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조급증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 휴브리스(Hubris)
여야를 막론하고 MB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공통된 인상은 다소 무리하게 서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5년 단임 대통령제의 구조적 속성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성공 신화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대통령의 인성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휴브리스(hubris)'는 자만, 오만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 비극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것을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토인비(Arnold Toynbee)가 인용하면서 유명해졌다. 토인비는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일부 인물들은 과거의 성공에 너무 자신만만하여 오류를 범하기 쉽다며 이러한 속성을 '휴브리스'로 규정하였다. 과거에 성공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능력과 방식을 과신하여 변화된 환경과 주위의 조언을 고려하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나가다 결국 커다란 실패를 맞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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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눈에 4대강은 규모만 큰 청계천이다. 4대강을 반대하는 정치인이나 시민단체들은 청계천 복원을 상인·교통·소음 등 3대 대란을 이유로 비판하였던 정략적 반대파들의 복제판이다. 대통령의 눈에 세종시의 원안 추진을 주장하는 야당이나 충청도민들은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을 반대하였던 택시업계나 부정한 공무원들과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둘 모두 국가의 백년대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소수의 정략적 이익만을 쫓기 때문이다.
Hubris에 갇힌 이들은 파국이 올 때까지 질주한다. 수에즈 운하 건설로 명성과 떼돈을 벌었던 프랑스의 레세프는 환경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독선과 교만으로 결국 파나마 운하로 중도 파산하였다. 고로 2010년 이명박 정부의 정국운용과 국정 기조, 그리고 주요 정책은 변함없이 일방 독주로 내달릴 것이다.
한국 보수정권의 비극: 3년차 증후군에 따른 승계위기의 심화
3년차가 의미하는 바는 임기 중반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이명박 정부는 승계위기의 조기 봉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지방선거가 패배로 나타날 경우 이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내닫게 될 것이다. 대통령과 MB계의 3년차 최대 현안은 개헌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입법과 예산 배정의 큰 틀을 올 해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왜 3년차에 개헌에 박차를 가하는지는 역대 보수정권의 궤적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유당과 공화당에서 현재의 한나라당에 이르기까지 한국 보수정당들은 민주적 경선의 게임 규칙과 관행을 구축하는 데 실패하여 왔다. 현 상황에서는 두 가지 요소가 이를 더욱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의 차이
6공 출범 이후 내부의 권력다툼이 있었지만 6공은 5공과 인적·정치적 동반자요 계승자였다. 6공은 집권 여당이었던 민정당 의원 대부분의 정치적 존속을 보장하였다. 5공과 6공의 갈등과 대립은 친이계와 친박계의 그것에 비하면 사소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5공 청산 과정에서 백담사로 갈 수밖에 없었다. 노태우 자신도 선거자금은 물론 안기부를 동원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YS에게 역사바로세우기에 의해 청산되었던 것이 한국 대통령제의 무서운 속성이다.
4대강과 세종시가 최대 현안이 되면서 MB계와 친박계는 더 이상 정치적 타협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박근혜 전대표가 두 의제에 대한 수용을 조건으로 대통령의 후원을 얻는다면 정치인 박근혜는 무소신의 정운찬 총리로 전락한다. 대통령이 4대강과 세종시에 전념하면 할수록 당내 경쟁 구도는 타협불능의 파국적 대립관계로 빠져든다.
개헌 또는 깜짝 놀랄 젊은 후보
1990년 1월 22일 전격적으로 3당 합당이 이루어진 것도, 반대로 YS가 JP를 내쳐 토사구팽이라는 유행어를 낳은 것도 집권 3년차였다. 민주적 경선 규칙과 정치문화를 갖지 못한 한국의 보수정당들은 3년차에 이르면 집권세력의 정치적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 개헌이나 정계개편에 착수하는 경향이 강하다. 더 늦어진다면 힘이 달려 이러한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MB세력의 입장에서는 행정구역 개편이든 선거구제 개편이든 부차적 문제이며 야당과 충분히 양보와 타협이 가능하다. 본질은 권력의 공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이원집정부제이든 내각제이든 개헌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가능성은 적지만 개헌이 어렵다면 또 하나의 대안은 범MB계이거나 적어도 중립적인 대항마를 세우는 것이다. 유력한 후보는 TK와 수도권의 지지표를 결집할 수 있는 친MB성향의 당내 인사가 될 것이다. 이는 불공정 경선 시비 등 엄청난 분란을 야기할 것이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MB계의 저돌적 추진력과 생존게임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것 또한 분명하다.
민주개혁진영은 무엇을 해야 하나
한국정당정치의 미성숙은 때로 예측 불가의 역동성을 만들어 낸다. MB정부가 조급증에 빠져 정략적 개헌과 무리수를 둘 때 진보개혁진영은 원칙과 정석을 고수하며 잔꾀보다는 해법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공과야 역사적 논쟁이지만 분명한 것은 민주정부 10년은 또한 사회적 양극화의 10년이었다. 이는 민주개혁진영의 중장기 진로를 가늠할 미완의 집단적 과제이다.
감세가 아닌 절세와 부유세를, 4대강이 아닌 교육·일자리·의료·연금 등 4대 복지를, 이건희 회장의 사면복권이 아닌 검찰개혁과 공정위 강화를 위한 굵직하고 알찬 대안들을 제시해야 한다. 2010년은 정략적 분열이 여권 내부의 균열을 심화시킬 전망이다. 민주개혁 진영이 가야할 바는 연대와 통합의 정반대 경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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