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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탄핵' 찬성한 3명의 재판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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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탄핵' 찬성한 3명의 재판관은?

[화제의 책]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미디어 법 등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헌법재판소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법조기자 출신의 이범준 씨가 쓴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궁리 펴냄)가 그 책이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숨겨진 비화들. "2004년 5월 14일 탄핵 심판 선고가 예정된 시각 10시보다 3분 34초 늦게 시작했다. 이유는?"이란 질문으로 시작해 답을 찾아간다.

'고작 3분 갖고 뭘'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김영일 재판관이 늦게 참석했기 때문인데 그는 결정문 서명을 선고 후에 할 정도로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고 한다. 이유는 헌법 재판에서 거의 빠짐없이 기록되는 '소수 의견'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문에서는 생략했기 때문.

헌재 결정문에는 "탄핵 심판에 관해서는 평의의 비밀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법률 규정이 없다. 따라서 이 탄핵 심판 사건에 대해서도 재판관 개개인의 개별적 의견 및 그 의견의 수 등을 결정문에 표시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고 명시됐다.

▲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이범준 저, 궁리 펴냄).
그래서 당시 과연 어떤 재판관이 탄핵에 찬성했는지, 탄핵 찬성 재판관의 의견은 어떠했는지 밝히지 않았었다. 보통 소수 의견은 '이런 의견도 있다'고 해서 다수의 결정과 달리 다른 법리 해석도 있을 수 있음을, 그래서 세월이 흐른 뒤에는 헌재의 판단이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기 때문에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헌재 결정문에서 볼 수 없었던 '탄핵 인용' 의견의 재판관 수와 이름이 취재를 통해 밝혀져 있다. 권성, 김영일, 이상경 재판관이었다. 특히 김영일 재판관은 "소수 의견 공개"를 강력히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화가 났던 것이다.

소수 의견 비공개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인사와 관련된 문제는 비공개가 관행', '지지자와 반대자의 테러 위협에서 (재판관을) 보호하려는 것' 등을 이유로 들었으나, 공개 주장 쪽에서는 '신변 위협이 걱정되면 재판관을 그만둬야 하는 것', '탄핵은 기각되도 이유를 따져보는 과정인 소수 의견을 남겨야 한다는 것' 등의 논리로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저자는 이 과정을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소상하게 전했다. 그리고 지금도 헌재 어딘가에 '소수 의견'이 보관돼 있다고 알린다. 다소 민감한 문제일수도 있으나 전직 재판관 등 헌재 관계자들은 "역사를 남겨야 한다"고 호응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전체 30장의 구성 중 3장이 탄핵 심판에 할애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피청구인으로 헌재 심리에 직접 참석해 진술하려 했다는 대목도 있다. 주변에서는 "만에 하나라도 자극적인 말 같은 게 나온다면 책잡힌다"(하경철 변호사)고 말렸다고 한다.

그런데 피청구인으로서가 아니라 증인으로 채택되면 참석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결국 증인 신청이 기각됐지만 "그런 자리에서 대통령은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분이다. 법정 분위기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는 아주 강한 믿음이 있다"(문재인 변호사)며 크게 개의치 않았다는 증언도 기록돼 있다.

5년이 지난 후에도 논란이 되고 있는 '신행정수도 특별법 헌법소원 사건'도 소개돼 있다. 지금은 법제처장이 된 이석연 변호사도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위헌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유에는 논리적 비약이 있다"고 '관습 헌법'을 비판했다.

헌재는 '관습 헌법'이기 때문에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이유(헌법 제130조)로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당초 청구인들의 주장은 국가의 주요 정책이기 때문에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헌법 제72조)며 헌법소원을 냈었다. 그런데 헌재는 청구인의 청구 이유가 아니라 헌재의 논리로 새롭게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조롱을 전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이 '관습 헌법'에 대해 다양한 시각들을 제시한다. 헌재에서 다루는 사건이 진보와 보수의 시각차에 따라 이념적 성향이 갈리는 내용이 많은데, 풍부한 인터뷰를 통해 균형있게 접근한 점이 이 책의 최대 강점이다.

여전히 '핫 이슈'인 것들 말고도 1987년 개헌으로 태어난 헌재의 태동부터 전효숙 재판관의 헌재 소장 임명 파동 때까지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더 커 보인다.

할 일도 없고 재판관 개인 사무실도 없어 한 방에 모여 신문보고 TV 보며 지내던 정동 단칸방 시절부터 시작해, 독립적인 지위를 지키려고 대법원이 위치한 서초동 법조타운으로 가지 않고, 세종로 정부청사를 다 피해 현재의 안국역 근처 종로구 재동에 청사를 짓게 된 배경 등 헌재 결정문에는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제법 흥미롭다.

이후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 만들어진 기본권 유린 법률들이 헌재에서 하나 둘 씩 베어져 나가고, 대법원과 검찰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며 조금씩 사회적 역량을 갖춰가는 헌재의 모습이 한 편의 성장 영화를 보는 듯 하다.

1만 장 분량의 신문·잡지·논문·영상·속기록·회의록과 100시간의 재판관·연구관·청와대·관련자들 인터뷰의 노력이 담겨져 있다. 저자는 이 작업을 위해 다니던 신문사도 그만 두었다고 하니 보통 열정이 아니었겠다.

다만 시각 자체가 헌재에 집중돼 있다 보니 헌재의 결정으로 인해 생기는 사회적 파급 효과에 대한 비평이 부족한 점이 다소 아쉽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이후 신행정수도특별법 헌법소원 사건, 최근에는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까지, 사실상 권력 간의 다툼을 다루면서 헌재는 이미 정치의 한복판으로 휩쓸려 들어와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사법이 모든 사회적 논란의 종착역이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더 이상 논쟁이 벌어지지 않게 판단하고 설득해야 하는 사법의 역할을 강조한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헌재의 결정에도 좀체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종착역'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대한민국 법조사 테트랄로지(4부작)'를 평생 프로젝트로 삼고 있다니, 이후 저술에서 '사법'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과 역사의 뒷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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