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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크릿>, 시크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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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크릿>, 시크릿하다

[뷰포인트] <시크릿> 리뷰

복잡하다. 기막히게 복잡하다. 인물들의 관계가 지나치게 꼬여 있다. 이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분명 이 인물들 안에 카이저 쏘제(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에 나오는, 아무 것도 아닌 척 결국 가공할 범인이었던 인물)가 있긴 한데, 예상컨대 저 인물이면 너무 싱거울 것 같고, 또 만약에 저 인물이면 너무 진부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영화는, 영화 <시크릿>은,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점점 더 좌표를 잃고 길을 헤맨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는 말은 아쉽게도 <시크릿>에 적용해야 할 듯 싶다. 하지만 정말 시작은 좋았다.

▲ 시크릿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칠성파 두목 재칼(류승용)의 동생이 누군 가에 의해 살해된다. 사건 현장에서 아내 지연(송윤아)의 흔적을 발견한 김형사(차승원)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김형사는 곧 자신의 증언으로 정직처분까지 받게 돼 극도로 사이가 나빠진 경찰대학 동기 최형사(박원상)의 눈을 피해 아내의 범행현장을 은폐한다. 그러나 결국 김형사는 경찰 내부와 칠성파 모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아내 대신 유력한 용의자로 몬 문석준(김인권)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피에로 복장으로 김형사에게 접근한 정체모를 인물은 현장에 도착하는 아내의 동영상을 보여주며 금품을 요구한다. 그런데 정작 김형사는 아내가 왜 재칼의 동생을 만나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국내産 지적 스릴러는 이야기가 다소 허술하거나 헐거워도 '그 정도면 됐다'싶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제 '완벽하지' 않으면 용서되지 않는다. <살인의 추억>에서 <범죄의 재구성>에 이르기까지 완성도높은 한국형 스릴러를 경험한 관객들에게 결론의 복잡한 이음새를 대충 끼워 맞추는 분위기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관객의 학습효과는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결론에 이르면 <시크릿>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의 행동동기가 다 이해가 가긴 한다. 재칼이 진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지연이 재칼의 동생을 만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김형사가 아내 지연의 비밀을 알고나서도 그녀를 끝까지 보호하려는 것은 또 뭣때문인지, 그 모든 것이 이해가 간다. 근데 정작 불투명한 것은 '진짜 범인'이 갖고 있는 전지적 능력에 대한 것이다. 그는 어떻게 지연의 비밀을 알게 됐을까. 지연과 김형사의 복잡한 관계는 언제 알았으며 재칼의 눈썰미를 능가하는 살해수법은 또 어떻게 알게 됐을까. 재칼은 동생의 몸에 남겨진 자상의 흔적을 보고 범인은 칼잡이 전문가가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재칼이 김형사의 아내 지연을 의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동기가 바로 그것인데 정작 재칼의 동생을 살해한 '진짜 범인'은 그렇게까지 '초짜'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 '진짜 범인'은 미숙한 칼솜씨를 의도했다는 얘기이며 그건 재칼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얘긴데, 한마디로 그 여러 정황들이 뒤에 가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 시크릿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크릿>은 사건을 둘러싸고 관계 맺는 캐릭터들 때문에 매력이 철철 넘친다. 캐릭터들마다 실력있는 연기자들이 따라 붙고 있다. 한마디로 캐스팅의 승리다. 재칼 역의 류승룡은 요즘 연기가 펄펄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최형사 역의 박원상은 늘 비릿하고 깐죽대면서도, 전체 역할에 있어 병풍마냥 안정적 연기를 선보인다. 아웃사이더 연기에는 최초 용의자 역의 김인권만한 배우도 없다. 그의 연기는 항상 삶의 비루함 그 자체를 보여준다. 차승원은 미끈하고 단정하게 기른 헤어스타일만으로도 눈길을 가게 만든다. 그게 비록 우리나라 형사 이미지로는 부적합하더라도 만약 그가 '루저(loser)'의 모습이었다면 영화는 아주 이상했을 것이다. 차승원이 보여주는 이미지에 대한 선택은 한마디로 '올바른 잘못'이다. 영화의 반을 성공시킨 것은 차승원의 매력적인 외모 덕이다.

뒤에 가면 무너지긴 하더라도 <시크릿>에게 평점을 후하게 주고 싶은 것은 공간에 대한 남다른 묘사때문이다. 살인이 벌어진 현장, 강력반 내부, 김형사와 지연 부부가 사는 공간 등 세트와 로케를 오가는 영화 속 공간은 종종 脫현실의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다. 형사 집이 저렇게 잘 살 수 있을까?, 경찰대학 출신이라지만 국악연주를 하는 여자와 형사가 부부라는 게 과연 어울릴까?, 등등의 '현실적' 의문들을 쏙들어가게 만든다. 영화속 공간의 이미지는 종종 이상하리만큼 인공적인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어차피 이건 영화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영화의 이야기들은 현실적이기 보다는 비현실적인 경우가 오히려 맞다. 그게 차라리 영화적이기 때문이다.

▲ 시크릿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유불급이다. <시크릿>은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다. 욕심을 부린 만큼 결론도 '드라이'하게 가야 옳았다. 예컨대 재칼은 원하는 것이 따로 있었다. 그 원하는 것을 얻고나서도 굳이 김형사를 상대로 활극을 부려야 했을까. 그때의 그의 행동노선은 그 대목에서 이전과 뚝 끊어진다. 영화는 그러느라, 그토록 김형사를 싫어하던 최형사까지 동원하게 한다. 김형사를 배신하고 재칼 편에 붙었던 후배형사조차 갑자기 정의의 사도로 돌변하게 만든다. 이런 식의 변화는 우리관객들이 할리우드식 영웅담을 기대한다며 지레 짐작하곤, 엉뚱한 얘기를 집어넣으려는 제작자의 오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크릿>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크릿으로 남는 것이 시크릿다운 영화다. <시크릿>은 매력적이지만 2% 부족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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