기사를 내보낸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분명 힘든 시간이었지만 사무실에서 만난 최혜원 교사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학교 밖에서도 내가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려 노력했다"며 "청소년 활동가들도 만나고, 등교 거부한 마을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예비 교사들 강연에 나서느라 전국을 다니면서 교실 바깥에서 교육에 대한 여러가지 면을 봤다. 좀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 지난 2월, 해직 뒤 진행된 학교 개학식에 맞춰 교문 앞에서 학부모, 학생들과 '특별 활동'을 진행했던 최혜원 교사(왼쪽에서 세 번째). ⓒ프레시안

"대단한 일도 아니었는데…주목 받는 게 되려 부담"

"상상하기 어려운 징계였다. 징계위원회에 출석했던 다음날인 12월 10일 오후부터 기자들에게 연락을 받아서 우리가 엄청난 징계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교사 본인에게 통보도 하기 전에 언론에 흘린 것이다. 충격적이었다. 그 다음날인 12월 11일부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해 111일간 했다."

송용운 교사(전 서울 선사초)는 1989년 전교조 해직 사태 이후 또 다시 해직을 당했다. 소청심사위에서 애초 파면이 해임으로 '감경'됐지만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었다.

12월부터 다음해 3월 일제고사까지, 그는 다른 교사들과 함께 매서운 바람이 부는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텐트 하나 없이 농성을 벌였다. 지난 10월에는 일제고사로 해직 등 징계를 받은 다른 교사들과 함께 전국의 시민을 만나는 대장정을 다녀왔다. 그의 목소리는 더 탄탄해졌지만, 근심은 그의 얼굴에 주름을 더 깊이 냈다.

그의 옆에 있던 설은주 교사(전 서울 유현초)는 '해직교사'로 주목을 받는 것이 1년이 지난 지금도 부담이 된다며 조심스레 운을 뗐다.

"그 이유가 뭘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런데 정말 내가 했던 것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고사의 부당성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편지를 보내 설명을 해줬을 뿐인데…."


▲ 지난 10월, 일제고사로 해직 등 징계를 받은 교사들은 전국의 시민을 만나는 대장정을 다녀왔다. ⓒ설은주

"학생들이 생각하는 힘 기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들의 징계는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많은 영향을 줬다. 당시 교사들의 해직에 충격을 받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자체적으로 1인 시위를 하거나 거리 수업을 하면서 교사들을 지키려 했다. 이후에도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은 꾸준히 서로 만나고 격려하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윤여강 교사(전 서울 광양중)는 "애들이 스스로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고 밝아졌다"며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판단을 할 줄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의 해직을 지켜본 아이들이 잘못된 문제를 스스로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할 줄 알게 됐다"며 "그런 능력들이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수영 교사는 학부모들과 함께 독서 모임을 꾸렸다. 그는 "어머니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토론도 하고, 짬짬히 고기도 구워 먹는다"며 "1주일 전부터는 송파 지역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강좌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들이 저를 많이 불쌍하게 생각하신다. (웃음) 아이들과 또 어머니들과 만나는 것이 정말 큰 힘이 된다. 특히 학교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그간 나의 모습을 반추하게 되고, 앞으로 학교에 돌아가게 되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극을 받는다."


▲ 지난해 12월, 교사들을 해직한 교육 당국과 각 학교에서는 교사를 막으려 경찰을 동원해 교문을 봉쇄했다. 당시 서울 송파 거원초등학교 등에서는 학부모들의 지지 속에서 교실이 아닌 거리의 '아스팔트 수업'이 열렸다. ⓒ프레시안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

해직교사들은 현재 해직 무효 여부를 가리는 행정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에서 이기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새 학교는 또 다시 변했다.

일제고사를 이유로 초등학생들도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학교 자율화 조치라며 교장들의 권한을 대폭 확대했다. 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해도 부딪히는 일은 더 많고, 더 힘든 날들이 이어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교사들도 위축돼 있다. 교육 당국은 일제고사에 선택권을 주거나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을 징계하면서 '까불면 다친다'는 식의 겁을 단단히 주고 있다. 이런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까?

송용운 교사는 "떠나있는 동안 너무나도 많이 변한 학교 현장을 보면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결코 진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혜원 교사는 "참 마약같다. 애들에게 빠져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힘들고 바쁘지만 뿌듯했다"며 "아직까지 그만큼 재밌는 일을 찾지 못했다"며 싱긋 웃었다. 박수영 교사도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역시 애들과 같이 노는 것"이라며 "그게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설은주 교사는 "돌아가기 암담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예전에도 편하게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비슷하게 지낼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애들하고 수업을 하고 싶다. 사실 학교에 있을 땐 평소에도 수업 시간에 얘기하고 싶은 일들을 기억해두는 습관이 있다. 그런 게 점점 무뎌지니까…. 수업 하고 싶다는 생각은 굉장히 자주 든다."

"비뚤배뚤일지언정…역사의 변화는 계속될 것"

가슴 아픈 일들은 그들의 해직 뒤에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시국선언 등 온갖 이유로 전교조 교사들을 줄줄이 해직하고 있고, 용산 참사를 비롯해 쌍용자동차와 철도노조의 파업 등에서 나타나듯,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공권력과 대기업의 이해 관계에 따라 철저히 짓밟히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희망은 무엇이냐고.

윤여강 교사의 답은 곧바로 나왔다. "희망은 언제나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끝까지 하면"이라고.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전교조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나. 그리고 아직도 전교조가 있고, 최혜원 선생님 같은 젊은 선생님이 해직까지 될 정도로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다 이루지 못해도 또 다른 교사들이 만들어가고…. 그게 역사다." (그는 역사 교사다.)

설은주 교사는 "사람들도 지금 뭔가 복종하는 것 같지만 드러나지 않는 울분이 있다"며 "시대가 아무리 암울해도 비뚤배뚤일지언정 늘 바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히 그게 쌓이면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수영 교사는 "역사의 발전은 나선형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가끔 퇴행의 기간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앞으로 나아가는 형태의 진보라는 말에 동의한다"며 "끊임없이 사회적 모순이 누적되면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할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제기한 행정 소송은 오는 1월 1심 선고가 내려진다. 결과는 아직 예측할 수 없고, 혹 징계가 무효로 결정되어도 교육 당국이 항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징계가 터무니없이 높았다는 건, 같은 행동을 했던 다른 교사에 대한 징계가 기껏해야 '정직'에 그쳤다는 것을 봐도 교육 당국도 잘 알고 있을 터다.

인사를 하고 나서는 전교조 사무실에서는 누군가가 틀어놓은 브로콜리너마저의 <봄이 오면>이라는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 지난해 12월 해임 통보를 받은 뒤 교실에서 쫓겨난 김윤주 교사(전 서울 청원초). 그를 붙잡는 학생과 동료 교사들에게 그는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라며 눈물 끝에 웃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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