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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송두율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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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송두율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

[뷰포인트] 영화 <경계도시 2> 리뷰 및 GV 스케치

2003년, 한국사회는 이른바 '송두율 사건'으로 광폭한 이데올로기 전쟁을 치렀다. 간첩혐의를 받으며 입국금지 상태였던 재독 철학자 송두율이 37년만에 마침내 고국을 방문했을 때, 국정원과 검찰에 자진출두하여 조사를 받았음에도 그는 결국 구속수감됐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난 건 그로부터 9개월 후다.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로 갈린 채 광기의 마녀사냥이 벌어진 2003년의 한국땅에서, 그는 한쪽에선 '당장 추방되어야 할 거물간첩'이라고, 또 한쪽에서는 '처벌받을 건 처벌받되 관용으로 품어야 할 대상'으로 불렸다. 당시 총선을 앞둔 상태에서 그를 지지한다는 운동 진영으로부터 "당신 개인만의 상황이 아니니 한국의 진보진영이 처한 현실을 고려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

<경계도시 2>는 2003년, 한국을 방문했던 송두율과 동행하며 9개월간 그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광풍을 기록한 영화다. 사건이 있은 지 무려 6년이나 지나서야 영화가 완성됐다. 물론 이 영화가 단순히 2003년 유난히 춥고도 뜨거웠던 그 가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만 기록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경계도시 2>는 그 사건으로부터 6년이나 지금, 우리가 왜 다시 송두율 사건을 생각해야 하는가, 이 사건이 '현재의 우리'와 갖는 관계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과연 이 사회에 떨어졌던 '송두율'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 혹은 핵폭탄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왜 우리는 6년이나 지난 지금 이 영화를 보아야만 하는가.

▲ 4일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DDD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최근 부산영화제 초청작이자 DMZ다큐멘터리영화제 관객상 수상작인 <경계도시 2>를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왼쪽은 진행을 맡은 본지 오동진 편집장, 오른쪽은 영화를 연출한 홍형숙 감독이다.ⓒ프레시안

4일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경계도시 2> 상영과 이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역시 이를 위한 자리였다. <경계도시 2>는 이 영화를 배급하는 다큐멘터리 전문배급사 시네마 달과 한국독립영화협회 배급지원센터가 함께 주최한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DDD 프로젝트'의 작품 중 하나로 상영됐다. 오동진 본지 편집장이 진행한 가운데 영화를 연출한 홍형숙 감독이 참석해 관객과 열띤 대화의 시간(GV)도 이어졌다.

홍형숙 감독은 이 영화가 다루는 사건이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끝나버린 일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라 말한다. 더욱이 "그저 한 개인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이 아닌, 지금 현재 우리사회, 우리 모두의 단면이 녹아든 거울과도 같다." 감독이 이후 베를린에서 송두율 교수를 만나 후속 인터뷰를 했음에도 이를 영화에 사용하지 않은 것 역시 그런 이유에서다. 혹여 그 인터뷰가 이 사건을 '과거의 일'로 완결지어 버릴까 저어했던 것. "국정원이나 언론, 그리고 보수계뿐 아니라 이 사건을 대하는 소위 진보진영,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나조차도 레드 컴플렉스의 자장 안에 있었다"는 것이 홍형숙 감독의 고백이다.

사실 영화의 완성에 무려 6년의 시간이 걸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감독 스스로도 혼란을 겪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만도 적지 않은 고뇌의 시간이 이어졌다. 2003년에 촬영된 테입더미를 마냥 껴안고 고민하던 홍형숙 감독이 영화의 구체적인 틀거리를 짜기 시작한 것도 3년 전인 2006년에 들어와서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꼬박 2년에 걸쳐 편집을 해 최근에야 완성될 수 있었다.

▲ <경계도시 2>에서.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송두율 교수가 부인 정정희 씨와 함께 축하를 받고 있다.

영화 안에도 감독이 느끼는 혼란과 방황이 내레이션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이를테면 송두율 교수가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자신이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었는가 아닌가, 그가 북한 노동당에 당원으로 입당한 사실이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들. 이후 법정에서 내려진 판결을 잘 몰랐던 관객이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2003년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데려가는 이 영화의 초반부를 보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 "진짜 간첩 아닐까" "그래도 남한에 충성하겠다는 확신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당시 그가 노동당에 입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진보진영 역시 충격을 받았고, 조선일보와 같은 보수계 언론들은 매우 당당하고도 당연하게 '전향서'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반응 자체가 레드 콤플렉스의 프레임 안에 말려들어간 결과라는 것을 깨닫기는 힘들었다. 심지어 레드 콤플렉스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자신하는 이들조차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2003년에는 더했다. 그 와중에 당연히 보장돼야 할 한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사실공표금지와 같은 원칙들은 너무도 쉽사리 잊혀졌다. 잊혀졌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다. 송두율을 지지하고 변호하는 이들조차, 송두율이 커다란 잘못을 했으니 남한사회에 반성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경계인'을 자처할 자격과 권리가 없다고 여겼다. 감독이 영화 안에서도, 그리고 GV에서도 지적했듯 "누구나 한 마디씩 그에게 '훈수'를 보탰다." 심지어 감독 자신의 고백에 의하면, 사건 당시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감독이 개인이 아닌 운동진영의 일원으로서 송교수에게 의사 표명을 한 적도 있다.

그의 당연한 권리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당연한 것으로' 방어하는 이는 극소수였다. 송두율에게 가장 '상식적인' 반응을 보여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두가 이 사건을 잊어버린 이후의 대한민국 법정이었다. 대한민국 법정은 항소심에서 송두율에게 제기된 대부분의 의혹에 무죄 판결을 내렸고, 2008년 대법원은 그의 무죄를 확정하는 한편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했던 '방북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조차 독일 국적을 이유로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아마도 영화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자막을 읽고 나서야 뒷머리를 망치를 맞는 충격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기자가 바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 <경계도시>, <경계도시 2>를 연출한 홍형숙 감독. 그는 송두율 사건 당시 보수층은 물론이고 진보진영조차 벗어나지 못했던 레드 컴플렉스를 지적했다. ⓒ프레시안

만약 2009년에 제2의 송두율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면, 한국사회는 2003년의 교훈을 얻어 보다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때와 별 다를 바 없는 광기의 마녀사냥 혹은 불편한 침묵이 재현될까. 혹은 그때보다 오히려 더 퇴보한 형태의 대학살극이 벌어질까. 바로 이 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정말로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이 날 상영회 자리에 관객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한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주간은 이 영화에 대해 "다시 떠올리기엔 고통스러운 당시를 찬찬히 다시 보여주었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가을의 광기 안에서, 우리나라의 언론들은 해외 언론으로부터 '관찰자가 아닌 게임 플레이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마녀사냥에 앞장섰다. 송두율 교수 역시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가장 상처받은 것은 언론 때문"이라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그저 묻어두고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가 가진 고유의 힘이기도 하다. "그 아팠던 기억을 한 발 물러서서 찬찬히 다시 볼 수 있어서 뜻깊고 귀중한 경험이었다"는 이 논설주간의 고백이야말로, 이 영화가 반드시 만들어져야 했던 이유를 웅변해주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 당시 그의 전향을 거들거나 종용했던, 혹은 그를 유죄로 단정하고 침묵했던 부끄러운 모습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6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경계도시 2>를 봐야 하는 이유이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영화의 문제의식을 계속 고민하고 사유하며 나아가 행동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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